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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도 스승의 날 ] ' 나눔이 곧 수행' / 월주 대종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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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탈심게시봉사 댓글 3건 조회 209회 작성일 22-05-16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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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도 스승의 날 ]   ' 나눔이 곧 수행'  /  월주 대종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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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공 송월주 대종사님 (2021년 7월 22일 열반)의 사진첩에서 여러 장 모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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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친구이며 사형인 혜정스님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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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앞에

석지명 대종사님, 월주 대종사님, 도영 대종사님,  원행 대종사님, 세영 대종사님,  범진 대종사님,  지원 대종사님


나눔이 곧 수행

서울 수유동 삼각산 화계사에서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이 땅에 돈벌러 왔다가 작업장 기계에 크게 다치거나, 두들겨 맞거나, 또는 제 목숨 스스로 끊어서 죽은 이주노동자의 넋을 위로하는 천도재였다. 그 숫자가 3,000명이 넘는다고 했다.

   날씨는 잔뜩 흐렸다. 추풍에 노랗게 낙엽 날리는 고목 느티나무 아래 네팔, 필리핀, 스리랑카, 버마, 방글라데시, 몽골, 인도네시아 등 가난한 나라 젊은이가 500명 이상 모였다.

   불법체류자로 단속반에 쫒겨 다니고 있는 사람들, 차별받고 멸시 당해 가면서 숨죽이고 살고 있는 젊은이들이 슬픔 가득한 얼굴로 맨 땅바닥에 무릎 꿇었다. 먼저 간 친구들이 그저 극락 왕생하라고 빌고

또 빌었다.

    억울하게 죽은 영혼들이 참다 참다 한꺼번에 울음을 터뜨렸는지 기어코 엄청난 폭우가 쏟아졌다. 참 축축하고 서글픈 자리였다.

    

"우리는 오늘의 이 지중한 인연으로, 당신의 죽음이 절대 헛되지 않게 하겠습니다. 이 땅에서 살아가는 모든 이주노동자들을 이웃으로 맞이할 것입니다."

  


    월주스님 말씀이 참 간절했다. 스님은 '동체대비(同體大悲)'하라고. '동사섭(同事攝)'해야 한다고 거듭 호소했다. 그날 저녁 스님 머무는 서울 구의동 아차산 영화사에서 스님과 마주 앉았다.

    "동체대비와 동사섭이 뭔가요?"

    "천지 중생이 나와 한 뭄이라는 것을 알고 자비심을 일으키는 것이 동체대비입니다. 동사섭은 불교 연기법의 세계관에 따라 모든 중생과 희로애락을 함께하는 것입니다. 과학과 문명, 통신과 교통의 발달로 지구촌은 이미 한 마을이 됐습니다. 말과 피부가 다르다고 이주노동자를 괴롭히고 부당한 대우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의 상처와 아픔은 지난 세기 우리 동포들이 일본과 러시아, 미국에서 겪은 일 아닙니까."

     논리가 정연하고 말씀이 똑 부러진다. 월주 스님이 누군가. 사회복지활동과 시민사회운동에 몸 던져 뛰어다니는 우리시대 대표적인 'NGO 스님'이다.  동남아와 아프리카 빈곤 국가에 우물을 파주는 생명의 물 사업을 쭉 해오는 분이다.

    그게 전부가 아니다. 이른바 '10 · 27 법난'에서 몸과 마음을 제일 많이 다쳤다. 1980년 전두환 정권 출범을 앞둔 신군부는 불교계를 심하게 탄압했다. 조계종 총무원과 사찰의 법당까지 군홧발로 들이 닥쳐서 153명이나 되는 스님과 신자들을 잡아갔다.

    월주 스님은 그때 총무원장이었다. 10월 27일 새벽에 어두컴컴한 보안사 서빙고 분실로 끌려가서는 23일 동안이나 조사를 받았다. 평생 몸 붙였던 승복을 벗고 죄수복으로 갈아입었다. 잠은 하루 대여섯시간만 자게 했다. 참 무섭고 어두운 시절이 그렇게 지나갔다.

