ȸ

설봉스님[안면암 일기] : {인간의 완성} 96 티끌 속의 번뇌바다 (5) (화엄경 3) 2022년 11월3일 木(목)

페이지 정보

작성자 해탈심게시봉사 댓글 1건 조회 157회 작성일 22-11-03 07:25

본문

  


img.jpg 

 

  

96

티끌 속의 번뇌바다 (5)


(화엄경 3)

   우리의 마음이 ‘나’라는 철창감옥에 갇혀서 조잡한 번뇌에 허덕일 때나 우리를 끌어내고자 할 때에는 모든 번뇌들이 다 모이는 바다로 나가라고 한다. 번뇌 꽃으로 장엄한 불국토를 보라고 한다.

   업의 꽃, 업의 광명이 시방세계를 다 비출 때 그 광명을 따라 우주번뇌의 삼매에 들어서 업의 바다를 觀(관)하라고 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 바다가 하와이나 인도네시아에 가서 보는 그런 바다가 아니라 순간순간, 동작 동작, 사사물물에서 부처나라의 바다가 편안히 머무르는 그러한 바다를 찾으라고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티끌 속에서 부처나라의 바다를 찾을 것인가가 문제로 대두된다.

   여기에서도 슬쩍 그 방법이 언급되어 있다. 즉 ‘모든 티끌 수와 같은 부처의 세계가 보현보살의 한 생각에 일어났다.’는 표현이다. 이 문제는 화엄경의 대의인 一切唯心造(일체유심조)의 사상과 연결된다. 우리는 《해심밀경》을 공부할 때 모든 것이 다 알음알이의 분별식 또는 마음으로 만들어졌다는 말의 의미를 살핀 적은 있지만 차후에 화엄경에서 본격적으로 밝히는 유심사상을 다루기로 하자.

   우리가 육대양의 바닷물 맛을 알고자 할 때 모든 바닷물을 다 마셔서 알려고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무량 억천만 번 배가 터져도 그 물들을 다 마실 수도 없거니와 다 마신다로 해서 바닷물의 맛을 더 아는 것도 아니다. 단 한 모금을 마심으로써 그 자리에서 바닷물의 맛을 알아야 한다. 시간도 마찬가지이다. 영원의 시간을 알고자 할 때, 그 시간을 다 살아서 알려고 해서는 무량 백 천만 억 번 죽었다 깨어나도 시간을 다 살 수 없다. 지금 이 자리에서 시간의 맛을 보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부처나라의 바다도 바로 여기에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c04a38c4e3592b296ab0d20a114669a4_1667427713_8117.jpg

c04a38c4e3592b296ab0d20a114669a4_1667427713_9546.jpg

c04a38c4e3592b296ab0d20a114669a4_1667427714_1424.jpg





 

댓글목록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 오늘의 부처님 말씀 >

“어리석은 사람은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남의 허물만 찾으러 다닌다.”

                                  < 불설무희망경 >

<  11월  >  /  유안진

 
무어라고 미처

이름붙이기도 전에

종교의 계절은 오고야 말았습니다.

 
사랑은 차라리

달디단 살과 즙의

가을 열매가 아니라

 
한 마디에 자지러지고 마는

단풍잎이었습니다.


두 눈에는 강물이 길을 열고

영혼의 심지에도

촉수가 높아졌습니다.

 
종교의 계절은 깊어만 갑니다.

그대 나에게

종교가 되고 말았습니다.

 
나무대원본존 지장보살마하살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