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선주: 언니를 위한 특별 천도재
페이지 정보
작성자 게시대행 댓글 8건 조회 321회 작성일 22-11-24 09:47본문
천 도 제
표준 국어사전에 보니, 천도제란 불교 용어로서 "죽은 영혼을 극락세계로 가게 함"이라고 풀이되어 있다.
사람이 죽으면 저승에 간다는 뜻이다. 나는 여러가지 경험으로 영가도 이승 저승을 내왕하며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내가 어려서의 일이다. 1945 병술년의 기근은 가히 지옥 같았다. 일본 동경에 있을 때는 전시라도 국가에서 배급을 주어서 넉넉하지는 않앗지만 밥은 먹고 살았었다. 해방 이듬해에 아버지의 고향 경북 영양으로 돌아왔었다. 산기슭 소나무는 껍질이 벗겨져서 희뿌옇게 보였다. 사람들이 껍질을 벗겨서 송기떡을 해 먹으며 생명을 부지하고 있다 했다. 보리 이삭은 아직도 패지 않았고, 아낙네가 산에 가서 갓 돋은 산나물 뜯어다 삶아 먹으며 주린 배를 달래고, 밭에 심은 감자 알이 굵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무렵, 미국 잉여농산물 무상 원조로 배편으로 태평양을 건너온 옥수수 가루가 굶주린 우리에게는 마치 구세주와 같았다.
사람들은 영양실조로 온갖 질병에 시달렸었다. 급성 전염병 호열자 때문에 사람들이 사나흘 동안 뜨물 같은 설사를 하다가 부지기수로 죽어나갔고, 이어서 학질이 돌았다. 우리 집은 부모님의 철저한 위생관리로 해서 온가족이 무사하였는데도, 모기가 전염원이란 학질-말라리아는 피할 수 없었다. 밥이 그리워 눈물 짓는 동안 온 얼굴에 죽은깨가 새까맣게 돋은 나에게도 학질이 찾아 왔다. 학질은 일명 하루 걸이라고도 하는데, 하루는 고열에 시달리고 다음 날 잠잠하다가 밤 자고 나면 또다시 고열이 일고 이가 딱딱 부딪칠 정도로 추위에 떨었다. 약도 없이 그렇게 앓다 보니 이젠 하루걸이가 아니라 연속 열이 나고 달포 지나니 어른들이 내가 죽을까 염려하게 되었다. 하루는 숙모가 엄마에게 "형님 , 얘 위해 양밥(양법의 사투리) 좀 해줍시데이"
란다. 비몽사몽 간에 이 말을 듣고 "아! 드디어 밥을 먹게 되는구나"하고 내심 크게 기대했었다. 다음 날 새벽에 뭔가 얼음같이 차디찬 것이 내 목울 휘감더니 누가 "구리야!!"라고 크게 외쳤다. 갑자기 크게 놀라게 하면 학질이 떨어진다는 속설 때문에 그리 한 것이라 나중에 들었다. 그런데, 어린 나이에 당찬 데가 있었는지 나는 놀라기는 커녕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약이 없어 병을 고치기 어려워 "객귀 물리기"란 것이 행해졌었다. 헌 바가지에 환자의 머리카락을 크다란 부엌칼로 뜯어서 넣고, 거기에 고추가루 부억 재 왕소금 그리고 밥과 나물 등을 고루 넣고 환자의 머리맡에 두고 주술을 외운다. 동네 할머니가 걸죽한 목소리로 "이 못된 귀신아! 오늘 이 정성을 받고도 썩 물러나지 않고, 이날 이후도 환자 곁에 얼신거리면 주둥이 좁은 호리병에 너를 가두어 먼 바다로 떠나도록 강에 가서 버릴테다"고 귀신을 협박하고, 대문 밖으로 나가서 크다란 칼로 바가지 가장자리를 탁 탁 그게 두들기고 나서 칼을 길가에 던진다. 칼날 끝이 내게로 향하면 다시 던지고 저쪽으로 향해 떨어지면 그 자리에 칼을 놓고 바가지를 엎어 놓고 환자에게서 객귀가 나가기를 바랬었다.
