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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도 스승의 날 ] ' 산 아무리 높아도 흰 구름 넘어간다 ' / 월서 대종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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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탈심게시봉사 댓글 6건 조회 243회 작성일 22-05-17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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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 아무리 높아도 흰 구름 넘어간다 '  /   월서 대종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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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마음의 싹을 잘라라


월서스님은 아주 넉넉하고 홀가분한 모습이었다. 서울 정릉 삼각산 봉국사, 조선 초기 고찰은 파란 하늘 하얀 뜬구름 아래 고즈넉하고 적요했다.

     늦여름 무더위가 맹위를 떨치던 날이었다. 봉국사는 서울 도심에서 살짝 비켜나 있으면서도 깊은 산중 숲속처럼 서늘했다. 염화실 앞 아람드리 느티나무 우거진 잎새가 성긴 그물처럼 그늘을 펼쳐내서 뙤약볕 한 점 비집고 들 틈이 없다.

     방 한복판에 책상과 소파가 놓여 있다. 책상 위엔 컴퓨터, 그리고 여러 가지 전자제품이 들어와 있다. 스님이 직접 쓴 글씨로 만든 열두 폭 병풍이 없다면 여느 회사 집무실 같은 구색이었다.

     스님은 마침 그 병풍 앞에 앞드려 붓글씨를 쓰던 참이었다.


      竹密不防流水過 (대나무 아무리 뻭빽해도 흘러가는 물 막지 못하고)

      山高登碍白雲飛 (산 아무리 높아도 넘어가는 흰 구름 방해하지 못하네)


   함허 선사가 편찬한 <금강경 오가해>에 나오는 시다. 평소에 즐겨 쓰는 선구라고 한다.

   월서 스님은 반세기 가까이 조계종단 중심에서 활동했다. 이제는 봉국사에 들어앉아 유유자적, 문자향 가득한 서예 삼매에 빠져 지낸다. 컴퓨터 자판을 한 자 한 자 두들겨가며 글을 쓴다. 지리산, 설악산, 태백산, 가야산 등 명산 순례에 나서기도 한다.

   월서 스님에게 각별한 산은 지리산이다. 태어나고, 생사가 달린 전쟁터를 누비고, 새로운 인생의 길(道)을 찾아 나선 그 산이다.

    1953년 겨울, 경남 함양 땅 지리산 자락에서 자란 열일곱 살짜리 소년은 고향땅을 지키겠다는 의협심 하나로 전투경찰대에 자원입대했다. 날마다 빨치산 소탕을 위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내가 살기 위해서 남을 죽여야 하는 지옥 같은 날들이 이어졌다. 눈을 질끈 감고 방아쇠를 당기면서도 마음속으로는 끝없이 관세음보살을 외쳤다.

    한바탕 싸움이 끝나고 나면 골짜기마다 적과 전우의 시체가 즐비했다. 한 번은 대신 작전에 나갔던 전우가 싸늘한 시체가 되어 돌아왔다. 역한 피비린내를 맡으며 나도 언젠가 저렇게 죽을 것이라는 공포에 휩싸이곤 했다.

    빨치산에게 붙잡혔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뒤 군복을 벗었다. 그런데도 죽음에 대한 공포와 괴로움 때문에 악몽으로 진저리치는 날들이 계속됐다. 그러던 어느 날 남원 실상사 약수암에 갔다가 눈빛이 예사롭지 않은 한 스님을 만났다. 지리산에서 겪은 일들과 마음을 짓누르는 고통을 털어놨다.

    그 스님이 말했다.

    "나고, 또 죽는 일이 풀잎의 이슬처럼 허망한 것이네. 괴로운 마음에서 완전히 벗어나고 싶으면 찾아오게."

    몇 달 뒤 구례 화엄사로 그 스님을 찾아갔다.

    "힘들어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습니다."

    "너를 힘들게 하는 것이 무엇이냐. 그것을 여기 내놔봐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한참 침묵이 흘렀다.

    "이제부터 너를 힘들게 하는 그 마음을 공부해봐라."

    그렇게 스무 살 때 금오 스님을 만나 '길 없는 길'에 들어선 거였다.

