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꽃보다 고운 포교당 사월 초하루 공양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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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탈심게시봉사 댓글 3건 조회 252회 작성일 22-05-03 14:07본문
< 꽃보다 고운 포교당 사월 초하루 공양떡 >
{2566년 신축년 부처님 오신 날}이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안면암 포교당 입구로 들어서면 바람에 나부끼며 울굿불긋 피어 있는 초파일 오색연등이 희색이 만연한 채 불자님들을 반겨줍니다. 연등 가까이에서는 각양각색의 꽃들이 작년의 자태보다 훨씬 더 곱고 예쁘게 피어나고 있습니다. 무정(無情)인 연등과 유정(有情)인 봄꽃들이 서로서로 절묘한 앙상블을 이루며 도량이 더욱 아름답게 장엄되어 우리들의 마음도 저절로 맑고 깨끗해지니 금상첨화(錦上添花)인 듯합니다.
청정심 총무님께서 코로나 19 때문에 자주 참배하지 못하셨던 불자님들을 기쁘게 하려는 뜻에서 준비하신 새로운 얼굴의 꽃들도 여기저기서 미모를 맘껏 뽐내는데 참새 직박구리들도 덩달아 신이 난듯 이 나무 저 나무로 포르르 날아다닙니다. 저의 짧은 발걸음이 법당에 가까울수록 지킴이보살님 무량이 항순이 광수 청심이가 쏜살같이 달려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신고식을 합니다. 롱다리를 부지런히 움직이시던 총무님께서는 서로 반가운 인사가 끝나자 "올해는 꽃들이 일제히 한꺼번에 피고 있네요." '네. 일주일 전에 왔을 때는 그다지 많이 피지 않았어요." 공양간으로 향하셨는데 일주일 후 초파일까지 그 꽃들이 싱싱하게 남아 있으려는지를 우려하시는 아쉬움의 표현이라는 것을 잠시 후 알게 되었습니다.
청정심 총무님께 손녀따님 첫돐은 언제냐고 여쭈었더니 지났다며 코로나 때문에 그냥 떡공양만 올리고 봉사자님들에게 돌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전에 날짜를 물은 적 몇 번 있었는데 젊잖은 말투로 아직 멀었다고만 하셨었지요.
법회 시간이 많이 남았으므로 공양간에 들어 갔더니 남경아 보살님 혼자서 넓은 공양간을 잽싸게 오가며 일에 전념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자청하여 베어온 부추 약간을 다듬었는데 얼마후 공양간 팀장님이신 오혜득 선운심 보살님께서 다가와서는 송구스럽게도 정중히 긴 인사를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저도 그에 합당한 인사를 진심으로 드렸습니다. 임병순 보살님께서는 공양간 쌍두마차인 임춘자 보살님께서 아주 중요한 일 때문에 오지 못하신다고 하시므로 오혜득 보살님은 무척 아쉬워 하셨습니다. 작년 김장철에 소금에 절여 보관했다는 무우청을 남경아보살님이 적당히 잘 삶아 껍질이 술술 베껴졌습니다. 법등화 원만행 보살님들과 한담(閑談)을 하면서 부지런히 손을 움직였습니다.
이윽고 10시 반 법회 시간이 시작되어 설정스님의 염불소리가 낭랑하게 들림과 동시에 무우청 일은 다 끝났습니다. 부지런히 동참한 법당에서는 코로나 사태가 긍정적으로 진행되는 덕분에 3월 초하루 법회 때보다 신도님들께서 조금 더 동참하신 것 같았습니다.
11시 드디어 큰스님께서 장중한 법회를 집전하셨는데 마이크 성능 덕분인지 음성 공양이 훨씬 더 우렁차게 울려 퍼지고 있었습니다. 법회를 마치신 큰스님께서는 코로나 상황에서도 동참한 신도님들에게 대단한 불심과 건강체를 극찬하시며 아쉽지만 올 초파일도 작년 재작년처럼 간단한 약식 법회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도 공양을 함께 할 수 없으므로 준비한 공양떡들을 가져가서 불연을 정성껏 심으라고 법문하셨습니다. 음력 5월 초하루 때에는 정부의 종교 행사 거리두기 방침에 따라 적법하게 공양을 할 수 있을지는 연구해 봐야겠다는 말씀 잊지 않으셨습니다.
