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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스승의 날 ] '네가 진 허공이 바윗덩이 무게다' / 혜정 대종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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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탈심게시봉사 댓글 9건 조회 364회 작성일 22-05-15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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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진 허공이 바윗덩이 무게다


"미륵부처 올 때 내 연락할 테니 그때 오라구."

    '속리(俗離)산' 수정봉 아래 법주사 조실 혜정 노스님이 분명히 그렇게 말했었다. 그러고는 껄껄껄 웃었다. 뭔 소린가 싶어서 합장 반 배 하다 말고 고개 들어 스님을 쳐다봤다. 스님은 담장을 파랗게 덮은 담쟁이 잎새 옆에서 짧게 손 흔들어주고는 시침 뚝 떼고 사리각 문 안으로 쑥 들어가버렸다.

   일찌감치 '속리(속세를 떠남)'하신 분이니 역시 속세의 작별 인사와는 다르군. 그렇게만 생각하고 돌아섰다. 높이가 30미터나 되는 금동미륵대불상도 무슨 비밀을 감춘 것처럼 씨익 웃는 것 같았다. 수정봉 하늘이 정말 수정처럼 맑았다. 사람들 발길이 뚝 끊긴 수정교로 말시키지 말라는 뜻의 묵언패(默言牌)를 목에단 노승 홀로 천천히 건너 오고 있었다.

   보은 땅 말티고개를 넘어 속리산 중 천년 고찰 법주사에 다녀온 게 5월, 유난히 햇빛 좋고 산색 푸른 날이었다. 혜정 스님이 우뚝 솟은 미륵불상과 마애불이 새겨진 큰 바위 사이에 있는 사리각에서 날씨처럼 따스한 미소로 맞아줬다.

    사리각은 고려 공민왕 때 부처님 진신사리를 봉안한 사리탑을 지키는 집이다. 활짝 핀 목련꽃과 단풍나무, 꽃 지고 초록 잎새 피어난 벚나무가 사리각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담장을 꽉 채운 담쟁이는 혜정 스님이 40년 전 심었다고 했다.

    사리각 내 큰스님 방은 장식 하나 없이 깔끔했다. 은은한 한지를 바른 벽에 승복 한 벌과 죽비 하나가 달랑 걸려 있었다. 바닥에도 좌복 한 개와 탁상 시계를 올려놓은 서안이 있을 뿐이었다. 깨끗한 모시 승복을 입고 엷은 미소를 머금은 노스님이 담백하게 꾸민 방과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절에 있으면 날마다 '고정판'이여. 배고프면 밥 먹고 졸리면 잠자야지. 그런데 배부른데도 더 먹으려 하거나, 일어나야 되는데도 자는 사람들이 문젠 거여."

    하루 일과가 늘 똑같다는 말씀이다. 스님은 말이 분명한데도 워낙 리듬을 잘 살려서 마치 깊은 산속 계곡물 소리를 듣는 것 같았다.

    혜정 스님은 평생 청빈하게 살았다. 전화나 개인 승용차도 없었다고 한다. 외출할 때는 바랑을 메고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일의일발이면 충분하다며 제자들에게 아무것도 사들이지 못하게 했다.

    노스님은 따로 상을 받지 않고 대중 공양을 했다. 이날도 젊은 스님들과 함께 점심 공양을 하고 돌아온 참이었다. 스님은 법주사처럼 큰 절보다는 조용한 산골에서 홀로 지내고 싶다고 했다.

    어려서부터 조용한 성격에 책읽기를 좋아했다. 전북 정읍의 고향 친구로 고교 시절 혜정 스님의 손에 이끌려 출가한 뒤 평생 도반의 길을 걸어온 월주 스님(금산사 조실)은 "초등학교 때부터 혜정 스님이 우등생, 모범생에 늘 반장을 도맡았다"고 했다.

    고등학교 시절 만해 스님이 창간한 월간 '불교'에서 우연히 서산대사 <선가귀감>에 나오는 선시를 봤다. "삶은 어디서 왔고 , 죽음은 어디를 향해 가는가. 태어남은 한 조각 뜬 구름이 일어남이요, 죽음은 한 조각의 뜬 구름이 사라짐이다."

