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제목 : 너를 만나려고 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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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탈심게시봉사 댓글 13건 조회 351회 작성일 22-07-18 23:59본문
“우리는 가짜 가족이잖아요.”
아이가 남편과 나와의 식사 자리에서 이렇게 말해 우리 부부는 적잖이 놀라고 말았다.
몇 달 전 아이와 나, 나의 남편과의 식사자리. 원래 친아빠와 친아들 사이에도 아내이자 엄마를 두고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있다고 하더니, 티는 내지 않지만 이 둘에게서도 서로 나의 사랑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묘한 기류가 흘렀다. 남편이 나와 아이에게 고기를 구워주고 있는데, 아이가 대뜸 “가족과 외식하는 아이들이 너무 부러워요” 라고 말해서 우리는 적잖이 당황했다. “우리가 지금 너랑 같이 외식하고 있잖아?” 그러자, 아이가 “우리는 가짜 가족이잖아요.” 라고 말한 것이다. 한동안 우리 부부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일찍 어머니를 여읜 남편은 아이에게 많은 사람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자라는 니가 진심으로 부럽다고 했다. 그러나 니가 하고 싶은 꿈만 있다면 우리가 끝까지 도와주겠노라 말을 해주었다. 그 말에 남편도 아이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한 것이라 느껴졌기에 나는 내심 남편에게 무척이나 감사했다.
사실 그 아인 내가 가슴으로 낳은 자식같은 아이였다. 약 18년 전, 항상 배움을 게을리하지 않았던 우리 엄마가 만학으로 ㅇㅇ대 아동노인 복지학과 수업을 듣고 있을 때 그 수업의 교수님이면서 ㅇㅇ보육원 원장님을 겸직하고 계신 분께 그 아이의 스토리를 듣고는, 엄만 한 걸음에 ㅇㅇ보육원으로 달려가 그 아이의 첫 결연 후원인이 되어 주셨다. 그때가 그 아이의 생후 석 달 정도 되었을 때였다. 나와 그 아이와의 첫만남은 아이가 5살때인 약 1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처음 그 아이를 봤을 땐 티비에서 본 늑대소년의 이미지가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 아이 아버지는 외국인 노동자, 한국인 어머니는 병으로 일찍이 사망. 태어나자 마자 그 아인 보육원에 맡겨졌고, 몇 살 많은 그 아이의 형도 먼저 보육원에서 자라고 있었다.
그 아이가 5세 때 엄마는 보육원으로 바리바리 먹을 것을 싸가지고 그 아이와 아이의 형아를 만나서 하루 함께 시간을 보내는데 나는 별 생각 없이 따라 나섰다. 그 때 내 눈에 비친 5살의 귀엽고 천진난만한 그 아이와 이미 초등학교를 들어간 그 애의 형아는 조금의 과장을 보태 흡사 늑대소년을 방불케 했다. 전혀 통제가 되지 않았고, 옹알이 같은 한국어를 구사하는 것 같은데 전혀 알아들을 수도 없었다. ADHD가 이런 것일까? 그냥 산만하게 자기만의 세상에서 즐거워 보이던 아이들을 보며 걱정이 앞섰다. ‘대체 이 아이들은 커서 어찌 될까? 심란했다. 서울 근교의 시골 ㅇㅇ보육원 부근에는 아이들을 사먹일 만한 식당이 별로 없어 중국집에 갔는데, 아이들의 온 얼굴과 손이 짜장으로 검게 범벅이 되었다. 그러면서도 해맑게 웃는 그 얼굴이 사실은 상당히 귀여웠다. 이 아이들이 컸을 때 추억을 회상할 것이 있고,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자랐음을 기억하길 바라는 마음에 수많은 사진을 찍었고, 그 사진들을 앨범으로 만들어서 보육원으로 보내 주었다. 그리고 수년이 흘렀다.
