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봉스님 {안면암 일기} : < 인간의 완성 > 36 회향 (2) 2022년 5월 10일 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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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탈심게시봉사 댓글 3건 조회 265회 작성일 22-05-10 07:44본문
[ 법주사 혜정 대종사님 오도송(悟道頌) ]
生死去來本來空 생사거래본래공
回顧首山璧水璧 회고수산벽수벽
千年石虎産麒麟 천년석호산기린
莫尋前三三後三 막심전삼삼후삼
나고 죽고 오고 가는 것이 본래 실체가 없어라
머리를 돌이키니 산도 푸르고 물도 푸르도다
천년 묵은 돌범이 기린을 낳으니
달리 전 삼삼 후 삼을 찾지 말지어다
36
회향 (2)
여기서 부처님은 상대를 여읜 보시를 말씀하는데 이것은 무소득과 같은 내용이다. 상대란 보시를 베푸는 사람, 받는 사람, 베푸는 물건, 얻어지는 공덕 등이 상대적으로 있는 것을 말한다.
나와 네가 있기 때문에 상대요, 선행공덕과 그에 따른 소득을 염두에 두기 때문에 소득이 된다. 상대와 소득을 여의고 보시하면 절대적 무소득의 보시가 된다. 절대 무소득의 정신으로 보시하거나 계를 지키거나 인욕 등을 행하면서 육바라밀의 행을 짓되, 육바라밀의 행이 이루는 공덕을 지혜를 얻는 과보에 돌리면 그것이 진정한 반야바라밀을 닦는 것이 된다는 말이다.
육바라밀의 선행공덕을 반야바라밀 즉 최고 지혜의 완성으로 버리는 것이 바로 반야바라밀이라는 것이다. <반야경>의 많은 곳에서 살바야라는 지혜나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는 무상(無相), 정등(正等), 정각(正覺)으로의 회향이 강조되어 있다.
선근공덕을 보리지혜로 회향한다고 할 때 선행이 자신이나 타인의 업장의 과보를 소멸하고 깨달음을 얻는 방향으로 돌려진다면 악행도 선행으로 돌려질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는 않다.
선행은 악업을 소멸하는데 쓰여지지만 악업이 선행으로 돌려질 수는 없는 것이다. 또 자신의 악업이 자신의 선행을 탕감할 수는 있지만 다른 이의 선업을 탕감할 수는 없다. 그래서 <반야경>에는 선근공덕이 지혜로 회향된다는 말만 있지 악행이 회향된다는 말을 찾아 볼 수가 없다. 순전히 논리적으로 생각한다면 나의 공덕이 다른 이의 악업과 업보를 감해 줄 수가 있으니까. 다른 이와 입장을 바꾸어서 말할 때 내가 다른 이의 공덕을 나의 악업과보를 탕감하는 데 쓸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안 된다는 것이다. 선행을 쌓은 주체만 능동적으로 회향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 있지 악행을 한 사람은 그 특권이 없다. 악업자는 선행자의 처분을 수동적으로 받을 뿐이다.
불교에서 선행의 회향만 있고 악행의 회향이 없는 것은 깨달음을 구하고 깨달음을 전하는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의 입장에 있기 때문이다.
<반야경>에는 회향이라는 말만 나와 있을 뿐, 어떻게 회향의 원리가 자업자득의 기본원칙에 우선해서 발휘될 수 있느냐에 대한 설명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이 회향의 원리를 두 가지 면에서 볼 수 있다.
첫째, 지혜와 무명미혹 그리고 선과 악이 각각 상대적이지만 지혜와 선행에는 무명과 악행에 우선하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지혜와 선행을 빛이라고 하고 무명과 악행을 어둠이라고 할 경우 빛과 어둠이 상대적이어서 빛이 어둠을 무너뜨릴 수는 있지만 어둠이 빛을 무너뜨릴 수는 없다.
가령 천년 동안 어둠 속에 있던 동굴에 빛이 비칠 경우, 어둠의 축적기간이 천년이었기 때문에 천년 동안 빛을 비추어야 어둠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빛이 있는 순간에 어둠은 없어진다.
동굴 안이 어둡고 밝은 것은 빛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이지, 어둠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지혜와 선행공덕을 자업자득이라는 원칙이 엄연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명과 악업을 소멸하는 쪽으로 회향될 수 있는 것이다.