경건히 법회를 마치자마자, 몇 년 전에 소중한 인연이 있었던 여일행보살님과 함께 나눠주는 공양떡을 감사히 받아 든 저는 전날의 박정필 보살님 시어머니 49재에서 받았던 떡과 과일이 많이 있으므로 오늘 받은 바나나와 두 개의 떡 중에서 바람떡을 드렸더니 미안해 하셨으며 우리는 함께 법당을 나왔습니다. 저를 기다리던 무량이 항순이 광수 청심이가 간절한 눈빛으로 쳐다 보고 있었으나 주머니 속에 남아 있던 간식을 만지작거리다 "안 돼, 다음에 줄게" 매정하게 한마디 하고 바삐 떠났습니다. 털빛이 가장 선명하고 예쁜 청심이가 저를 줄곳 쳐다 보고 있어 더 미안했습니다.
전철을 타려고 100m이상 걸었을 때였는데 공양간에서 인사를 처음 나눴던 눈빛이 맑은 보살님(60대)이 부지런히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언뜻 보니까 등에 멘 가방이 그리 무거워 보이지 않아 잠깐 서서 "보살님 떡 좀 드려도 될까요?" 들고 있던 헝겊 가방을 열어 보였습니다. 보살님은 웃는 얼굴로 고마워 하시며 깨끗한 비닐에 묶인 두 가지 떡을 얼른 두 손으로 받으시더니 종종 걸음으로 앞서 가셨습니다. 이왕 가방을 연 김에 여일행 보살님께도 조금 더 드리고 싶어 떡을 꺼내자 이번에는 비닐 세 가지가 묶인 떡이 나왔습니다. 콩이 든 찰떡을 원하시어 비닐을 풀려고 하는데 뜻대로 안 되고 한참이나 걸리는 것이었습니다. 오른편 길가 철망 안쪽에서 이 광경을 유심히 계속 지켜 보시던 연세 지긋하신 농원 주인 아주머니께서 포교당 쪽을 한 번 쳐다 보시더니 "오늘 무슨 날이에요?" 호기심으로 물으셨습니다. 저는 "대뜸 초하루날이에요." 편안한 얼굴의 그분께서 우리를 관심껏 보시길래 망설임없이 대뜸 "떡 하나 드릴까요?" 정중히 여쭸습니다. 약간은 겸연쩍었던 얼굴이 금세 밝아지는 걸 확인하는 순간 두 개의 떡을 철조망 위로 건네며 "하나 주면 정 없대요." "맛있게 드세요." 얼른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저는 여일행 보살님께 "무엇이든지 임자가 따로 있더군요." , "저는 쑥떡과 인절미를 잘먹는 아들을 위해 소중히 집으로 가져 가기도 하지만 , 점심 시간이 지났어도 식사를 하지 못했을 것 같은 버스 기사님들을 만나면 떡이나 과일 음료수 등 가리지 않고 드립니다. 떡의 인연이 닿는 곳이면 여동생이거나 아들 친구집에 보내기도 합니다. 어떤 때는 아침 6시 출근하는 아들 편에 인절미를 노릇노릇하게 구워 과일과 함께 넉넉히 보낼 때도 있지요."
결혼하실 때 #시집을 몇 권 사가지고 가셨다는 여일행 보살님(77세)은 성품이 아주 선량한 분이신데 저의 이야기를 듣고는 오래 전 버스에서 경험했던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버스를 탔는데 기사님이 어떤 사람이 둥그런 뻥튀기 한 봉지를 가지고 승차하는 것을 보고 "뻥튀기 하나만 주세요." 하더랍니다. 이 말을 들은 그 남자는 "내가 이걸 왜 주나요?" 일언지하에 거절하는 것을 봤는데 세월이 한참 지났어도 잊어지지를 않았다고. . ., 보살님 생각으로는 기사가 잠깐 졸려 졸음을 쫒기 위해서였을 거라고 안타까웠던 심정을 드러내셨습니다. 제 생각에는 아마도 당뇨병 환자인 기사님이 혈당이 떨어져 안전운행을 고려해서 그랬을 거라는 데 도달헸습니다. 그깟 뻥튀기 하나 때문에 수모와 망신을 당한 기사님을 여직껏 연민하시는 고운 마음씨의 여일행보살님이십니다.
