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봉스님 [안면암 일기] : {인간의 완성} 53 부처와 중생의 불이(2) 2022년 6월 15 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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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탈심게시봉사 댓글 3건 조회 213회 작성일 22-06-15 07:31본문

53
부처와 중생의 불이
(법화경 7)
세상에서 가장 못난 사람 중에 하나는 다른 이가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기분 나빠 하고 화내는 사람이다. 상대방은 내가 지금 이 자리에서 잘못 행동한 것을 지적하고 있는데 '나는 과거에 어떤 직책을 역임한 사람이다.' '나는 현재 어떤 직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나는 돈이 많은 사람이다.' '나는 무서운 힘을 가진 실세의 친척이다.' '나는 유명하고 인기가 있는 사람이다.' '나는 존경받는 선생님이다.' 등과 같은 말을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나의 조상이 양반이었다는 사실은 내가 지금 양반이라는 것을 보증하지 못한다.
내가 학교 선생을 했다는 사실이 지금 모범적 인격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보증하지 못한다. 내가 본래 부처라는 사실이 내가 현재 부처임을 보증할 수 없다. 오직 내가 현재 부처의 행을 짓는 것만이 내가 부처라는 것을 확실하게 보증할 뿐이다.
불교에서는 궁자가 생긴 원인과 착각된 궁자는 본래 있는 것이냐, 없는 것이냐의 문제가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그 이유는 이 문제가 무명 의 기원과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본래 우리가 부처라고 한다면 그대로 부처이면 될 터인데 왜 우리는 미혹무명과 갈애 집착에 빠쪄서 윤회의 길을 방황해야 하느냐는 물음이 나온다.
무명의 시작과 끝의 문제는 그 무명에 의해서 생긴 지옥 아귀 등 십계 중에 불계 이외에 9계가 있는데 그것을 본래 있는 것으로 생각할 것이냐 없는 것으로 생각할 것이냐의 물음과 관계가 있다. 무명이 본래부터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라면 그에 의해서 우리가 무명에 대처하는 방법도 달라져야 하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서 공사상으로부터 전환된 모든 것이 서로 꽉 얽혀서 포함되어 있고 차 있다는 사상에서는 무명과 진여, 부처의 단계와 지옥 · 아귀 · 축생 등 중생의 단계가 본래부터 서로 포함하고 갖추어 있다는 입장이다. 장자의 아들에게는 가난한 궁자가 될 가능성과 장자의 상속자가 될 가능성을 똑같이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악인이라고 해서 그의 마음이 지옥으로만 되어 있지는 않다. 그의 마음에도 천상사람의 마음, 보살의 마음, 부처의 마음이 같이 포함되어 있다. 단지 그가 악인인 것은 그가 지금 악인의 마음을 먹고 악인의 행을 짓기 때문이다. 부처라고 해서 그의 마음이 불국정토로만 되어 있지는 않다. 그에게도 지옥의 마음, 아귀의 마음, 축생의 마음, 아수라의 마음이 포함되어 있다. 그가 부처인 것은 그가 지금 부처의 마음을 먹고 부처의 행을 짓기 때문이다.
악인에게도 부처의 마음이 있지만 부처의 마음은 쉬고 악인의 마음은 활동 중에 있을 뿐이다. 부처에게도 악인의 마음이 있지만 악인의 마음은 쉬고, 부처의 마음이 활동 중에 있을 뿐이다.
어떤 사람이 선인이냐 악인이냐, 부처냐 중생이냐 하는 것은 그가 가진 본래의 성품이 선 한가 악 한가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가 가지고 있는 어떤 마음이 잠자고 있고 어떤 마음이 활동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이다.