    1600년 전, 중국 소림사에서도 똑같은 일이 있었다. 소림사 석굴에서 9년간 면벽하고 있는 달마에게 나이 마흔의 구도자가 찾아왔다.

    "제 마음이 불안해서 왔습니다."

    "내가 편안케 해줄 테니 그 마음을 가져오너라."

    "마음을 찾을 수도 보여줄 수도 없는데 어쩝니까."

    "됐다. 내가 벌써 네 마음을 편안케 해준 것이다."

    그렇게 달마의 제자가 된 혜가 선사에게는 풍질(나병) 환자가 찾아왔다.

    "내가 무슨 죄가 많아 이런 병에 걸렸습니까."

    혜가는 스승이 했던 것처럼 "그 죄를 내놓아라. 그럼 고쳐주겠다'"고 해서 죄의식을 씻어줬다. 달마(선종의 초조), 혜가(2조), 승찬(3조)으로 이어지는 유명한 '안심(安心) 법문'이다.

    "부처님과 역대 조사들은 불안한 마음, 죄의식이란 본래 없었다는 '참된 모습'을 가르쳤습니다. 금오 큰스님도 그걸 말씀하신 거죠. 불안감과 죄의식은 놔두면 억새풀처럼 무성하게 자랍니다. 잘못한 일을 진정으로 뉘우쳐서 더 이상 죄악이 자라지 않도록 완전히 끊어내야 합니다. 그러면 그동안 지은 죄뿐만 아니라 전생의 죄(업)까지 사라져 생활이 달라지고 본래의 때 묻지 않은 마음을 갖게 됩니다."



주인공아! 정신 똑바로 차리거라

월서 스님이 입산했을 때 화엄사에는 여러 명의 제자들이 '호랑이 선사' 금오 스님을 모시고 공부하고 있었다. 금오 스님의 가르치는 방법은 과격했다. 날마다 혼찌검이고 몽둥이질이었다. 힘이 장사인데다 목소리까지 쩌렁쩌렁했다.

     '나이가 들어서야 큰스님이 제자들을 무쇠처럼 단련시키려고 그렇게 무섭게 하셨다는 깊은 뜻을 알게 됐지만 그때는 몸이 너무 고달프로 마음이 괴로웠지요, 절 살림은 또 얼마나 가난하고, 할 일이 많았는지 · · · ,  낮에는 농사짓고 나무하고, 밤에는 참선하느라 쉴 틈이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기운이라면 월서 스님도 스승 못지않다. 그래서 별명이 '제무시(미군군용트럭 G.M.C)'였다. 그런 스님도 스승의 가혹한 꾸중과 매질은 정말 견디기 어려웠단다. 탁발을 다니면서 사람들에게 거지 취급받는 일도 힘들었다. 어느 날 밤 절을 떠날 작정을 하고 몰래 밖으로 나왔다. 하지만 금오 스님은 제자의 마음과 행동을 훤히 꿰뚫고 있었다.


    "월서야, 월서야!"

    결국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일이 두번 이나 더 있었다.

    "큰스님 가시고 나서도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월서야! 월서야! 하고 부르시는 음성을 들어요. 나이 들고 보니 내 하는 모양이 꼭 스승을 닮은 것 같아서 혼자 웃곤 합니다."

    금오 스님은 제자를 50명 넘게 받아들여 우리나라 불교계 최대 문중을 형성했다. 월산, 월주, 월서, 월탄  등 대부분 돌림자가 월(月) 자여서 '월자 문증'으로 불린다.

    1950년대 중반, 절에서 대처승을 내보내는 '불교정화(淨化)운동'이 있었다. 금오 스님과 그의 제자들인 월자 문중이 그 일의 맨 앞에 나섰다.

    그 중에서도 월서 스님은 행동 대장 격이었다. '호법 신장'이라는 별명이 생겼을 정도였다. 큰 키에 위풍당당한 체구로 딱 버티고 서면 당할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그 후에는 반세기 가까이 조계종단 행정의 중심에서 활동했다. 조계종단이 흔들릴 때마다 싸움의 선봉장 역할을 했다. 매사 직설이었고, 서슬이 퍼랬다.