귀가하여 아들에게 전화로 떡 자랑을 하였습니다. 엄마만 기뻐하면 무조건 따라 좋아하는 아들입니다. 칠순이 된 저의 기억 속에 건재하고 있는 최초의 떡은 초등학교 저학년 때의 망개떡입니다. 언니와 여동생에게 망개떡 기억하냐고 카톡으로 물었더니 팥소를 넣어 만든 찹쌀떡을 커다란 망개잎에 싸서 찌는데 요새도 파는 집 있다고 말해 줬지요. 보릿고개가 한창이던 어려운 시절 신여성이셨던 우리 엄마는 전통적인 우리 떡은 만들지 못하셨지만 가끔 해주시던 진달래꽃같은 연분홍 망개떡은 시각과 미각을 몹시 자극하는 별식이었습니다. 초등학교 사택에 살던 우리 가족들은 무척 맛있게 먹었으며 학교 선생님뿐만 아니라 가까운 이웃에게도 늘 자주 나눠 드렸습니다. 5살 위의 언니는 공부하느라 바쁘고 동생들은 어려선지 제가 도맡아 심부름을 했는데 그 고운 망개떡의 갯수가 영 마음에 걸리는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콩 하나도 항상 나눠 먹으시던 엄마는 아버지와 사랑하는 내 새끼들에게 어쩔 수없이 하나라도 더 먹여야 직성이 풀리는 우리네 보통엄마셨습니다. 심부름할 때마다 이따금 제 몫에서 몰래 떼어 내어 쟁반에 얹어 심부름 한 추억은 어린 시절의 잔잔한 기쁨이었던 같습니다.
집에 돌아와 혼자서 공양떡을 맛있게 먹고 있으려니 그 농원집 아주머니 얼굴이 문뜩 떠올랐습니다. 포교당 인근에 사시면서 포교당 풍경이나 분주히 오가는 신도님들을 무심히 자주 지켜 보았을 뿐인 그분은 떡을 무척이나 좋아하셨는지, 아니면 우리 세 사람의 푸근한 정경이 좋아선지, 견물생심이라고 떡을 먹고 싶으셨는지 잘 모르겠지만 생면부지의 사람에게서 떡을 받으시면서 그렇게 곱게 환하게 웃으시는 모습은 저에게는 난생 처음 목격하는 순간의 진풍경이었습니다.
우리들 큰스님께서는 법회 때마다 언제나 자비로운 음성으로 공양떡을 가져가서 가족들과 이웃들에게 귀한 불연을 심으시라고 법문하십니다, 물론 동지 불공때도 항상 마찬가지이십니다. 저는 한달 후 다가오는 5월 초하루 법회 때 잊지 않고 그 아주머니께 공양떡을 드리겠습니다. 그날도 농원에서 일하고 계실지는 알 수 없지만 , 하얀 종이에 "아주머니 아무 부담없이 떡 맛있게 드십시오. 죄송하지만 한달 전 그때의 고우신 모습을 잊지 못해 드리는 것이지요. 해탈심 합장 "이라고 써서 떡과 함께 나무에 고히 매달아 놓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올 동지불공 때에 꼭 팥보시를 하여 그분께도 드리고 싶은 마음입니다.
오늘의 이 티끌만한 인연이 장차 그분에게 믿음의 씨앗이 되어, 그분의 어느 생에선가 사생자부(四生慈負)이신 부처님법을 만나게 된다면 진정한 안면암 포교당 불보살님들의 가피이실 테지요.
나무대원본존 지장보살마하살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

초하루 법회 때 나눠 준 두 개의 공양떡 중 바람떡은 사진 찍지 못하여 죄송합니다.




















댓글목록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공양을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는 소중한 기회였습니다.
부족한 글을 언제아 자비로운 마음으로
읽어 주시는
귀하신 분들께 진심으로 깊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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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
원만행님의 댓글
원만행 작성일아름답습니다 ...감사 감사합니다 건강하십시요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수고하셨어요ㅡ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생기발랄하신 큰보살, 원만행 보살님!
포교당의 오색연등과 백화요초가 조화를 이루어 대단히 아름답습니다.
매일매일 화엄세계 속에서 정진하고 계심을 축하드립니다. 매우 부럽습니다.
소중한 댓글 감사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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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