내가 결혼한 후 중앙대학교 뒤 언덕 끝자락에 지어진 일본 금광주 고바야시의 별장, 3층 벽돌집에 살게 되었다. 그 날 남편은 강원룡 목사가 운영하는 크리스찬 아카데미의 1박2일 예정의 세미나에 참석하게 되었다. 혼자서 첫잠의 드는데 아래층 계단에서 일본 나막신 게다짝 소리가 들리더니 2층 내 방문 앞에서 소리는 그치고 방문이 소리 없이 열렸다. 내가 "노크도 없이 남의 방을 열다니..."하며 문 쪽을 보니 노란 원피스차림의 젊은 여자가 갓난 아기를 안고 서 있었다. 무례함을 나무랄려고 아래 위 흝어보는데 아랫도리 다리가 없었다. 꿈도 아니고 생시도 아닌 그런 상태에서 본 귀신이었다. 며칠 후 이웃 할머니를 만나게 되었을 때 위 이야기를 했다. 할머니는 "에고 에고... 또 나왔구나"하면서 이야기를 해주었다. 일본 금광주가 어린 하녀를 범했는데, 아이를 낳아서 보여주었더니 당장 쫓아냈다. 갈 곳 없고 억울한 하녀가 아래층 부엌 깊은 우물에 아이를 안고 뛰어내렸다. 그녀의 죽음은 아무도 모른채 일년정도 지났는데 깊은 우물 물을 도르래로 물통을 길어 올리는데 그 여자의 노란 원피스가 걸려서 올라왔다. 동내 할머니는 주인이 바뀔 때마다 나타난다 하면서 억을함을 호소하려 처녀귀신이 나타난다고 했다. 나는 그렇게 귀신을 보았었다. 그녀는 누군가 자기 원혼을 달래주기를 바라며 나타났을 것이다. 요즘 같았으면 나는 그녀를 위해서 조촐한 밥상 한번 차려 주었을 터인데, 그 때는 너무 젊어서인지 그런 걸 잘 몰라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아들이 결혼해서 시내 모 아파트로 분가해 나갔다. 2동 208호실이었다. 하루는 잠을 자는데, 천장을 머리에 이고 발을 허공에 휘저어 걷는 두 남자가 207호에서 나와 209호실로 향해 가며 말을 소리 내어 지껄이며 가고 있었다. 이를 본 아들이 화가 나서 그 귀신 한 놈의 뺨을 힘껏 후려쳤다. 귀신은 곧 사라졌는데 며칠 후 또 귀신 둘이서 지나갔다. 그들은 "야! 조용히 해라. 지난 번에 아무개가 이 집 주인한데 싸대기를 얻어 맞았잖니... "라며 말소리 낮추어 소곤거리며 지나갔다. 아들이 알고 보니 209호에는 아무도 살지 않고 더러 운동 선수들의 합숙용으로 쓰이고 있었다. 209호에 드는 사람마다 어쩐지 으시시해서 얼마 못살고 이사 나간다 했다. 209호는 그 귀신들의 아지트였음이 분명하다. 아들은 그 귀신들의 버릇을 가르치며 살았다. 아들의 기가 센 듯하다 . 아들 내외는 아이 셋 낳고 집이 좁아서 지금은 다른 동으로 넓혀 이사 나왔다.