    불교에 호감을 갖고 공주 마곡사 대원암에 가서 출가했다. 그런데 당시 마곡사가 대처승 절이어서 바로 예산 수덕사로 옮겼다. 혜정 스님이 수덕사 시절을 회고했다.

    선농일치 가풍을 지키는 수덕사는 스님들이 날마다 울력을 했다. 벽초 스님은 그중에서도 거의 일만 하고 살았다. 어느날 벽초 스님이 축대를 쌓느라고 무거운 돌을 져 나르고 있었다. 지나가던 여자 신도들이 그걸 보고 인사 삼아 한마디씩 했다.

   "아유, 스님 너무 무겁겠어요."

   그러자 벽초 스님이 말했다.

   "아, 내가 아니라 보살님들 짐이 더 무거운 것 같소, 허공을 등에 지고 다니니· · · ."

   당시 일타 스님의 속가 아버지인 법성 스님도 수덕사에 있었다. 그 분은 손재주가 무척 좋았다고 한다. 혜정 스님은 그때 법성 스님이 깎아준 죽비를 평생 가지고 다녔다. 사리각 스님 방에 걸려 있던 죽비가 바로 그거였다.

   혜정 스님이 금오 스님을 스승으로 모시게 된 것도 수덕사에서다. 알려진 대로 금오 스님은 불같았지만 참선하는 제자에게는 예외였다고 한다. 누구도 빠질 수 없는 울력 때에도 참선하고 있으면 "그놈 그대로 가만 두거라"하고 감쌀 정도였다. 그런 스승이 "중노릇은 확실히 할 놈"이라며 혜정 스님 등을 두들겨주곤 했다.


고난 없이는 길도 없다

금오스님이 '불교 정화'에 앞장서면서 그의 제자들이 일종의 '결사대' 역할을 했다. 혜정 스님은 조계사에서 단식을 했다.그런 결의에 찬 모습이 높은 점수를 받아서 정화가 끝나자마자 종단과 사찰의 '행정'에 나서게 됐다.

   경남대 종교학과, 동국대 행정대학원 등 학력을 쌓고 법주사 주지, 조계종 총무원장도 지냈다.

   그렇지만 맡은 일이 끝나면 선방에 가거나 토굴에서 살았다. 월출산 도갑사 폐사지에 방 한 칸, 부엌 한 칸의 토굴을 짓고 혼자서 3년을 살았다. 부여 금지암이라는 다 쓰러진 암자에서 밥 짓고 나무하고 빨래하며 1년을 지내기도 했다.

   "수도자는 대자유를 얻기 위해서 모든 걸 다 건 사람들이라구. 부처가 되기 위해 한 번의 인생을 총 투자한 거야. 그러니까 프롭니다, 프로! 그러다 실패하면 본전도 못 건지는 거지. 허허허."

   '인생은 도박'이라는 말이 있기는 해도 '출가는 인생 전부를 베팅한 도박'이라는 스님 말씀이 훨씬 실감났다. 깨닫기만 하면 생사를 마음대로 하고 부처가 되는 판이니 큰 판이기는 하겠다.

   혜정 스님은 수차례 말한 대로 금오 스님 제자들인 '월자 문중'의 핵심 중 한 명이었다. 섬세하면서도 카리스마가 있고 소신이 뚜렷해서 문중 안팎에서 신망이 두터웠다. 금오 스님처럼 혜정 스님도 많은 제자를 뒀다. 지명, 원각, 진성, 관명 스님 등이 조계종 중진으로 이판사판에서 중요한 일들을 맡고 있다.

   "스님들은 왜 그렇게 사제 간을 중요하게 여깁니까."

   "학교 선생님과 제자는 지식을 파고사는 관계잖어. 절의 사제 간은 훨씬 더 원초적인 인연이거든. 도제식으로 배우고, 부자 관계처럼 뒷받침하고, 수행하는 일까지 의지하잖어. 부처님 다음이 은사(스승)니까 부모에게도 댈 게 아니지. 정신을 연마하는 일에 생사를 함께 거는 운명공동체라고 보면 돼."

