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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봉스님 {안면암 일기} : < 인간의 완성 > 34 반야의 공과 육바라밀 (1) 2022년 5월 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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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탈심게시봉사 댓글 7건 조회 404회 작성일 22-05-05 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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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聖人(성인) } 

대한불교조계종 초대종정 한암 대종사님 평전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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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ㅡ    원로의원 원행(遠行) 대종사님 저서에서 인용

   

머리말  (1)

<  세간과 출세간 모두 모름  >   /   한암(漢巖) 대종사님


多感諸師眞重意(다감제사진중의)

遠和來訪正當春(원화래방정당춘)

世與出世都不識(세여출세도불식)

慙愧深山久藏身(참괴심산구장신)


여러분의 깊은 마음 참으로 감사하오

먼 길을 오셨는데 화창한 봄이구려

세간법 출세간법 내 모두 모르나니(不識)

깊은 산에 오래 은거함이 부끄러울 뿐이오.


   <세여출세도불식>이라는 제목의 한암 대종사님 법구입니다. 어떤 이는 이 문구를 겸사 나 겸양으로만 여길 수도 있으나 여기에 매우 중요한 철학적 명제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잘 생각해 보면 우리에게 가장 무지한 대상은 자기 자신입니다. 자신에 대한 결정적 오류는 자신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데서 비롯됩니다. 소크라테스의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라는 명제로부터 출발한 인류의 철학적 사유은 아직도 미제의 탐구를 계속하는 중입니다. '너'가 '나'와 둘이 아닌 줄 알면 그 근원적 무지를 넘어서게 되는 걸까요? 자신의 무지에 대한 탐구와 발굴이 곧 우주와 진리를 향한 첫 걸음입니다. 한암 스님의 <세여출세도불식>이란 명제의 본뜻은 쉼없는 정진과 수련을 통해서만 알아챌 수 있다는 사실을 마음 깊이 새깁니다.
    원효 대사께서도 불각이라는 개념을 두 가지로 나눕니다. 그 첫째가 근본불각(根本不覺)이고, 다른 하나는 지말불각(枝末不覺)입니다. 근본불각은 아뢰야식 내의 근원적인 무지(無明, Ignorance)를 의미하지요. 지말불각은 근원적인 무지에 의해서 일어난 다른 앎에 대한 탐착입니다. 존재를 이분화   , 고정화, 실체화시키는 성질이 바로 무명입니다. 인연의 바탕이 무자성    임에도 무명이 일어나 존재를 이분화 실체화하면서 인과 연의 주고받는 영향으로 서로 안다 하는 것은 환    이며  꿈이라는 것을 우리는 듣기는 들어 안다고 착각하지만 실제 생활에선 늘 까맣게 잊고 삽니다. 앎이란 주객이 분리되어 주관이 객관을 인식할 때 일어나므로 알려는 마음이 움직여서 주객이분으로 분화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잊지 말자는 탐착도 또한 무지입니다. 그러   
     소승이 또 이렇게 한암이란 거대한 정신을 만나보겠다고 무모한 도전을 하는 것도 그러한 무지의 소치일 것입니다.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모른다'는 이 사실이 때론 다행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ㅡ  죄송하지만, 내일 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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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십이장경 }

제38장

    ㅡ 사람의 목숨은 떳떳함이 없어 믿지 못할 것임을 밝힘.


  부처님이 사문에게 물었다.

 "사람의 목숨이 얼마 동안에 있느냐?"

  사문이 대답했다.

 "며칠 사이에 있습니다."

 "자네는 아직 도를 모른다."

하시고, 부처님은 다시 한 사문에게 물었다.

 "사람의 목숨이 얼마 동안에 있느냐?"

  "밥 먹는 사이에 있습니다."

  "자네는 아직 모른다."

하시고, 부처님은 다시 다른 사문에게 물었다.

"사람의 목숨이 얼마 동안에 있느냐?"

 "숨쉬는 사이에 있습니다."

 "착하다. 자네는 도를 안다."

 고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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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

 반야의 공과 육바라밀  (1)

(대품반야경 2)


멋있는 사람은 육바라밀의 연기에서 탄생할 수 있다.

바라밀의 연기를 잘하려면

공사상에 입각한 반야의 지혜가 있어야 한다.


