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봉스님 {안면암 일기} : [ 인간의 완성 ] 42 머무는 바 없이 내는 마음 (1) (금강경 2) 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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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탈심게시봉사 댓글 3건 조회 218회 작성일 22-05-22 07:41본문
[ 불유교경(佛遺敎經) ]
(3) 번뇌를 대치하는 법
1) 성냄의 번뇌를 다스리는 법
너희 비구여, 만일 어떤 사람이 와서 너의 사지를 마디마디 찢는다 해도 마땅히 자기 마음을 깨끗이 가져서 성내게 하지 말고, 또한 입을 깨끗이 가져서 나쁜 말을 내게 하지 말라. 만일 성내는 마음을 그대로 놓아 두면 자기의 도를 스스로 방해하고 남의 공덕의 이익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참음이 덕이 되는 것은 계를 가지거나 고행하는 것도 거기에 따르지 못하는 것이니, 능히 참음을 행하는 사람이라야 위대한 힘을 가진 성자(有力大人)라 이름할 수 있다. 그러나 만일 남의 못 견딜 꾸짖음의 독(毒)을 반갑게 받기를 감로수(甘露水 : 죽지 않는 약)를 마시듯 하지 못하는 사람은 도에 들어간 지혜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왜 그런고? 성냄의 해(害)는 모든 착한 법을 부수고 좋은 명예(도의 명예)를 헐어서, 이승에서나 저승에서도 남이 좋게 보지 않을 것이다. 마땅히 알라. 성내는 마음은 사나운 불꽃보다도 더한 것이니 항상 마땅히 막고 지키어 마음속에 들어오지 말게 하라. 공덕을 겁탈하는 도둑으로 성냄보다 더한 것이 없느니라. 속인은 욕심을 가지며, 도를 행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를 제어하는 법이 없기 때문에 성냄도 오히려 용서할 수 있지만, 집을 나와 도를 행하는 욕심 없는 사람으로서 성냄을 품는 것은 아주 옳지 않은 일이다. 그것은 마치 말갛게 갠 날에 번개가 불을 일으키는 것과 같아 있을 수 없는 일이니라.
42
머무는 바 없이 내는 마음 (1)
(금강경 2)
매달림 없는 마음으로 역사무대에서
최선을 다하기 위해서는 일상사의 하나하나에
조심스럽고 성실하게 임해야 한다.
금강경 중에 유명한 구절로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이 있다. '응무소주 이생기심'은 집착함이 없이 마음을 내라는 뜻이다. 육조혜능스님은 이 구절을 듣고 깨쳤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러면 이 금강경 가운데 이 구절이 나오는 상황을 읽어 보기로 하자.
부처님이 수보리에게 묻는다.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보살이 불국토를 장엄하느냐?"
"아닙니다.세존이시여. 왜냐하면 불국토를 장엄한다고 하면 그 장엄은
진정한 장엄이 아니라 오직 그 이름만 장엄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수보리야, 그렇기 때문에 수행하는 보살은 청정한 마음을 낼지니,
눈에 보이는 것을 비롯해서 모든 감각기관의 대상에 의지해서 마음을 내면
안 된다. 응당 머문 바가 없이 그 마음을 내야 할지니라."
부처님이 수보리존자에게 묻고 대답하는 형식을 취하면서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는 데로 유도한다.
불국토를 장엄한다는 생각으로 장엄하면 그것은 이미 불국토도 아니고 장엄도 아니라고 한다. 왜냐하면 물질적인 것이거나 정신적인 것을 막론하고 불국토를 어떤 실체적인 것으로 잘못 집착하기 때문이다. 반야부의 모든 경전들과 마찬가지로 《금강경》도 반야바라밀을 실천하는 데 있어서 철저한 자기 지움, 자기 버림, 집착의 지움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깨달음의 세계를 꾸민다는 이름으로, 깨달음을 실천적으로 받아들이면 이미 그것은 깨달음에서 멀어진 것이다. 그 깨달음의 세계 또는 불국토가 실체적인 것이 되면 현실을 떠나고자 하는 마음과 이상세계를 기다리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게 된다. 철저한 공을 닦는 길과는 반대의 길이 생기게 된다. 그러므로 반야바라밀을 닦는 것이 바로 불국토를 장엄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 장엄은 수행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일지언정 목표로 할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다음에 감각기관의 대상에 머문 바가 없이 마음을 내라는 부처님의 말씀이 이어진다. 감각기관의 대상은 육체적 물질적인 것이니까 나쁘고 정신적인 것은 좋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다. 육체적인 것이나 정신적인 것을 막론하고 객관적인 불국토가 실체적으로 독자성을 가지고 존재한다는 집착의 마음으로 불국토를 장엄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여러 번 반복하지만 불국토나 불국토의 장엄은 반야바라밀을 닦은 결과일지언정 목표는 아니다.