   혜정 스님은 한문 경전, 선어록뿐만 아니라 영어, 일어 원서까지 읽을 수 있을 정도로 해박했다. 불교계 안에서 개혁파로도 알려져 있었다. 법주사 주지 시절 강원에서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영어, 심리학, 논리학, 비교종교학 등을 교육 과정을 실시하려고 했지만 반대하는 이들이 많아 실패했다. 지금은 조계종단에서 그런 승려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

   "불교는 다른 종교와 비교할 때 어떤 장접이 있습니까."

   "불교는 종교 중 유일하게 무신론이지. 인간의 근원, 끝 간 데, 수원지를 찾아서 마음이라는 놈을 붙잡기만 하면 누구나 인격의 최고 완성자가 되는 거야. 그렇게 다이너마이트를 콱콱 던지는 것처럼 폭발적으로 인간 의식을 바꿔준 성인이 어딨어. 그래서 부처님은 독보적인 대혁명가요, 대웅변가요, 대영웅이지."

   "그렇지만 젊은이들은 옛날식 화두나 고행이 너무 어렵다고 합니다."

   "우리도 옛날만은 못하지. 내가 복이 많아서 우리나라 선지식들을 거의 다 만났어요. 그분들은 중 냄새를 푹푹 풍겼어. 마음속으로 팍 엎드려지는 존경심을 느꼈다구. 시대가 가벼워지고 물질이 득세해서 부분적으로 전문가는 많아졌어도, 전체적으로 대단한 도인을 만나기 어렵지. 그렇지만 세상이 어떻게 바뀌든 간에 스스로 고난을 이겨내지 않고 편하게 갈 수 있는 길은 없어."


      한 토막 봄꿈일 뿐

    "요즘 정치는 어떻게 봅니까."

    "휴머니즘이라는 중심 추를 딱 세우고 공명 정대를 바탕으로 해서 어떤 이상 세계를 만들겠다는 철학을 가져야 대정치인이지. 요즘 그런 정치인들이 많지 않어. 태양이 세상 전체를 비추듯이, 바닷물이 모든 대양으로 고루고루 흘러가듯이 큰 꿈과 안목을 가졌으면 좋겠어."

    혜정 스님은 한 인터뷰에서 "제후들이 부처님을 찾아와 '훌륭한 정치가 무엇입니까'하고 물었을 때 '삭삭논의(數數論議)'라고 대답했다"는 말을 했다. 삭삭논의는 자주 만나 대화한다는 뜻이다. 하물며 오늘날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국민과 소통하는 일이 더 많이 필요하다는 거다.

    "세상 살기가 어렵다고들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사바세계는 산스크리트에서 인토(忍土)를 뜻합니다. 참는 땅이라는 거지. 꾹 참으면 살아갈 만한 세상이란 뜻도 되고, 한 번에 올라가겠다고 점프하다가는 다리가 부러져. 몸은 고되고 마음은 편히 쉰다는 생각, 그러면서 꾸준히 간다고 목표를 길게 잡아야 해요. 이 세상 너머 다음 생까지 목표를 멀리 정해두면 살기 어렵다고 쉽게 좌절할 일이 없어요. 인간은 지옥과 극락의 딱 중간에 있는 존재이기에 노력해서 완전한 곳으로 쉬지 않고 갈 수밖에 없어. 그 생각을 하면 옳은 말과 행동, 바른 생활 태도가 저절로 붙을 거 아녀?"

    "스님도 좋아하고, 미워하는 사람이 있나요?"

    "있지. 미운 사람 미워하고, 좋은 사람 좋아하지. 하지만 옛말에 혼자 있어도 만좌중(萬座中)이 있는 것처럼 하라고 했잖아. 되도록 자제하고 표출하지 말아야지. 미운 것, 좋은 것 자체를 화두로 돌려서 그 뿌리를 캐보면 선과 악이, 호와 오가, 나와 남이 없다는 걸 알게 된다구."

    "어떻게 가실 겁니까."