    불국사 주지, 조계사 주지, 총무원 총무부장, 재무부장, 중앙종회 의원 여섯 차례 등 종단의 주요 직책을 지냈다. 스님들의 잘못에 대한 징계를 최종 결정하는 종단의 사법 기구인 호계원을 12년이나 이끌었다. 호계원은 사회의 대법원에 해당한다.

    "남의 허물을 단죄하는 자리는 세속에서도 어려운데 오죽하겠습니까. 공심과 깨끗한 생활을 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지요, 이제는 무거운 짐을 벗어놓았으니 , 마음이 아주 가볍습니다."

     월서 스님은 "깨끗한 거울에는 만상이 모두 깨끗하게 보이고, 더러운 거울에는 모든 사물이 더럽게 보이는 법"이라고 했다.

    "육신은 그냥 한 벌의 옷일 뿐입니다. 욕심으로 더 가져봐야 한 번 입고 버릴 옷에 치장을 하는 허망한 짓이지요. 태어나면 반드시 죽는다는 생각을 진정으로 하면 살아가는 태도가 달라집니다. 나는 죽어서 어디로 갈까, 그것만 골똘히 생각해도 그게 마음을 바꾸는 훈련입니다."

     중국 당나라 때 서암 선사는 매일 아침 혼자서 말하고 대답하는 것으로 하루을 시작했다.

    "주인공아!"

    "예."

    "정신을 똑바로 차리거라!"

    "예."

    "남에게 속지 마라."

    "예, 예."

    "그렇게 해보세요. 욕심 덜 내고, 덜 섭섭해 하고, 덜 화내고, 덜 집착하게 돼 어리석음이 줄어듭니다. 도인처럼 그것을 완전히 끊기는 어렵지만 생활 속에서 참는 것만으로도 성공적인 인생이 되는 겁니다."



있는 힘 다 쓰지 말라


월서 스님은 정치에 대해서도 조언을 했다. 먼저 송나라 때 법연이라는 선사가 주지직을 맡게 된 제자에게 해준 네 가지 가르침을 얘기했다.

    "가지고 있는 힘 다 쓰지 마라,  복을 다 누려서는 안 된다, 규율을 다 시행하지 마라, 좋은 말을 자 하지 마라, 그 네 가집니다. 권력과 복은 개인이 누리라고 준 것이니 모두를 위해서 쓰고, 허튼 약속을 하지 말라는 뜻이지요. 지금도 모든 공인(公人)과 지도자들이 새겨들어야 할 말이라고 봅니다."

    스님은 "특히 정치가는 공명정대하고 대승적이어야 한다"며 "백수의 왕 사자는 외부의 공격이 아니라 자신 몸속의 벌레에 의해 죽는다"고 했다.

    "지금 당장 죽이는 것만 살생이 아닙니다. 남에게 나쁜 짓 하고, 국민을 불행하게 하는 게 다 살생입니다. 쩨쩨하지 말고, 만 생명을 평화롭게 하겠다는 큰 뜻을 품어야 정치에서도 성자가 나오지요,"

     정치 성인(聖人), 참 그리운 말이다.

     월서 스님은 지난 몇 년 동안 여러 권의 책을 냈다. '금오선수행연구원'을 세워 <금오 스님과 불교정화운동사>를 두 권으로 펴냈다. <금오집>을 보완해서 재출간했다.

     전국 사찰을 다니며 기둥에 걸려 있는 주련의 글을 모은 <깨달음이 있는 산사>, 산사 에세이 <행복하려면 내려 놓아라>도 출간했다. 그동안 써온 글씨들로 서예전을 열기도 했다. 스님은 "행복의 첫 번째 조건은 과감하게 내려놓는 것"이라고 말한다.

     "마음을 싹 비워놓고 있으면 그 자리에 큰 기쁨이 채워집니다. 헐떡거리는 번뇌나 시비가 다 허망한 걸 알게 되지요. 놓아라, 놓아라, 외우고 다니는 것도 좋을 겁니다. 진정한 자유와 마음의 평화가 멀리 있는 게 아닙니다."