그런데, 그 사진들이 그 아이와의 인연을 계속 연결해 줄 연결고리가 될 줄은 그때는 전혀 알지 못했다. 시간이 흘러도 엄마는 아이를 챙겼지만 내 머릿속에선 그 아이가 점점 잊혀져 갔다. 엄마는 사정이 있어 수년간 아이와의 결연이 끊어졌었고 엄마의 부탁으로 나는 홀로 아이를 다시 찾으러 보육원을 찾았다. 마음이 콩당콩당, 근 13년 만에 본 아이는 이미 어엿한 중학생으로 성장해 있었고, 사뭇 성격이 차분해진 듯 했다. 놀란 것은 아이랑 한국말로 소통이 된다는 것이었다. 어렸을 때 말이 통 먹히지가 않던 아이가 어떻게 자랄지 심히 걱정되었는데. 사람에 대해 섣불리 판단하면 안되는 것을 깨달으며 아이에게 정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더 놀라운 것은 피아노에 재능을 보이며 여러 콩쿨에도 입상을 하면서 많은 후원인들의 관심을 갖는 아이로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통제 안 되던 아이를 이렇게 잘 키워주신 ㅇㅇ보육원에 정말 마음으로 감사드렸다. 얼굴은 어렸을 때의 귀여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고, 오랜만에 봤는데도 전혀 아이가 낯설지 않았다. 숫기가 없다는 담당자의 말과는 다르게 아이는 활짝 웃으며 누군가 생일에 자기를 기억하고 찾아와 주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히 기분이 좋아보였다.
시골 동네는 13년 전과 비교해 거의 변화가 없었고, 그 중국집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 주변은 거의 모든 게 달라진 게 없는데 변한 것은 우리의 모습뿐이었다. 이제는 짜장면이 싫다고 했다. 아이는 어렸을 때부터 자신의 사진첩에 간직되어 있던 사람이 누군지 궁금했는데, 지금 눈앞의 이모인 것에 대해 무척이나 반가워했다. 그날부터 나와 그 아이의 첫 소통이 시작되었다. 아이가 가끔씩 보육원에서 조차 깜둥이라는 놀림과 배척을 당하기도 하여 마음속의 한이 많이 자리 잡아 있는 것을 느꼈다. 그 후로 나는 아이를 자주 찾아갔고, 그 아이는 운명처럼 내가 사는 시의 ㅇㅇ예고에 진학하게 되었다. 보육원에서도 기숙사에 원생이 나가 있는 경우는 이 아이가 처음 있는 일이라 아이와 같은 시에 살게 된 나는 ㅇㅇ보육원에 잘 얘기한 후 학부형처럼 아이를 살뜰히 챙기게 되었다. 아이가 할머니라 부르는 우리 엄마와 나는 그 후로 매일 카톡방에서 아이와 대화를 하며 아이에게 부족한 인성교육과 예절교육, 맞춤법 등을 가르치며 마치 가족과 같은 끈끈한 유대감을 이어왔다. 이 아이가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어 하는 꿈을 키울 수 있도록 여러 사람에게 도와달라고 나는 발로 뛰어 다녔다. 고맙게도 우리 남편의 경제적 지원 외에 여러 분들이 조금씩 도와 주셔서 아이가 그토록 바라는 피아노 전문가 레슨을 주에 수회로 늘릴 수 있었다.
그리고 예고 첫 실기 시험 날이 되자 아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모 ... 저 실기에서 큰 실수를 했어요. 1등 못할 거 같아요…………………….”
아이는 한동안 말이 없었고, 정적이 흘러왔다. 한참 후에야 조용히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껴 우는 듯 했다. 아이가 말하지 않아도 아이의 감정이 고스란히 내 마음속에 내리 박혔다. 자기에게 향하는 기대에 보답하려고 얼마나 긴장했으면…내 마음도 찢어졌다.
“괜찮아. 1등 못해도 돼. 네가 피아노를 잘 치기 때문에 우리가 널 사랑하는 게 아니야. 어른들은 니가 부모로부터 받지 못한 지원을 대신하여 너의 꿈을 응원하는 것 뿐이야. 최선만 다하면 돼.” 그 후, 아이는 사랑을 듬뿍 받으며 정서적인 안정을 얻더니 결국 다음 학기 실기에는 놀랍게도 1등을 하게 되었다.
