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봉스님 {안면암 일기} : [ 인간의 완성 ] 43 역설적 부정의 이유 (1) (금강경 3) 2022년 5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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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탈심게시봉사 댓글 3건 조회 178회 작성일 22-05-24 06:46본문
[ 불교유경]
(3) 번뇌를 대치하는 법
3) 첨곡(諂曲 : 아첨)의 번뇌를 고치는 법
너희 비구여, 아첨하고 거짓된 마음은 도와 더불어 서로 어긋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땅히 그 마음을 순박하고 정직하게 하라. 마땅히 알라, 아첨은 오직 속임밖에 되지 않는 것이니, 도에 들어간 사람은 그럴 수가 없느니라. 그러므로 너희는 마땅히 마음을 단정히 하여 순박과 정직으로 삼아야 한다.
43
역설적 부정의 이유 (1)
(금강경 3)
손가락이 달을 가리킨다면 손가락을 속제(俗諦)이다.
달은 언어에 의해 가리켜진,
그러나 언어로 표현될 수 없는 진제(眞諦)이다.
《금강경》 가운데 나타나는 역설적인 부정에 대하여 《금강경》에서는 '무엇 무엇은 무엇 무엇이 아니므로 무엇 무엇이니라.'라는 부정의 논리가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된다.
이 부정의 논리가 경을 읽는 분들을 당황하게 한다. '갑은 갑이 아니므로 그 이름이 갑이니라.'는 우리의 머리를 어지럽게 한다. 이 부정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때문에 좀 딱딱하고 재미가 없을 것이다. 이 부정의 뼈대는 마치 수학의 공식과 같기 때문이다.
《금강경》에 관해서 관심을 가지는 공덕이 큰 것을 생각해서 인내심을 가지고 대해야 할 것이다. 완전히 이해가 되지 않아도 상관이 없다. 이 역설적 부정에는 뗏목의 비유, 정해진 법이 없음, 불가득, 무소득의 자세가 한 맥으로 연결되어 있다. 먼저 부정의 형태를 보도록 하자.
수보리야, 부처가 설한 반야바라밀은 반야바라밀이 아니라 단지 그 이름이 반야바라밀이니라.
수보리야, 여래가 설한 세계는 세계가 아니라 그 이름이 세계니라.
온갖 티끌에 대해서 여래는 티끌이 아니라고 하니, 단지 그 이름이 티끌일 뿐이니라.
세존이시여, 여래가 사람의 몸이 크다고 하는 말씀은 큰 몸이 아니기 때문에 큰 몸이라고 하신 것이옵니다.
수보리야, 범부에 대해서 여래가 범부가 아니라고 하니 단지 그 이름이 범부일 뿐이니라.
《금강경》에서는 지금 본 것처럼 '무엇은 무엇이 아니므로 그 이름이 무엇이니라.'의 논법이 처음부터 끝까지 많이 널려 있다. 이 형식에서 우리는 의문이 생긴다.
각 부정의 형식마다 세 가지의 같은 단어가 반복되는데 이 세 가지 가운데서 어떤 것이 긍정이고 어떤 것이 부정이냐는 것이다. 가령 반야바라밀은 반야바라밀이 아니므로 반야바라밀이라고 할 경우, 어떤 반야바라밀이 부정되어야 할 반야바라밀이고 어떤 것이 긍정되어야 할 반야바라밀이냐는 것이다.
우리는 진제(眞諦)와 속제(俗諦)에 대해서 살펴본 바 있다. 진제는 언어로 이야기할 수 없는 진리이고 속제는 언어에 의해서 임시방편으로 진리를 나타내는 진리의 모형을 발한다. 손가락이 달을 가리키고 있다면 손가락은 언어로 진리를 가리키는 속제이고 달은 언어에 의해서 가리켜진, 그러나 언어로 표현될 수 엇는 진제이다.
우리가 어떤 것이 부정되어야 할 반야바라밀이고 어떤 것이 긍정되어야 할 반야바라밀이냐고 물을 경우, 어떤 것이 속제의 임시적인 진리이고 어떤 것이 진제의 궁극적인 진리이냐는 질문이 된다.
그렇다면 앞에 말한 세 개의 반야바라밀 중에서, 먼저 일차적으로 제시되는 반야바라밀과 제이차적으로 부정되는 반야바라밀은 궁극적인 반야바라밀이 아니라는 점에 대해서는 부처님과 수보리가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누차 설명한다.