    2007년이 돼서야 국방부 과거진상규명위원회의가 새로 조사한 결과,'국가가 권력을 남용해서 생긴 일'이라고 발표했다. 뒤늦게나마 명예를 되찾을 길이 열렸으니 스님의 감회가 남다를 터.

    "분하고 억울한 마음보다는 그이들에게 연민을 느낍니다. 하지만 사건의 진상은 낱낱이 밝혀서 역사의 본보기로 삼아야 합니다. 종교와 정치는 똑같이 정통성과 도덕성이 바탕이 돼야 합니다."

     당시 신군부는 조계종에 '전두환 대통령 후보를 지지한다'는 광고를 내라고 여러 번 요구했다고 한다. 총무원장 스님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정교분리 원칙이 깨지면 안 되는 거라고 했다. 그러자 문화공보부에서 '국보위'가 만들었다는 종교단체자율정화지침서를 보냈다. 스님은 "소신껏 해나갈 테니 관은 개입하지 말라"고 했다.

     그래서 신군부 측에 미운 털이 단단히 박혔다. 결국은 사회정화운동을 펼치는 참에 조계종을 '정화 대상'에 넣는 빌미가 됐다.

     "한마디로 총칼로 정권을 잡은 사람들이 불교계를 부패한 집단으로 몰아서 탄압하고 '훼불'한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불교 역사에 중요한 분기점이 된다. 그동안 산중에서 참선만 하던 스님들을 세상일에 눈뜨게 했다. 진관, 지선, 효림 스님을 비롯한 많은 수행자들이 민주화운동에 나서는 시발점이 됐다.


  중생 속으로 재출가하다


월주 스님에게는 '중생 속으로' 또 한 번 '출가'하는 일대 전환의 계기가 됐다. 스님은 총무원장에서 쫒겨난 뒤 아예 한국을 떠나 외국에서 3년을 살았다. 미국과 캐나다, 남미, 유럽의 한국 절에서 설법하고 독서하고 참선하며 지냈다.

    그러면서 찬찬히 살펴보니 선진국의 기독교는 오래전부터 소비자 운동,청소년 선도 활동, 빈곤 구제 활동, 공해 추방 운동 같은 사회복지운동을 활발하게 벌여 신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었다.

    "혼자 성불하겠다고 선방에 앉아 있는 것보다 중생을 위하는 일을 해야겠다는 결심이 섰습니다. 불교에 대승보살도와 보현사상이 있습니다. 중생을 먼저 위하라는 가르침이지요. 원효 스님도 '본래의 청정한 마음으로 돌아가 중생에게 풍요로운 이익을 줘라(歸一心源 饒益重生)'는 말씀을 했어요.

     그런 다짐으로 현실 참여, 시민사회운동, 또는 종교 간 대화에서 불교계를 대표하게 된 게 1980년대 말부처다. 그때부터 'NGO 스님'으로, 그야말로 '제방에 호가 났다'. 그 이후 종교와 사회 원로로서 지역감정해소국민운동본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협의회, 불교인권위원회 등의 단체에서 맡은 직책만도 수십 개다.

     1990년대 후반 들어서는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상임대표, 실업극복국민운동본부 위원장, 위안부 할머니를 위한 '나눔의 집' 이사장, 지구촌공생회 대표이사로 한 발짝 더 나갔다. 산중 선승만 '진짜'로 쳐주던 절집에서 하도 많은 단체와 운동에 이름을 빌려주다 보니 공명심에 맛들인 거 아니냐고 오해하는 사람들도 없진 않았다. 스님의 대답은 이랬다.

    "한국 불교는 개인 수행에 치중하느라 불교 사상의 중요한 한 기둥인 중생제도, 즉 사회 활동을 제대로 한 적이 없어요. 시대는 바뀌었고, 산중 사찰은 세속의 삶과 훨씬 더 가까워졌습니다. 나는 누군가 나서서 해야 할 일을 피하지 않았고, 불교계가 취약한 사회 참여부분을 내가 나서서 메꿨을 뿐입니다. 숱한 직책을 갖게 됐지만 따지고 보면 '깨달음의 사회화'라는 한 가지 일을 하는 겁니다."



