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봉스님 [안면암 일기] : {인간의 완성} 67 불성 속의 인과 (2) 2022년 7월15일 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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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탈심게시봉사 댓글 3건 조회 173회 작성일 22-07-15 06:50본문
67
불성 속의 인과 (2)
(열반경 3)
독자들 가운데는 공사상과 인과응보 사상이 겹쳐서 설해지기도 하고 따로 설해지기도 하는데서 혼란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이 있을 것이다. 어떤 때는 모든 사물이 모두 공한 마당에 꿈속의 죄업이 무슨 효력을 낼 수 있겠느냐고 설해지기도 하고 , 다른 때는 죄업에 대한 과보는 결코 면할 수 없다고 설해지기도 한다. 여기서 공사상이 이중적으로 응용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죄업을 짓는 사람은 공사상을 모르는 사람이다.
거짓 '나'를 참 '나'로 착각하고 모든 사물이 실제로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에 죄업을 짓는다. 그 사람에게는 분명히 인과가 있다. 그러나 죄업을 짓지 않는 사람, 또 죄업 짓기를 그만둔 사람은 거짓 '나'가 참 '나'가 아님을 안다. 사물이 실체가 없어서, 변화하는 공의 상태에 있음을 안다. 죄업도 짓지 않고 공사상을 아는 사람에게는 선인선과 악인악과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꿈을 깬 사람에게 꿈속의 선악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과 같다.
그래서 이 《열반경》에서의 부처님뿐만아니라 모든 경에서의 부처님이 업을 짓는 사람을 이끌기 위해서는 인과응보를 말씀하시고 업 대신에 불도를 닦고 수행을 하는 사람에게는 인과응보를 넘어선 공의 도리를 말한다. 공의 도리가 이중적으로 적용되는 것 같지만 눈뜬 이와 눈 먼 사람이나 똑같은 그림에 대한 설명이 다를 뿐 그 그림이 다르지 않은 것과 같다.
불교에서 비었다고 하는 공은 우리가 아무것도 아닌 너무나 보잘 것 없고 초라한 존재임을 나타낸다. 공의 도리는 또 재물이나 이성이나 음식이나 명예나 안락을 중심으로 얻어진다고 하는 것들이 구하는 도중에는 우리를 피곤하게 만들고 결국에는 우리를 실망시킬 수밖에 없는 부질없는 것들임을 나타낸다.
공의 도리를 모르고 업을 짓는 사람이 나라고 생각하는 '나'는 거짓 '나'이다. 공의 도리를 알고 수생을 하는 사람이 거짓 '나'를 뛰어넘어서 발견한 '나', 공상과 전혀 배치되지 않는 '나'가 참 '나'이다. 부처님 자비의 극치는 중생 자신이 바로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불성을 일러주는 것이다.
불성은 우리가 최고인격자, 최고로 멋있는 사람이 될 수 있는 성질이다. 이 불성은 다름이 아닌 공사상을 터득한 데서 얻어지는, 업을 짓지 않는 '나' 공사상과 일치하는 '나'이다. 부처님이 중생에게 불성을 일러준다고 해서 없던 불성이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부처님이 일러주지 않으면 중생들은 영원히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부처님은 중생에게 불성을 준 자비를 베푸신 것과 같다. 부처님이 일러주시는 불성은 바로 영원한 생명의 참 '나'이다. 이 생명은 공의 도리의 생명이다.
불성은 바로 참 '나'요, 참 '나'는 공사상과 일치하는 것이다. 참 '나'는 지금의 '나'가 정말 내용이 없다는 그 공의 도리를 통과한 저편에서 얻어진 것이다. 그리고 공사상은 우리를 가두고 있는 이 껍데기의 나를 부수는 수행을 하는 곳에 나타낸다. 우리가 나와 사물이 실체적으로 있다고 생각하고 그에 의해서 무엇인가를 붙잡고 매달리면 거기에는 이기적인 업이 뒤따르게 되고 불성에 대해서 모르는 것과 같다. 안다고 하더라도 믿지 않는 것과 같다.
우리가 불성을 마음속으로부터 확실히 믿는 것은 분명히 드러나게 되어 있다. 작은 '나'를 지우고 큰 '나'를 얻는 수행을 하면 믿는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믿지 않는 것이다. 불성은 오직 수행이 있는 곳에만 나타난다.
여기에서 죄업에 대한 응징, 자비, 공사상, 공사상의 이중적용, 불성, 불성으로서의 나, 부정해야 할 것으로서의 나, 수행이라는 말들이 한꺼번에 나오기 때문에 우리의 머리가 좀 어지러워졌다. 그러나 《열반경》에서 전하려고 하는 불성을 중심으로 줄기를 잡아버리면 다른 것은 자연히 정리가 된다.
부처님의 자비, 불성, 열반의 덕으로서의 나, 공사상, 수행 등은 같은 것을 다른 각도에서 나타내는 말들이다. 불교의 묘한 점은 한 문(文)은 반드시 여러 문으로 연결된다는 점, 그리고 하나의 말이 모든 말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부처님의 자비는 업을 짓는 사람들에게는 인과법에 의한 과보로 나타나지만 수행하는 사람들에게는 불성으로 나타난다. 과보를 받는 사람들은 거짓의 '나'를 참 '나'로 잘못 알고 불성을 깨닫는 사람들은 공사상과 일치하는 열반의 특징인 참 '나'를 그대로 파악한다. 그래서 불성은 부처님의 자비도 되고 수행도 되고 공도 되고 참 '나'도 된다.






댓글목록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오늘의 부처님 말씀>
탐욕과 성냄과 두려움과 어리석음
이 네 가지 법을 가진 사람은
그의 명예가 날로 줄어들기를
마치 달이 그믐을 향하는 것 같느니라
또한 탐욕과 성냄과 두려움과 어리석음
이런 악행을 짓지 않는 사람은
그 명예가 날로 더해 가기를
마치 달이 보름을 향하는 것 같느니라.
< 육방예경 >
< 석류 , 웃다 > / 최순향
고독도 잘 익으면
너에겐 웃음일라
고운 치열 자랑하며
활짝 웃는 그 모습
부시게,
눈이 부시게
사리(舍利)로 꽉 찬 속내
나무대원본존 지장보살마하살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
정광월 합장님의 댓글
정광월 합장 작성일
석류가 좋은줄 몰랐는데
대구 미팔군 후문 언덕에 시집 마당에 석류나무 있었는데
지금은 같은동 1층 노보살집 정원에 석류나무 모과나무
재작년엔 비구니스님 마당에 같이 계셨어요
젊을때 도선사 자주 가심
출.퇴근 요양원 다니심
꼿꼿하시고 멋쟁이 노보살님
저 손녀에게 주시고
건강하셔요
더운 날씨
모든분들 건강하셔요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참 좋은 보살, 정광월 보살님!
석류를 속이 꽉찬 사리로 표현하다니
시인의 마음이 어쩌면 이리도 아름다울까요?
올 늦봄 망원시장에서 석류를 사먹었는데 무척이나 맛있었지요,
여자들의 피부에 좋다니까 많이들 사가더군요.ㅎ
만약에 저에게 땅 한 뙤기라도 있다면 빨간 꽃을 피우는 석류를 똑 심고 싶습니다.
아니면 안면암이나 포교당에라도 .
더운 날씨에 모든 붙들 건안하십시오.
소중한 댓글 감사 감사드립니다.
해탈심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