궁자와 장자의 상속자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 두 사람은 이름만 다르게 불려 질 뿐 동일인이다. 비굴한 사람이 되느냐 , 당당한 사람이 되느냐의 사이에는 자신이 본래 상속자라는 깨달음과 그 깨달음의 실천이 없느냐 있느냐에 차이가 없을 뿐이다. 궁자가 장자의 상속자가 되었다고 해서 한 그릇의 밥을 먹던 이가 두 그릇의 법을 먹거나 한 개의 모자를 쓰던 사람이 두 개의 모자를 쓰는 것은 아니다. 오직 마음가짐과 인격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궁자는 번뇌에 물든 이를 뜻하고 장자의 상속자는 번뇌를 뛰어넘은 이를 의미한다. 그러나 존재하는 것은 모두 개념으로 정해진 것일 뿐이고 개념으로 정해졌다는 말은 번뇌를 의미했기 때문에 궁자나 상속자나 모두 번뇌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또 깨달음의 인격과 행동이 번뇌를 없애지도 않는다. 단지 번뇌를 활용할 뿐이다.
똑같은 물을 뱀이 마시면 독을 만들고 소가 마시면 젖을 만든다. 무명의 업이 그 아들을 움직이면 궁자를 이루고 깨달음의 원과 수행이 그 아들을 움직이면 상속자를 이룰 뿐이다.
부처를 이룬다 함은 궁자를 죽이고 상속자를 새로 태어나게 하거나 번뇌를 죽이고 보리를 새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번뇌 속에 있는 상태 본래의 족보, 본래의 부처를 여실히 관하고 본래의 부처자리에서 행동할 뿐이다. 그래서 작은 수행도 바로 부처를 만들며 찰나의 수행도 찰나의 부처를 만드는 것이다.






댓글목록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 오늘의 부처님 일기 >
참는 인내는 최상의 고행이며
열반은 가장 훌륭하다고 깨달은 분들은 말한다
참으로 남을 해치는 사람은 출가자가 아니며
남을 괴롭히는 사람은 사문이 아니다.
< 법구경 > 담마빠다
< 학명스님 >
묵은 해니 새해니
분별하지 말게
겨울 가고 봄이 오니
해 바뀐듯 하지만
보게나 저 하늘이
달라졌는가
우리가 어리석어
꿈속에 사네
나무대원본존 지장보살마하살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
원만행님의 댓글
원만행 작성일출가 공덕의 구족이 천상에나고 여러 관문에 통과하되 깨달음을 다얻은것은 아니다 . 중요한것은 바른 지견법에 대한 바른안목을 갖춰 중도의 실천을 할수있다 .간화선 출가 수행에 집착하면 가르침의 정법에는 멀다고할수있다 . 정견을 갖춰야한다 . 나는 꽃사슴 ? 품고살면안된다 ! 중도정견의 지견과 볼법의 를 잘 아는것이 갖춰져야한다 . 중생의 생활과 자만과 집착이 꽉 차있다면 안되는일 ! 보살행을 모싸더라도 바로알고 있어야한다 . 어래는 중도정견을 지혜를깆 추신분이고 행이나오신거고 안과 밖이 명철한 삶이 무실무허다 연기법에 연생 연멸이다 모든것이 순간순간 변한다 . 출가도 정견 지견이 열리지 않는 한은 ? 착각 소견 ? ! .. . 완성된 무실 무허의 무위법을 무심 허허 . 평상심 무아를 꼭 알아야한다 .조주 무자 . 무위법을 안다 . ! 잘 알아야한다 . 체험과 사무친 아품이 있어야할것이다 ..? 지혜 . 문수와 보현 보살 ? 오로지 불법속의 여 래 !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사진의 동자상의 천진. 함 짙은 녹 음의 나무위에 맑은 하늘이 날아 다니고 싶은 충동입니다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생기발랄하신 큰보살, 원만행 보살님!
비가 제법 쏟아지고 있습니다.
이런 날은 무심 허허가 무아가 더욱 생각나는 날입니다.
안면암 동산의 천지불들의 모습 참으로 사랑스럽습니다.
날아 다니고 싶은 충동이라니 상근기이십니다.
소중한 댓글 감사 감사드립니다.
해탈심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