     대승불교 보살 사상의 핵심인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  위로는 지혜를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제도한다.)', '자미도 선도타(自未度 先度他 ,  자신을 건지지 못하더라도 다른 사람을 먼저 제도한다)'가 스님의 '서원(마음속에 맹세하여 소원을 세움)'이자 '회향(사회화)이라고 했다.

      "이제 불교는 소외된 사람들이 겪는 질병, 빈곤, 무지, 인권 탄압 등의 사회고(社會苦)를 덜어주는 일에 더 앞장서야 합니다. 모든 진리는 항상 현실에 직면하고 현실 가운데서 실현돼야 합니다. 진흙탕 속에서 연꽃이 피어나는 이치입니다."

월주 스님은 2003년 국제 구호 단체인 '지구촌공생회'를 만들었다. 한국에서 벗어나 전 인류를 향한 동체대비의 길로 나아간 것이다. 한국에서 벗어나 전 인류를 향한 동체대비의 길로 나아간 거다. 캄보디아, 라오스, 베트남, 몽골,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케냐 같은 지구촌의 음지에서 목숨이 경각에 달린 사람들을 구하고 유치원과 학교를 세워 배움의 기회를 줬다. 중국의 조선족, 러시아 연해주와 볼고그라다의 고려인 같은 어려운 우리 겨레도 물심양면으로 도와주고 있다.

     "가장 열악한 곳에서 가장 절실한 일을 해주는 것이 지구촌공동체의 목표입니다. 진정한 봉사는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알게 해주는 일입니다."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각종 병에 걸리는 큰 이유가 '오염된 물' 때문이다. 스님은 그곳 사람들이 웅덩이에 고인 물을 마시고 병을 얻어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지구촌공생회는 2009년까지 캄보디아에 우물 1,000개를 팠다. 스리랑카, 네팔, 라오스, 미얀마에도 우물과 물탱크 2,000곳을 만들어 줬다.

     "목 타는 이에게 샘물을 마시게 해줄 뿐입니다. 감로수가 따로 있는 게 아녜요. 그들에겐 마실 물이 생명수고 감로숩니다. 샘물은 퍼내도 퍼내도 또 고이잖아요? 마음을 그렇게 써야 합니다. 우리 마음 속에도 아무리 퍼내도 항상 고이는 샘물이 있습니다."


   이놈아 , 더 숙여라


전북 정읍 출신인 월주 스님은 얼마 전 입적한 법주사 조실 혜정 스님과 동향의 친구이자 도반이었다. 서울에서 중학교에 다니다가 6 25전쟁이 터져 낙향한 스님은 법주사로 먼저 출가한 혜정스님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전쟁 직후의 사회와 삶에 대한 회의를 달랬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친고 혜정 스님의 권유로 금오 스님 제자가 돼 머리를 깎고 입산했다. 스승은 늦가을 찬 서리와 같았다. 제자들의 참선, 계율, 보살행의 세 가지를 날마다 체크하면서 방심하지 못하도록 가르쳤다.

   어느 날 지나가는 스승에게 합장 반배로 인사를 드렸다. 스승은 인사를 받지 않고 호통을 쳤다. "이놈아, 더 숙여라."

머리가 땅에 닿도록 숙였는데도 계속 "더 숙여라"하고 소리를 질러댔다. 제자의 아만심(교만한 마음)을 없애주려는 스승의 배려였다.

    월주 스님은 선학원, 조계사, 동화사, 금산사 등의 사찰에서 공부했다. 사찰 주지와 총무원 집행부 행정을 맡아 이(理, 수행하는 스님)와 사(事, 행정을 보는 사람)를 겸했다. 금오 스님의 제자들인 이른바 '월자 문중'의 구심점으로 두 차례 총무원장을 지내는 등 막강한 종단 권력이 되기도 했다.