사실 나는 젊은 날부터 성공의 열망이 강하기도 했고, 내 자신을 너무 소중히 여겼기 때문에 40세가 넘도록 아이를 갖지 않았다. 아이를 기르며 아이한테 시간을 할애하고 열정을 쏟아 부을 시간에 내 스스로의 인생에 충실하자라는 주의였다. 그런데 내 인생에 이 아이가 갑자기 들어왔다. 아마도 엄마가 안 계신 아이와 자식이 없는 내가 만나 서로에게 부족한 것을 채우며 켜켜이 유대감을 쌓게 된 것이다. 가족여행을 해본 적이 없을 아이를 위해 방학 때 아이의 할머니인 우리 엄마, 이모인 나, 또 나의 부탁으로 자주 아이를 보살펴 주는 아이가 큰이모라 부르는 나의 지인, 아이 이렇게 넷이 2박 3일 동안 무늬만 가족인 가족여행을 갔다. 첫 가족여행을 떠나 할머니와 한 방을 썼던 아이는 신이 나서 할머니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하고, 한껏 들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자기 전 침대에 누워 할머니에게 친구와 가족에 대해 얘기할 때
“내 할머니는 윤ㅇㅇ씨, 엄마는 허ㅇㅇ씨”
라고 대답했다며 자랑스럽게 할머니에게 이야기 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다음날 엄마를 통해 듣고는 우리는 가족의 존재를 당연시 여기지만, 아이에겐 얼마나 불러보고 싶었던 자기 가족의 이름이었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 왔다. 그때는 아이가 자기를 낳아주신 아버지, 어머니의 성함도 모르고 있다는 것을 나는 몰랐다.
올해 아이가 만 17세가 되면서 주민등록증 신청이 가능한 나이가 되었다. 관할지의 주민센터로 데리고 가 주민등록 발급신청이 끝날 때까지 옆에서 조용히 지켜봐 주었다. 주민등록증 발급, 그 의미는 이제 아이도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을 의미하였기에 홀로 할 수 있음에도 내가 그 모습을 옆에서 묵묵히 지킨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니가 어른이 되더라도, 니가 보육원으로부터 나라의 보호로부터 독립을 하게 될 지라도, 난 너의 곁을 이렇게 항상 지키고 니가 성인이 되어가는 것을 지켜봐 주겠다‘는 의미를 지닌, 아이에게 던지는 큰 무언의 메시지였다.
혹시라도 아이가 어른이 되어 자신의 뿌리를 찾고 싶어할 날이 생길 수 있어, 그 아이의 추적할 수 있는 친족의 서류를 모조리 뽑았다. 외국인인 아버지는 이름 외에 찾을 수 있는 게 없었고 외가는 상당히 복잡했다. 친엄마의 성함도 모르던 아이지만 친엄마의 성을 따른 자신의 정체성을 갖게 하고 싶었다. 돌아가신 친엄마의 기일은 챙길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해서 아이 친엄마의 사망일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그 친엄마의 사망일을 보고 나는 순간 얼어붙었다. 아이 친엄마의 사망일이 하필이면 아이의 생일 바로 하루 전날의 저녁인 것이었다. 아이의 생일을 넘기지도 못하고 전날 돌아가신 친엄마가 가슴시리게 가엽기도 했지만, 더 가여운 것은 아이였기에 난 눈시울이 붉어졌다. 너는 더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보호 속에 자라려고 보육원에서 살게 될 운명이었던 것이지 절대 버려진 아이가 아니라 오히려 선택받은 아이임을 항상 마음 속에 새겨 주고 싶었다. 그런데 부모가 누군지도 잘 모른 채 살아가면서 이 세상에 태어났음을 축복받을 수 있는 유일한 날이 생일이거늘 하필 하루 전날이 엄마의 기일이라면 이 아이가 축복받아야할 날마저 슬픔으로 얼룩질 것 같았다. 그래서 더 이상 친엄마의 궤적을 쫓을 이유가 없어졌고 알아보기를 포기했다. 그리고 내가 그 자리를 대신해 줘야 하는 사명감이 들어 난 아이에게 내가 죽으면 니가 내 제사를 지내 줘야 한다고 농담반 진담반 이야기를 시작했다.
올해 초 아이가 비교적 괜찮은 국내의 피아노 콩쿨 대회에 나가 콩쿨이 끝난 후 내게 전화를 했다.