옛날 내가 청주 직장 나갈 때 입주 가정부의 도움을 받았다. 열여섯살인데, 아이가 올되어서인지 남자를 좋아했다. 가족 모두 나가면 집앞에 줄줄이 주차한 자가용 차 운전 기사를 위해서 커피를 대접한다고 앞 가게 주인이 귀뜸해주었다. 그 당시엔 자가운전자는 드물고 대개 기사를 두고 있었다. 이 아이, 지영이가 돈을 모우더니 고향 가게 휴가를 청해서 보냈다. 희망에 차서 기분 좋게 떠났는데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고향에 갔다가 벌 치는 남자를 만나 동거하다가 , 양봉 작업상 철따라 이동하며 사는 것이 도시 삶에 익숙해진 지영이에게 곧 싫증을 안겨주었다. 서울로 돌아오려니 어느결에 배가 불러오고 있었다. 절망 끝에 지영이는 스스로 이승을 등졌다. 그녀의 유품을 부모에게 보내려고 정리 하다보니 짙은 진달래색 비단 누비 이불이 발견되었다. 이 이불을 구입할 때, 지영이는 행복을 꿈 꾸었을 터인데... 하는 안스런 생각에 그녀에게 보내주기로 하였다. 청주대학교 구내 한켠에 있는 작은 절에 가서 이야기 하니 주지스님이 천도제를 지내주라 했다. 날 받아서, 딸과 함께 절에 갔다. 딸은 "엄마. 제사 지낸 음식 먹으라 하지 마세요"라고 다짐을 두었다. 제사상을 잘 차려놓고 주지스님이 독경을 하시는데, 딸이 바라보니 지영이가 밥상 머리에 앉아서 두손으로 아이고 맛나다고 연신 소리 내어 지껄이며 두 손으로 음식을 허겁지겁 줏어 먹더란다. 마침내 배불리 먹은 지영이가 팔을 뒤로 제켜서 벽에 기대 앉더니 딸을 보며 씨익 웃었단다. 을씨년스럽게 여겨지던 제사가 지영이 기분 좋게 먹는 모습 보고 딸도 기분이 좋아졌다며 제사 음식을 먹었다. 천도제를 마친 후에 지영이의 고운 비단 이불을 소각로에 넣어서 불을 지르니 활활 타오르며 5분 정도 걸려서 재도 없이 다 탔다. "지영아, 잘 가라" 하며 돌아서는 내 기분이 아주 가벼웠다. 이렇게 우리 세 모자녀는 각각 직접 귀신을 본 셈이다. 이런 경험으로 해서 나는 귀신의 존재를 믿게 되었다.
겨울 문턱에 들어 마당에 쌓이는 낙엽을 바라보며 오늘도 어머니 생각에 잠긴다. 나는 어머니 생전에 저지른 불효가 막심하여 눈물 없이 어머니를 회상할 수 없다. 어머니는 6.25 동란 이후 60여년을 가슴에 한을 안고 사시다 가셨다. 전쟁 난리 중 피난길에 오른 둘째 딸의 생사도 행방도 알 길이 없어 애 태우시며 한 때 실명 위기까지 겪으셨다. 그 때 나는 겨우 열 여섯 살 어린 나이여서 어떻게 어머니를 위로 해 드릴 방법을 알지 못했었다. 세월이 무심히 흐르는 동안, 어머니 가슴에 한을 남겨주고 간 언니 일을 잊고 지내왔다. 어느 날, 지영이가 재삿상을 받고 그렇게 허겁지겁 먹는 모습을 보았다는 딸아이의 말이 생각 났다. 임자 없는 고혼이 구천을 맴돈다는 이야기들도 생각나더니 문득 둘째 언니 생각이 났다. 언니의 생사를 모르기 때문에 아무도 언니를 위해 제사 지내는 이도 없었다. 불현듯 내 가슴에 눈물이 고이더니 "언니의 고혼을 위해서 내가 무언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어떤 결심처럼 굳게 일었다.
안면암 지도 법사이신 석지명 대종사님께 둘째 언니의 원혼을 위로하고 고이 극락에 이르도록 제사 올려 주실 것을 앙청하였다. 큰스님께서 긴 이야기 들으시고 쾌히 나의 청을 가납해 주시었다. 둘째 언니의 인적 사항을 적어서 이를 사진을 찍어서 큰스님께 전송하고 나니 내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인적사항을 적은 종이를 그냥 버리기가 싫어서 종이를 말아서 양초불에 불 붙여 태웠다. 순식간에 타고 재가 남아 마지막까지 여기져기 불씨가 반짝거리다가 다 사그러들었다. 아마도 언니는 이 천도재 준비만으로도 흡족해 하는 느낌이 들었다. 비록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어머니의 한 맺힌 가슴을 조금이라도 달래 드리게 된 것 같아서 작은 행복을 느낀다. 이 순간에도 큰스님께서 정해 주신 천도제 날이 기다려진다.
<천도재>라는 의식이 있어서 살아남은 자들의 영혼도 크게 위로 받는다.
부처님의 자비하심이 하늘에 닿는다.
나무 관세음보살 마하살
2022. 11. 24. 무진성 오선주 합장
댓글목록
오선주0827님의 댓글
오선주0827 작성일
석지명 큰스님의 자비하심이 우주에 울려퍼져서 저의 작은 언니의 구천을 헤매던 영혼이
에제 부처님 발치에 편히 잠들게 되었습니다.