   공사상과 반야바라밀 그리고 육바라밀의 실천에 대하여 부처님은 반야바라밀을 실천하는 것이 공사상을 터득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공사상과 반야바라밀, 공사상과 육바라밀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서 의문이 간다.

    먼저 포괄적인 반야바라밀로서의 육바라밀을 실천하는 데 공사상의 활용을 보도록 하자.

    부처님이 말씀하신다.


사리불아,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보시바라밀을 행하면서 지혜를 맑히니, 완전한 비움에서 아끼는 마음을 내지 않기 때문이다. 사리불아,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계율을 지키는 바라밀을 행하면서 지혜를 맑히니,완전한 비움에서 죄와 죄 아님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리불아,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인욕바라밀을 행하면서 지혜를 맑히니, 완전한 비움에서 성내지 않기 때문이다. 사리불아,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정진 바라밀을 행하면서 지혜를 맑히니, 완전한 비움에서 심신의 정진에 게으르지 않기 때문이다. 사리불아,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선정 바라밀을 행하면서 지혜를 맑히니, 완전한 비움에서 산란하지도 고요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사리불아,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지혜를 맑히니, 완전한 비움에서 어리석은 마음을 내지 않기 때문이다. 이때 보살은 보시와 간탐, 지계와 파계, 인욕과 성냄, 정진과 게으름, 고요와 산란, 지혜와 어리석음을 구별하지 않고, 비방과 해침과 업신여김과 공경함을 분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원래 불생불명의 공한 법 가운데, 비방하는 이와 비방받는 이, 공경하는 이와 공경받는 이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반야바라밀이 육바라밀과 완전히 결합되고, 공사상에 의해서 보다 철저하게 실천되는 방법이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반야바라밀을 행함에 있어서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의 육바라밀을 실천하는에 완전히 마음을 비우고, 일체의 집착을 여의니까 육바라밀이 진정으로 실천될 수 있고, 그런 가운데 사물의 모습이 있는 그대로 보인다는 것이다. 반야바라밀의 수행과 공사상   육바라밀이 뒤엉켜 있지만 반야바라밀은 바로 공사상의 실천이므로 공사상에 의해서 육바라밀을 다ㄸ는다는 말고 같다. 그래서  공사상은 진정한 반야에 이르는 방법이기도 하고 반야의 지혜로 보니 일체의 사물이 완전히 공하다는 결론이기도 하다.

     어떤 독자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지혜를 얻는 일과 육바라밀을 실천하는 일이 무엇이 그리 중요하다고 그토록 신경을 써야 하느냐'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반야경>은 그런 회의는 전혀 예상하지 않고 있다. 어떤 일이든지 좋은 일이 생기려면 반야바라밀을 닦아서 사물을 여실히 보는 지혜를 얻어야 하고 지혜를 얻는 방법은 공사상에 의해 일체의 자기중심적 집착을 지움으로써 육바라밀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지혜도 얻을 필요가 있느냐?' '육바라밀을 왜 실천할 필요가 있느냐?'는 생각을 하게 되면 그것은 '좋은 일이 왜 필요가 있느냐?'는 원초적인 물음으로 돌아간다.

    우리는 이 세상의 무대에 올라와 있는 배우들이다. 책을 읽고 계신 분들이 20세 이상이라 치고 약 80년 후가 되면 우리 모두는 이 무대를 후손들에게 물려주고 무대 아래로 내려오게 될 것이다.

     부처님은 우리가 무대에서 연극을 잘하고 박수를 많이 받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하지 않는다. 우리는 업에 의해 밀려나왔지만 불법을 닦으면서 타성적  반복적인 업을 뛰어넘어 원려게 의해서 이 세상에 살기고 정한 것은 우리의 선택이다. 우리는 누구나 멋있는 삶을 살아 보겠다고 하는 사람들이다. 그 멋있는 사람은 육바라밀의 연기를 잘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서 탄생할 수 있다. 또 육바라밀의 연기를 진정으로 잘하려면 공사상에 입각한 반야의 지혜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가 무대에서 연기할 대본을 진실하고 좋고 아름답게 쓸 수 있기 때문이다. 목숨이 귀한 것인 줄을 알면서도 육바라밀의 연기를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혼연히 버릴 수 있는 구도를 잡을 수도 있다.


                             ㅡ    죄송합니다만, 내일 또 이어 게시봉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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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오늘의 부처님 말씀}

공덕은 뜨거운 불도
결코 태우지 못하고
바람에도 날아가지 않는다.