이것은 어떤 이가 수행하다가 목숨을 거둔 다음에 그 수행자의 몸을 화장하여 사리가 나왔다면 그 사리는 수행한 결과일지언정 수행이 목표가 될 수 없는 것과 같다. 효부상을 받은 사람이 시부모를 잘 모신 결과로 상을 받았을지언정 효부상을 받기 위해서 노력한 것은 아니다. 어떤 이가 효부가 되기 위해서 노력했다면 그녀는 이미 효부가 아니다. 사회봉사를 해서 사회적은 존경도 받고 국가로부터 훈장도 받은 사람이 있을 경우 그는 봉사한 결과로 훈장이나 존경을 받았을지언정 그것들을 얻기 위해서 봉사활동을 한 것은 아니다. 그가 상을 받고자 하는 마음을 조금이라도 내었을 때 그는 이미 존경을 받을 수 없는 사람이 된다.
부처님은 불국토를 장엄한다는 마음으로 장엄을 하면 이미 그것은 장엄이 아니므로 감각기관의 대상에 의지하지 말고 깨달음의 세계를 꾸미기 위한 마음을 내라고 한다.
그 다음에 '응무소주 이생기심'이 이어진다. 이 구절의 뜻만 상각하면 '집착이 없어 마음을 내라.'가 되지만 불국토를 장엄하는 것과 관련을 지어서 생각한다면 불국토라든지 장엄한다는 것에 대한 일체의 집착을 여의고 불국토를 장엄할 마음을 내가.'는 뜻이 되겠다.
여기서는 수행의 자세를 가르치고 있는 것이므로 일차적으로 부정하는 불국토나 부정 뒤에 오는 불국토가 다 같이 공사상에 의한 육바라밀과 육바라밀을 반야바라밀로 회향하는 것이 되겠다. 이 불국토의 장엄은 우리가 살고 있는 역사라는 무대 위에 육바라밀의 행을 공연하는 것이 된다.
'응무소주' 즉 '머무는 바 없음'이《반야심경》에서의 '색불이공(色不而空)'이라고 한다면 '이생기심' 즉 '마음을 내라'는《반야심경》에서의 '공불이색(空不而色)'이 될 것이다.
'색불이공' 즉 '물질이 공과 다르지 않다.'는 것은 현실에서 공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요, '공불이색' 즉 '공이 물질과 다르지 않다.'는 말은 공의 세계에서 현실의 역사세계에서 나오는 것이 된다. '응무소주' 즉 '불국토에 머무는 바 없다.'는 것이, 현실의 세계에서 공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요, '이생기심' 즉 '불국토를 장엄할 마음을 내라.'는 것이 공의 세계에서 현실의 세계로 나오는 것이다.
ㅡ 죄송합니다만, 내일 또 이어 게시봉사하겠습니다.

오선주 보살님의 <불이여래 부처님>



댓글목록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 오늘의 부처님 말씀 >
"자기를 이기는 것이 가장 현명하니 사람 가운데 영웅이라 한다."
< 법구경 >
< 아침에 > / 김율희 작가님
꽃들이 서성대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는가.
이른 아침
바람과 어린 햇살과 떨림으로
찬란한 하루을 여는
꽃들의 기도를 들은 적이 있는가
누구에게는 소소한
그 누구에게는 덤덤한
또 그 누구에게는 반드시 맞아야 할
뜨거운 아침
울컥하는 심정으로
하늘을 보고
세상을 보고
사람들을 바라본다
꽃들까지 얼굴 환해지는
눈부신 아침
그대와 나의
그대들과 나의
이 가슴 벅찬 아침
천 개 만 개의 북소리로 다가오는
아침. 아침.
나무대원본존 지장보살마하살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
원만행님의 댓글
원만행 작성일지혜로운사람은 어리섞은 사람을 책망하지않는다 . 인정은 지혜를막는다 . 집착없이 주는인정이 바라밀이다 . 사상의의미 깨달음의 인욕!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1
생기발랄하신 큰 보살, 원만행 보살님!
우리 불교에서는 무아 무집착을 가르칩니다.
집착 없이 아상 없이 주는 인정인 바라밀은 최고 최상의 목표이겠지요.
소중한 댓글 감사 감사드립니다.
해탈심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