“이모! 저 동 학년부에서 1등 했어요”
“와~진짜? 정말이니?‘
”네. 정말이예요“ 아이는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대답했다.
”ㅇㅇ아! 성실하게 노력해줘서 너무 고맙다. 너무나 잘 했다. 이모는 네가 너무 자랑스럽다. 지금까지 맘속에 숨겨 놓은 말이지만 내가 너를 만나려고 아이를 낳지 않았던 것 같다.”
“이모..정말요? ……………………………. 저 지금 눈물이 줄줄 흘러요….”
우린 한동안 대화가 없었다. 그 침묵 속에서 서로가 하고 싶은 말을 서로 말 없이도 알고 있는 것만 같았다.
‘누군가 내게 가족의 이름을 묻는다면, 내 엄마는 윤ㅇㅇ씨, 내 남편은 이ㅇㅇ, 내 아들은 ㅇㅇㅇ.’라고 말할 거야.
‘이모, 저는 드디어 가족이 생겨서 너무 행복해요’ 라고 내 귓가에 들리는 듯 했다.
댓글목록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오늘 딸의 46회 생일을 맞이하여
띠동갑인 딸에게 고마움을 표하기 위해 큰 용기를 내어 겸허히 딸의 수필을 게시봉사하였습니다.
예로부터 자식 자랑은 #팔불출이라고 했습니다.
ㅇㅇ시 주최의 백일장 공모전 시제가 코로나 , 가족, 가방 중에서 가족을 택해 응모했다가 운 좋게 최우수상을 수상했습니다.
결국 자식 자랑이 되겠습니다만, 언제 어디서나 불교의 #열반경에 나오는 자비희사(慈悲喜捨)의 사무량심(四無量心)을 은연 중에 꾸준히 실천해 왔던 딸입니다.
자신의 에너지를 항상 늘 120%이상 쏟아가며 사람과 동물 식물 생명체 중 그 어느 것 하나 치우침없이 열심히 사랑했던 까닭에 건강이 그리 좋지 못하지만 여전히 훈습(薰習)을 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얼마 전 오른쪽 눈에 망막전막이라는 젊은이에게서는 거의 찾아 볼 수 없는 병에 걸렸어도 새로 안경을 맞춰 쓴 채 책 읽는 습관을 여전히 버리지 않아 걱정입니다. 수술을 미루면 실명할 수 있다 하여 몇 군데 병원을 알아 봤으며 가장 신임이 가는 병원에서 한달 후쯤 안과 수술을 하기로 했으니 엄마인 제가 간병을 해야 합니다.
일평생 딸과 아들의 지극한 효심 덕분에 노년을 안락하게 살아가는 고희(古稀)의 엄마가 사랑하는 딸한테 힘을 내라는 뜻에서 또 한번 객기를 부렸습니다. 딸의 초심의 글에 부족함이 많지만 끝까지 인내하면서 읽어 주시는 불자님들과 독자님들께 멀리서 합장배례하며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시인 · 칼럼니스트 장종국씨의 심사평>
가족 관계란, 사람이 처음으로 대면하는 사회이면서 개인이 사회에 접촉하는 첫 통로가 되겠다. 아이들에게는 가족관계가 절대적이다. 독립된 삶이 거의 불가능한 아이들에게 물질적, 정신적, 정서적으로 필요한 대부분을 채워주는 것이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 성숙 되고 채워지는 것이다.
가족을 가족답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내려지는 답은, 정상 가족을 설정하는 기준으로 혈연관계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그 범주에서 벗어난 많은 형태의 가족들은 억압을 받기도 한다.
혈연의 범주를 벗어난 가족의 형태도 다분히 존재하면서 갈등과 애증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정서적이며 인간적인 갈등을 허ㅇㅇ님의 수필 <너를 만나려고 했나 보다>에서 짜임새 있는 필치로 공감을 불러 일으키게 하였고, 작품성 높은 수준에 도달했기에 심사위원의 공통된 합의의 일치로 "최우수상" 당선작으로 선정되었다.
나무대원본존 지장보살마하살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
묘엄심님의 댓글
묘엄심 작성일
훌륭합니다. 생일과 수상을.....