    "바람같이, 구름같이, 물같이 가는 거야, 티끌만 한 흔적도 남길 게 없어. 비석을 세우고 공적을 적어 넣는 게 아무 필요 없는 거라구. 바위 일생은 엄청난데 아무 말도 없잖어. 우리 인간도 자연의 하나라. 개체도 다 파출되어 나온 거니 죽으면 또다시 전체로 들어간다구, 그러니 되도록이면 이 세상에 안 온 것처럼 가야지."


   

    그날, 이런 긴 대화를 나누고 돌아오는 길에 노스님이 불쑥 미륵부처 얘기를 한 거였다. 그 혜정 스님이 2012년 2월 26일 괴산 각연사에서 세상 나이 78세, 출가한 지 58년 만에 입적했다.

    얼마 전부터 몸이 불편해지기 시작한 스님은 열반을 한 달 앞두고 음성 가섭사, 옥천 가산사, 월악산 신륵사, 제천 자은사 등 주지를 맡은 사찰을 다 돌았다고 한다. 기력이 쇠해 제자들의 부축을 받아 간신히 발걸음을 뗐다. 스님이 제자들의 손을 꼬옥 잡고 "헛되이 시간 보내지 말고 부지런히 공부해야 한다"고 당부하더란다.

    스님의 이 말씀은 부처님이 입멸 직전 했던 말과 다름없다. 부처님은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혹시 의심나는 것이 있으면 물어보라고 했다. 제자들이 슬픔에 잠겨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모든 현상은 변한다 (제행무상諸行無常), 게으름 없이 정진하라"하고는 고요히 눈을 감았다.

    혜정 스님은 입적 열흘 전에 제자들을 각연사에 불러놓고 자신의 임종을 통보하면서 "이제 내 세연이 다 됐다. 내 부도탑은 만들지 마라"고 유언했다.

      맏상좌 지명 스님(안면암 지도법사)에게 써준 열반의 게송은 이렇다.


         사대육식(지수화풍과 여섯 감각 기관)은 본래 공(空)하니,

         (四大六識本來空)

         육근육진(육식의 모든 대상들)이 희롱하는 연극에 불과하다.

         (六根六塵戱弄劇)

         천 가지 기쁨 만 가지 즐거움도 한 토막의 봄꿈일 뿐,

         (千喜萬樂一春夢)

         헐떡임 쉬고 똑바로 보면 새로 깨달아 알게 되리

         (大休觀處見性具)


    입전 하루 전 월주 스님이 무의식 상태에 빠진 스님에게 "모든 게 인연"이라고 위로하니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 다음날 의식을 되찾은 스님은 지명 스님에게 몸을 씻겨 달라고 한 뒤 승복을 다 갖춰 입고 의자에 앉아 잠들듯이 고요히 떠났다.

    영결, 다비식은 스님이 오래 머문 법주사에서 치렀다. 유언에 따라 살아서 입던 황토색 가사 한 장만 달랑 덮은 법구는 각목 틀로 짠 임시 상여에 올라 다비장까지 운구됐다. 그날따라 바람은 거세게 몰아쳤고 다비장 불길도 활활 타올랐다. 맏상좌 지명 스님은 스승 가는 길 내내 오열을 터뜨렸다.

    그 노장 정말 티끌만 한 흔적도 남김없이, 그렇게 갔다. 온 산에 꽃이 져도 향기는 그대로다. 혜정 미륵보살은 언제쯤 이 땅에 다시 올까.  속환사바 광도중생!




댓글목록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오늘은 스승의 날입니다.


8년전에 재발행된 이 책을 읽었을 때와

오늘 일일이 타이핑할 때의 감회가 하늘과 땅 차이였습니다.


우리들의 스승님이신 <석지명 대종사님>의

은사 스님이신 <혜정 대종사님> 편을 추앙하며 정성껏 타이핑했습니다.



다겁생래의 업장 탓으로

살아 계실 적의 <혜정 대종사님>께 삼배를 올릴 기회가 없었습니다만,

오늘을 계기로 티끌만한 불연이라도 이어진 것 같아 대단히 안락(安樂)해지고 있습니다.