비록 홍수가 세상을 휩쓸지라도
공덕은 떠내려가지 않는다.

폭군과 흉악한 도적떼가
어떤 사람의 재물을
강제로 빼앗을 때도

그 사람이 지은 공덕은
빼앗아 가지 못한다.

                            - 증일아함경 -


<  젖갈  >  /  이대흠


어머니가 주신 반찬에는 어머니의

몸 아닌 것이 없다


입맛 없을 때 먹으라고 주신 젖갈

매운 고추 송송 썰어 먹으려다 보니

이런,


어머니의 속을 절인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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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

ㅇㄷ님의 댓글

ㅇㄷ 작성일

육바라밀의 연기를 진정으로 잘하려면 공사상에 입각한 반야의 지혜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가 무대에서 연기할 대본을 진실하고 좋고 아름답게 쓸 수 있기 때문이다.

명심
하겠습니다

ybr님의 댓글의 댓글

ybr 작성일

ㅇㄷ님!

소중한 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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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탈심 합장

원만행님의 댓글

원만행 작성일

할먼옷  빌려입고    할머니에게    서날 절을한다  .  법신불을말한다  .  금강반야바라밀을을받아잘지녀야한다 .관념과  방편이아니고  문수  보현  진공묘유가나온다  .  새울고 꽃피는것이  한결같은봄이로다 .  무루복은  사귀계정신  남부주에복을  사실을 사실로행한다 . 선은  본래  사자가새끼  낳놓고  살면 살고 죽 고죽으면그렇다  .  있는 그대로 생명이고  꽃이고    상생의꽃이다  .  여래선은  황금포  조사선은    잡화포다    두지천각답지 !  여기에눈을뜬다  .기즉찬  곤즉수365일이 선이다  .  아뇩다라 삼약삼보리는  정해진법이  없는것이다  .  연기적현상은    무주무아 법으로  무상을종으로 무주를체  로  진공을  용  자아실현  요쿠  보리심 심리적욕망    행복하게하는것 귀의한의본질은  파르스타상식  불자로써  올바른자세는    인터뷰.    신심프러스!  난다난다  신심난다  사바하  .  연역적  귀납적  증명  동시에쓴다    불교는 맹신  우신이아니라  스스로실천 삶에서  수행지속적인확신    의심을  귀의하는마음믿음으로  끈임없는  수행과  의심의  인터뷰?  불자로써  올바른자세  인터뷰!  ..연꽃은더러운물에서핀다  모든세계를극복하고  무찔러  사소한것에  두려우에서벗어난다  .  185가지를가쭤야할  아라한과?    시방삼세항상 조재하신불    일체중생  실유불성  !  법화경의  일승  사상  구원실상불  부처가된다  !    서사 독송    수기의개념  수기작불  기별  기설  수결  대탑이다    증과를  보증받는것이다  많은 제자에게수기를줌  자기대상이  있어야한다    더현재로온다  .  행복처방전    귀의하는  마음  믿음으로!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감사합니다

ybr님의 댓글의 댓글

ybr 작성일

생기발랄하신 큰보살, 원만행 보살님!

오늘은 몸이 안 좋아 이제야 노트복 앞에 앉았습니다.

소중한 댓글 감사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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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탈심 합장

우영진님의 댓글

우영진 작성일

여기에서 도 닦는 선상님들 만나네요.
 깊고깊은 부처님법 그림과 같이 전해주셔서
고맙어요.

ybr님의 댓글의 댓글

ybr 작성일

우영진 불자님!

저는 무지하여 섭생을 잘 하지 못한 까닭에 몸이 좀 약한 사람입니다.

푹 쉬고 겨우 일어나 노트복 앞에 앉았는데

불자님의 댓글 보시에 큰 감화를 받았습니다.

<도 닦는 선상님들 만나네요> 라는 말씀에 가뭄에 단비 내린 것보다 더한 환희심을 느꼈습니다.

우영진 불자님처럼  짧지만

진심을 다해서 칭찬하시는 공덕을

불보살님들께서도  대단히 기뻐하실 것입니다.

작은 행위를 이렇게 크게 칭찬하시다니 감개무량합니다.

소중한 댓글 감사 감사 감사드립니다.

불자님께서 앞으로 자주 댓글 주신다면 큰 힘과 큰 기쁨이 되겠습니다.

물론 다른 불자님들이나 독자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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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탈심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