해탈심 보살님 만 문필가인줄 알았는데 따님도 수필가네요.
이렇게 읽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묘엄심 합장
ybr님의 댓글의 댓글
ybr 작성일
영원한 꽃보살, 묘엄심 보살님!
제가 늦게 잠들었는데
잠이 덜 깨어
반갑고 고마운 댓글을
나중 것만 읽어 되어 실례를 했습니다.
룰륭하다는 말씀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습니다.
문필가 수필가라 칭송해 주시니
부끄럽지만 격려와 성원 잊지 않겠습니다.
소중한 댓글 감사 감사드립니다.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
묘엄심님의 댓글
묘엄심 작성일
생일 축하 드리고 상 받은 것도 축하드리고 이런 따님 두신 것도 축하드립니다
나무약사여래불
ybr님의 댓글의 댓글
ybr 작성일
영원한 꽃보살, 묘엄심 보살님!
정말 부지런도 하십니다.
진정성 있는 고운 댓글 감사드립니다.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
정광월 합장님의 댓글
정광월 합장 작성일
작가가 없길래
해탈심보사님 따님
축하드립니다
그 엄마에 그 딸
요즈음 결혼도 안하고
자식도 없는 아들.딸들
많아요
칠순 가족 사진
예뻐요
축하드립니다
건강하셔요
묘엄심 보살님
착하시죠
하늘색 바지.위 정장
비취 목걸이
묘엄심 보살님
안면암 포교당 위해
애써 주셔요
해탈심 보사님의 헌신으로
안면암 홈피가 빛납니다
건강하셔요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참 좋은 도반, 정광월 보살님!
매사에 두루두루 애어(愛語)를 항상 보여 주시니 역시 시를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묘엄심 보살님의 작품,
#초파일의 석가모니부처님 관욕대의 꽃들은 해마다 대단히 아름답습니다.
저의 헌신이라는 과찬이 얼토당토 않습니다.
너무 부끄럽습니다.
관객이 없는 연극은 무의미한데
꾸준히 지켜 보시는 독자님들이 계시고
몇 분 보살님들이 한결같은 마음으로 아낌없이 늘 댓글을 보시하시니
불보살님들께서 염화미소를 짓고 계시는 듯합니다.
소중한 댓글 감사 감사드립니다.
해탈심 합장
원만행님의 댓글
원만행 작성일축하합니다 열심히 노력하시는 해탈심 보살님의 보살행에 부처님의 가호로 연생연멸의 중도로 깨달음의 진정한 여래 로 나시기바랍니다 나무석가모니불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불지촌을 바라보니 각수에담화는 난만개더라 나옹 선사님의 토굴가 끝자락에 ......거듭축하드립니다 .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생기발랄하신 큰보살, 원만행 보살님!
어머나~~
어렵사리 시간 내어 글보시해 주셨으나 제가 순서를 틀려 죄송합니다.
원만행 보살님이야말로 보살행하시느라 여념이 없으신데 쉼없이 수행정신하고 계십니다.
축하 말씀 가슴에 감사히 새기겠습니다.
소중한 댓글 감사 감사드립니다.
해탈심 합장
유가연님의 댓글
유가연 작성일
소소님 축하드립니다. 모두 축복합니다.
소소님의인성을 그대로 물려 받은 따님이 대견하고
신기합니다. 정말 부럽고 축하드립니다.
수술의경과또한 월등할것을 믿습니다.
대자대비하신 부처님의자비로 완쾌 하실겁니다.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가장 오래된 친구 유가연님!
덕담이 무척 버겁습니다만 , 감사히 깊이 새기겠습니다.
네. 말씀처럼 수술 경과가 좋아야 할 것입니다.
대자대비하신 부처님의 가호가 우리 모두에게 함께하시길 기원드립니다.
소중한 댓글 감사 감사드립니다.
해탈심 합장
김광식님의 댓글
김광식 작성일
추카추카
참 좋다
감사합니다
ybr님의 댓글의 댓글
ybr 작성일
김광식님!
진솔하신 댓글에
두 손 정중히 모아 감사드립니다 .
부디 아무쪼록 자주 왕림하시길
정성껏 비옵니다.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