    방하착(放下着)!  내려놓고 또 내려놓아라. 스님은 그 말을 강조하고 있다.

    옛날 한 스님이 조주 선사를 찾아왔다.

    "빈손으로 왔습니다."

    "그거 내려놓게."

    "아무것도 가져온 게 없는데 뭘 내려놓습니까."

    "그럼 도로 짊어지고 가게나."


    내려놨다는 마음까지 내려놓는 것, 거기서 방하착이란 말이 나왔다.

    "우리가 현재 받는 고통은 분명 괴로운 것이지만, 그것에는 그만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사람은 고통 속에서 성숙해집니다. 거친 파도가 유능한 뱃사공을 만들듯이, 역경과 고난은 사람을 강건하고 겸손하게 만듭니다. 부질없는 집착과 욕심만 탁 내려놓으면 부끄럽지 않은 인생이 됩니다."

    월서 스님은 이제 마음의 파도가 다 잦아들었다. 새벽 3시에 일어나 예불을 할 때나, 묵향을 맡으며 붓글씨를 쓸 때나, 이 산 저 산 깊은 숲길을 걸을 때나 늘 고요하고 여여하다.

    스님이 건너편 북한산 꼭대기로 흰 구름 한 장 느릿느릿 넘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서산대사 <선가귀감> 한 구절을 읊는다.

    "태어남은 한 조각 뜬구름 일어남이요, 죽음은 한 조각 뜬구름이 스러짐이다."




댓글목록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무명의 해탈심 타이핑하면서
야반도주하려는 월서스님을
"월서야! 월서야!" 하셨다는
금오 대종사님의 지극하신 제자 사랑에 가슴이 먹먹해지고 말았습니다.

이 사바세계에서
가장 고귀한 사랑은
혈육간의 사랑보다도
신뢰와 수행정진으로 맺어진 사제간의 인연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습니다.

나무대원본존 지장보살마하살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

정광월 합장님의 댓글

정광월 합장 작성일

월서 큰스님
붓글씨 전시
여러  곳에 도움 주시고
기가 넘치는 붓글씨
속리산 법주사  조실스님

원파당 혜정 대종사님
법주사 조실 스님...

혜정 큰스님
이곳은 푸르름이 짙어  가요
사리각에 만개한 흰 목련꽃핀
달력 주신
항상 찾아 뵈면
반가워  하시고
동창들과 더 있다 가라고
자상하고 인자하신  큰스님
그곳에선 건강하셔요

동네 누가 사리각 다녀  와서...

조계사 오시면
부처님과 단 마다  삼배 하시는 큰스님 모습
식구들 안부도 물어 주시고

원파당 혜정 대종사님
건강하셔요

              정광월 두 손  모음

ybr님의 댓글의 댓글

ybr 작성일

정광월 보살님!

월서 대종사님 서예하시는 모습은 방송이나 동영상으로 뵈었습니다.
거구에서 뿜어 나오는 기가 대단히 놀라웠습니다.

월주 대종사님 건강하실 때 한 번이라도
꼭 뵐 수 있는 불연이 있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만. . .

소중한 댓글 감사 감사드립니다.

                                                            해탈심 합장

ybr님의 댓글의 댓글

ybr 작성일

어머나 실수 죄송합니다.

연세 많으신 월서 대종사님
살아 생전에 뵙고 싶은 열망이 실현될 수 있으려는지
부처님 인연법에 맡기겠습니다.
                                                                          해탈심 합장

원만행님의 댓글

원만행 작성일

감사합니다 .  스승의은혜는  우러러 볼수록    높아만가지요  ! 스승에은혜는  어버이시다.  우리가  수행잘하면  스승에은혜에보답이겠죠?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감사합니다

ybr님의 댓글

ybr 작성일

원만행 보살님!

우리들 불교에서는 혈육의 인연보다 스승과 제자의 인연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깊고 깊다고 가르칩니다.

맞습니다.
지금처럼 쉼없이 수행정진하시는 것이 스승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 맞습니다.

소중한 댓글 감사 감사드립니다.

                                                          해탈심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