큰스님의 은혜 백골난망이옵니다. 무진성 합장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안면암의 #살아 있는 전설이신 오선주 보살님!
선량한 보통 사람들이라면
많은 생각을 하게 하시는
외로운 영혼들의 이야기 아주 잘 들었습니다.
저는 인연 따라 교회를 다니는 언니를 대신해서,
옛날에 천도재를 지낸 적이 있습니다.
또 물론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도 잊지 않았습니다.
시집간 막내딸이 첫딸을 낳은 이후,
동생을 보지 못하는 것을 몹시 안타까워 하시던
외할아버지께서는 6,25 동란 중에도 3.8선을 넘어 금강산에 가셔서
귀한 약재를 구하다 주신 덕분에 제가 마침내 사바세계에 작은 얼굴을 디밀게 되었었지요.
그분들은 오선주보살님의 인연 영가처럼
천도재 시작을 알게 되면 즉시 영험스런 징조를 보여 주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 또 다른 외로운 영가님들이 계신지 잠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시절 인연이 맞아서
큰스님의 대자대비심의 언니 천도재에
저도 동참할 수 있는 영광이 도래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해지는 순간입니다.
몽매에도 그리시던,
신사임당을 방불하게 하셨던 오선주 보살님의 어머님께서도 함께 오실 것이라는 믿음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오랜만에 보여주신 격조높은 보시글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나무대원본존 지장보살마하살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
설봉스님님의 댓글
설봉스님 작성일
생사를 떠나서 소중한 인연들 입니다. 가족만큼 가까운 인연이 또 있을라구요.
무진성 큰보살님의 자비행으로 영가님들이 안락정토에서 평안하시리라 생각해봅니다.
아미타불!
설봉합장
정광월 합장님의 댓글
정광월 합장 작성일
교수님
어제 초하루 못뵈어 섭섭했는데요
건강하셔요
많이 주우시고
맛나는 음식 잡수셔요
혼자 계신다고 끼니 거르시지 마셔요
큰스님의
천도로 동생분 좋은곳 가심을...
극락왕생을 발원합니다
건강하셔요
정광원 합장
원만행님의 댓글
원만행 작성일사명대사님의 무애행 비에서 물이나온다는? ! 사명당정신 영혼이다 . 무의식계를 계발 하는 사람도 더러 있다 모든것이 평등하다 . 무념등각 십지 구경 등각가지 오매일여 안박이 밝아 화두챙겨 내마음이 깨끗하면 그것이 극락이라 하신 법 문을 들었지만 ! 천도제도 일체지 근본으로 삼는 거리낌 없는 무애행 으로득구경락 마음을 잘 다스리는사람이 안락을 얻는다 . 대 지식인 이시며 수행도 깨침도 선구자신 오교수님 무 진 성 대보살님께 두손 모으며 간절한 구경락을 소원 합니다 . 나무아미타불 원만행
오선주님의 댓글
오선주 작성일
해탈심보살니!
정관월보살님!
원만행보살님!
저의 간절한 마음 이해하시고 위로와 격려 보내주셔서
대단히 고맙습니다.
석지명 큰스님의 가르치심에 부처님 세상을 보게되어
발심하였습니다.
어머니와 작은 언니와
그리고 내 아이들에게 위로가 되어준 짱구와 나의 반려 Rex의 영가도
천도재에 함께 올려 극락 정토로 잘 가시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__()_
오선주님의 댓글
오선주 작성일
존경하는 설봉주지스님!
저의 불쌍한 둘째언니의 안락정토를 축원해 주시니
이보다 큰 자비를 더 바랄 수 없습니다.
항상 존경하며 감사하고 있습니다
추위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부디 건강하시기 비옵니다
무진성 합장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어머니와 언니의 천도재에
짱구와 렉스까지 올려 주신다니 대자비심에 감사드립니다.
저희집 15살 똑순이는 비만에 따른 성인병으로 고생하고 있습니다만,
아들의 정성으로 병원 치료 중이어서 활기를 되찾아 가는 중입니다.
인연있었던 옛 복순이와 흰둥이는
안면암 대원지장탑에 올렸으나
딸이 키웠던 중국의 20살 미미는 올리지 못해 매우 애석합니다.
추위가 성큼 다가오고 있습니다.
부디 다시 뵈올 때까지 건안하시길 비옵니다.
나무약사여래불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