첫 번째 반야바라밀과 두 번째 반야바라밀은 속제적 또는 방편적인 반야바라밀이 된다. 그렇다면 세 번째의 반야바라밀이 궁극적으로 긍정되어야 할 반야바라밀이 되겠는데 《금강경》은 선뜻 긍정점을 바로 내놓지 않고 있다. 반야바라밀은 반야바라밀이 아니라고 부정됨으로써 진정한 반야바라밀이 될 수가 있다. 부정되는 반야바라밀은 오직 이름만 있을 뿐이다. 실체적인 것에 대해서 집착이 없는 반야바라밀, 그것이 진정한 반야바라밀이다. 그래서 우리가 세 번째의 반야바라밀을 집어서 이것이 궁극적인 진제의 반야바라밀이라고 하는 순간 그것은 다시 부정되어야 할 반야바라밀이 된다.
ㅡ죄송합니다만, 내일 또 이어 게시봉사하겠습니다.




댓글목록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 오늘의 부처님 말씀 >
천년만년 온갖 아름다운 옷과
고량진미와 약으로 봉양하고 받들더라도
부모님의 은혜를 다 갚은 것이 아니다
자식은 부모님 덕택에 세상에 태어났으니,
그 은혜는 지극히 무겁다
그러므로 부모님께 항상 효도하고 공경하되
때를 놓치지 말라
< 증일아함경 >
< 화학 선생님 > / 정양
중간고사 화학시험은
문항 50개가 전부 OX문제였다
수업시간에 번호순으로 채점결과를 발표하셨다
기다리지도 않은 내 차례가 되었을 때
"아니 이 녀석은 전부 X를 쳤네, 이 세상에는 옳은 일보다 그른 일이 많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지?
제대로 채점하면 60점인데 기분 좋아서 100점"
그러시고는 다음 차례 점수를 매기셨다
모두들 선생님의 장난말인 줄로만 여겼는데
며칠 뒤에 나온 내 성적표에는 화학과목이
정말로 100점으로 적혔다 백발성성한
지금도 그 점수를 믿지 않지만
이 세상에는 세월이 흐를 수록 그른 일들이
옳은 일보다 많아지는 것도
나는 아직 믿을 수가 없다
시 해설 / 안도현
요즐 같았으면 이 선생님은 '점수 조작'으로 한바탕 곤욕을 치렀을 것이다. 시의 배경은 1950년대 말, 공정한 분배는커녕 정치적 부패가 극에 달했던 때다. 옳은 일보다 그른 일이 많다"는 인식으로 사는 교사는 부조리한 시대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화풀이라도 하고 싶었나 보다. 지금은 모든 성과의 지표를 계량화하는 시대다. 점수는 성과를 객관화하지만 결국은 사람을 소외시킨다. 점수로 따지지 않는, 따질 수도 없는 일들을 인문학이라고 불러도 될까. 그러면 시대에 뒤떨어진 구닥다리로 비춰질까.
나무대원본존 지장보살마하살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
원만행님의 댓글
원만행 작성일별유호상량 공부의힘 얻어서 흔들리지않고 열심히정진 ! 생멸멸이 무위법으로 수행도하고 일체중생과 차별성없는 연기관계기 때문에 꽃은 무심에서 피어난다 .마음다툼없는 무가애고 무쟁삼매 이치알고 열리면 자신감이생긴다 연생연멸이공하고 청정하다 .진성 무염 참성품은 오염되지않는다 . 얻을려고 집착하지않는다 . 무소유는 마음에다툼이없는사람 닦음에상이붙은자는 안된다 . 제대로상이없이 닦는것 뮈위법 ! 도인의상이다 .생멸 멸이를알아 적멸위락 그대로 반야그대로행복 허망 을바로보는것이 즉견여래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생기발랄하신 큰보살, 원만행보살님!
무쟁삼매 (다툼도 갈등도 없어 편안하고 행복한 상태)에 들어갈 수 있다면
극락이 따로 필요없을 것같슴니다.
꽃은 무심에서 피어난다. 참성품은 오염되지 않는다는 법문 잘 새기겠습니다.
소중한 댓글 감사 감사드립니다. 해탈심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