    카랑카랑한 목소리의 스님은 팔십 대라고 믿기지 않은 정도로 열정적이었다. 자그마한 체구에 미남형 얼굴, 핏대가 살짝 올라 있어서 강단과 차가운 지성미를 풍겼다. 어찌 보면 인도의 성자 마하트라 간디를 닮은 듯한 모습이다.

   실제로 스님은 간디를 존경한다. 오래전 미국에서 귀국하는 길에도 석가모니와 인도 최고의 스승 간디, 그리고 라마크리슈나, 암베드카르 등 인도 여러 성자들의 유적지를 순례했다. 그 후에 인도에 가서 한 달을 머문 뒤 <인도 성지 순례기>라는 책을 펴낸 것도 눈에 띄는 이력이다.

    스님은 생전의 김수환 추기경, 강원용 목사와 아주 친하게 지냈다. '길 위의 수행자' 도법 스님 같은 제자를 뒀다. '삼보일배'의 수경 스님 등 올곧은 행동가 스님들도 스님을 따른다.

    월주 스님은 늘 바쁘다. 찾는 사람도 많고, 오라는 곳도 많다. 그렇게 바쁜 중에도 화두 참선을 멈추지 않는다고 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1시간 넘게 고요한 가운데 좌선을 한다. 2012년 김제 금산사 조실로 취임한 뒤에는 틈틈이 서울과 지방을 오간다.

    스님은 조실 취임 인사말(법어)에서 "법좌에 오르는 것은 조실이라는 이름뿐이요, 온몸은 세간 속에서 중생들과 함께하겠다. 부처님같이 말하고, 부처님같이 생각하고, 부처님같이 행동하며 모든 사람과 같은 지향점을 향해 살아갈 것을 다짐하는 일로서 (조실 자리를) 받아 들인다"고 말했다. 과연 월주 스님답다.

    "넘치는 것을 모자라는 곳에 조금씩 옮기는 일, 그게 수행, 봉사, 그리고 바른 삶입니다. 누구나 남의 고통을 나의 고통처럼 받아들이고, 그 고통을 해소할 수 있게 나눔을 생활화하는 세상이 돼야 합니다. 그 자체가 세상은 나와 같은 뿌리이고, 모든 존재는 나와 한 몸이라는 진리에 어긋나지 않게 사는 일입니다."


     밤이 늦었다. 어두운 숲에서 부엉새가 부욱부욱 운다. 노스님은 아예 잠을 잊었는지 돋보기 안경 위로 아래로 눈을 올렸다 내렸다 해가며 만년필로 무슨 글을 쓴다. 내일 또 스님이 마이크 잡을 행사가 있나보다.

    월주 스님, 그렇게 온 세상을 법당 삼았다. 그 마음과 말씀이, 늘상 목마른 우리에게는 깊은 산골짝 바위틈에서 솟아나는 청정한 약수 한 바가지다.

    



댓글목록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마음살림 책에서
혜정 대종사님과 사형사제간이신 월주 대종사님 편을 타이핑해서
게시봉사하였습니다.

우리나라처럼 <부처님 법>이 제대로 살아 숨쉬고 있는 나라가 없는 것 같습니다.

나무대원본존 지장보살마하살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

원만행님의 댓글

원만행 작성일

송월주  큰대종사님 ,혜정큰스님  감사합니다  .거룩하신  생전의 수행에  머리더숙여  감사드리옵니다  땅만보고다니겠읍니다  .  고개더숙여서  참다운 불자로 보살행 잘하겠읍니다  .  어디서 나투셨을까요  ?    ....감사드립니다  .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생기발랄하신 큰보살, 원만행 보살님!

금오 문중의 자랑스런 두 대종사님께 저도 더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저는 아직 땅만 보고 다닐 자신은 거의 없습니다.

어디서 나투셨을까요 ?  큰 화두입니다.

소중한 댓글 감사 감사드립니다.

                                                        해탈심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