둘째, <반야경>이 말하는 공사상에 의거한 회향이다. 어떤 이가 꿈을 꾸고 있을 때, 무서운 호랑이가 나타나서 잠자는 사람을 깨울 수가 있다. 그런데 그 잠자던 사람이 호랑이를 만나기 전에 갖가지 악업을 많이 지었다고 해도 잠을 깨고 나면 꿈 속의 악업은 간 곳이 없다. 물론 꿈속의 호랑이도 가짜이다.
지혜를 꿈을 깬 상태라고 하면 무명미혹을 꿈을 꾸는 상태라고 가정할 수 있다. 꿈을 꾸는 가운데 선행과 악행은 다 같이 실체가 없다. 꿈속에서의 호랑이도 실체가 없는 가짜이다. 그러나 꿈속의 호랑이가 실체가 없다고 하더라도 잠자는 사람을 꿈으로부터 깨어나게 할 수 있다. 선행공덕이 꿈속의 것처럼 실체가 없다고 하더라도 꿈속의 호랑이처럼 잠자는 사람으로 하여금 꿈을 꾸게 할 수는 있다.
사람이 꿈에서 깨어날 경우 꿈속의 나도 없고 호랑이도 없다. 꿈속의 악업도 없고 선행도 없다. 꿈이 분명히 있기는 했지만 그것은 하나의 허깨비로 있었다. 미혹도 분명히 있었지만 그것은 허깨비였다. 그것은 착각의 현상이었다. 이 공사상의 원리, 반야지혜의 원리에서 선근공덕은 자업자득의 원칙을 뛰어넘어 깨달음으로 돌려질 수 있다. 지혜바라밀, 즉 지혜가 완성된 상태에서는 있는 것은 오직 깨어남의 지혜일 뿐이다. 그러나 공사상은 지혜가 있다는 표현도 어떤 실쳬 사상을 유발할 염려가 있다고 해서 경계한다.
지혜는 그저 밝을 뿐이다. 있고 없을 것이 없다. 있고 없음의 이야기는 꿈속 경계의 이야기이다. 선근 공덕이라는 꿈속의 호랑이는 잠자는 사람을 꿈에서 깨어나게 했다.
꿈에서 깨어나 회향된 마당에 꿈속의 것이 있거나 없거나를 따지고 꿈속의 논리로 지혜가 있고 없음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댓글목록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오늘의 부처님 말씀>
만약 부처님께서 교화하신
깊고 미묘한 법을 받들어 지니는 이가 있으면
모든 중생들이 그를 부처님을 공양하듯 하리라.
<불설대방등정왕경>
< 금오 태전 대종사님 오도송(悟道頌)
透出十方界 투출십방계
無無無亦舞 무무무역무
個個只此미 개개지차미
覓本亦無無 람본역무무
시방법계를 벗어나니
무는 무요, 무 또한 무이어라
하나하나가 다만 이와 같으니
근본을 찾아 보아도 또한 없고 없어라
나무대원본존 지장보살마하살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
원만행님의 댓글
원만행 작성일무상의이해 다른말로 문수ㆍ보살 반야지혜 불성 부처님의 본모습이다 . 모양이없는 사상이없는것 천상만상 자성 아지랑이같은것이 조작이없는 묘행무주다 . 무위법의 정리가되어야 숙지가되어야한다 . 축생은 영원한 축생업만익히지 ,?....각각 눈은 가로있고 코는세로놓였도다 무이다 .자기욕망은 모든수행은 무아가바탕이어야한다 . 문수와보현은 ! 묘용의체험 해야한다 . 한로 축괴 사자교인 ! 오늘은새정부의 출발의 자유인권 공정연대 를 외치시는 공감의 박수소리에 함께 발마추어 상생의 날들을 기원하는 마음입니다 대한민국 대한민국 우리니라대한민국 ! 감사합니다 .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건강하십시요 .
석원영님의 댓글
석원영 작성일
오늘 하늘의 구름 그림이 이제껏 보지 못한
변화 무상한
새로운 기운
대통령님이 상서로운 희망찬 도약으로
나갔으면 합니다
무지개도 떴다고 다들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