<혜정 대종사님>,

끝까지 정독해 주신 모든 분들,

<마음살림>을 출간한 위즈덤경향출판사와

김석종님께 정중히 감사드립니다.



나무대원본존 지장보살마하살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

ㅇㄷ님의 댓글

ㅇㄷ 작성일

'인생은 도박'이라는 말이 있기는 해도 '
출가는 인생 전부를 베팅한 도박'이라는..

-> 존경스런 도박입니다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ㅇㄷ님!

출가는 정말 존경스런 도박입니다.

어느 생에선가는 반드시 해볼 만한 수승한 도박이겠지요.
아니 해봐야 하는 거룩한 도박입니다.

소중한 댓글 감사합니다.

                    나무대원본존 지장보살마하살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

소양자님의 댓글

소양자 작성일

우주, 자연 ,인간, 동물 등등 모두 스승이 아닌분 없어요. 마음을 열고 모고 들으며 행동하며 배워도 끝이 없을거예요. 지금 못 배우면 다음생에 배우고 깨달아야겠지요?? 스승의 날을 따로 정한 것도 어리석은 중생을 위해서겠지요. 스승님께 늘  항상 감사하지요. 그래도 정해 놓았으니까 모든 스승님께 큰 꽃다발과 큰절을 드립니다. 영생 하시길 빕니다. 독일에서 소양자 올림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글로벌 수퍼 원더우먼 소양자대보살님!

보살님 말씀이 맞습니다. 마음만 열면 두두물물 스승이 아닌 것이 없지요.

우리 생은 윤회하는 것이나 다음 생으로 미루어도 좋지만 가능한한 금생에 배우면 좋겠지요.

 저같은 중생은 건망증이 심해서 무엇이든지 잘 잊는답니다.

우리들 큰스님께도 누구에게도 꽃다발이나 큰절 드리지 않았습니다. 

소중한 댓글 감사 감사드립니다.

                                                            해탈심 합장

정광월 합장님의 댓글

정광월 합장 작성일

은사
원파당  혜정 대선사님
자비의 화신  대종사님
생각나는  스승의 날
문도스님들의 어른이신
허허  지명 대종사님
건강하셔요
스승의 날
오전에 댓글 달았는데...

큰스님
잘 계시죠
스님의 친구 향순이와  다른 이름의  친구들과
산책은 요즈음 나가시나요
다 잘 생겼어요
큰스님과 신도들의 보살핌 속에
회복  되시어
많은 곳 다니셔요


              정광월 합장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참 좋은 도반 , 정광월 보살님!

원파당 혜정 대종사님을 추억할 만한 일들이 저는 하나도 없어 유감스럽습니다.

지킴이 보살님 무량이 항순이 광수 청심이 다들 잘 생겼지요? 그리고 무척 순둥이들이지요.

애들이 큰스님과 산책할 때의 모습 참 보기 좋았습니다.

          소중한 댓글 감사 감사드립니다.

                                                                          해탈심 합장

원만행님의 댓글

원만행 작성일

자비하신  종사님 세배드리러가면  핑크색 봉투에반짝빛나는 지페주시면  15년전  인연이라말씀한  뜻 을  색면서 그때법어를    흰구름청산을지나가니  시비할이 뉘인고  만고에 활 활  양양한대도는  저항하수 모래알  같은  삼천대천  세계를  남김없이  비취주누나 .나무아미타불  종사  혜저큰스님  평상시에도  스님의모습 은  어찌도  용상에    미소의  자비스런  움이  변함이  없으신  지요  ?    거룩하신  대종사님  !  나투소서  아미타불  .두손모으며  절드리옵니다 .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생기발랄하신 큰보살, 원만행 보살님!

혜정 대종사님께 세배를 올린 분들은 참 복이 많으십니다.

자비하신 미소와 음성을 저는 뵙지 못했으니  전생 업장이 두터운 까닭이지요.

TV방송에서나 책에서 가끔씩  간신히 뵐 수 있으니 이나마 다행입니다.

소중한 댓글 감사 감사드립니다.

                                                    해탈심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