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봉스님 { 안면암 일기 } : <인간의 완성> 10 소의 험담 (2) 2022년 3월 16일 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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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탈심게시봉사 댓글 4건 조회 495회 작성일 22-03-16 06:56본문
< 법구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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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렷이 깨끗하고 밝은 달처럼
마음에 뜬 생각을 흩어 버려,
남의 비방도 시기도 이미 끊어진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한다.
연정이란 대개 어떤 시간의 한계를 가지는 것으로서,
그에 따라 열정도 어떤 고도의 정점을 가진다.
그리하여 그 한계, 그 정점에서 대개는 변질하거나 강하한다.

10
소의 험담 (2)
(본생경 2)
이야기를 끝내고 부처님은 남에게 즐거운 말을 하고 불쾌한 말을 하지 말라고 다시 한 번 당부했다. 그리고는 "그때의 장자는 지금의 아난이고 그때의 소는 바로 지금의 나이다."라고 말하면서 전생과 금생을 관련지었다.
불쾌한 말을 해서 남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사람을 경계하기 위해서 부처님은 이 소의 이야기를 설한다. 소도 허풍쟁이라고 말하자 반발심이 생겨서 장자에게 천금을 손해 보게 만드는데 하물며 사람이라면 더 손해 보게 만들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의미가 담겨 있다.
사람은 참 약한 존재이다. 다른 사람에게 함부로 말할 때는 강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사람 자신이 다른 사람으로부터 험한 말을 들으면 그렇게 강하던 사람도 의외로 마음에 상처를 입는다.
사람은 자신의 약점을 잘 보지 못한다. 자신이 생각할 때는 자신이 잘못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유가 있어서 부득이 잘못을 저지르니 그것은 결과적으로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다가 잘못을 남으로부터 지적받으면 당황해 하고 억울해 한다.
잘못을 지적할 때도 애정 어린 설득과 비난조의 공격에는 큰 차이가 있다. 상대가 애정 어린 표정이나 말씨로 어떤 이의 잘못을 꺼내면서 자신을 돌아보게 할 때에 그는 태도를 바꾸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공격적으로 비난하면 반발한다. 그리고 비난하는 사람의 자격을 생각한다. 비난하는 사람도 생각해 보면 허물이 많은데 무슨 자격으로 남의 사정도 자세히 알지 못하면서 비난하느냐고 원망하게 된다.
직접적으로 남의 허물을 이야기해 주는 것은 그래도 신사적이다. 참으로 좋지 않은 것은 뒤에서 남의 말을 나쁘게 하는 것이다. 뒤에서 남의 말을 나쁘게 하는 것도 장점은 있다. 남의 말을 부담없이 말함으로써 자신에게 쌓인 스트레스를 풀 수가 있다. 또 남을 비판하다 보면 경우를 따지게 되고 경우를 따지다 보면 혹시 나에게는 그와 같은 잘못은 없는지 반성할 수 있다. 그렇지만 자신의 스트레스럴 푼다거나 비판력을 기르는 장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등 뒤에서 비판을 받는 주인공에게 오는 상처는 너무도 크다. 상대가 직접적으로 자신의 잘못을 이야기해 주는 것보다 남을 통해서 자신에 대해 수군거리는 눈치를 알게 되면 당사자는 몇 배의 강한 충격을 받게 된다.
필자가 알고 있는 많은 불자들은 남의 나쁜 점을 이야기하는 것을 삼간다. 본인이 없는 데서는 물론이거니와 본인이 앞에 있을 때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분위기가 되더라도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고는 남의 잘못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남을 뒤에서 흉보지 않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본인이 있는 데서 나쁜 말을 함부로 하지 않기도 어렵다. 필자는 남에 대해 나쁘게 말하지 않는 분들과 인연이 있는 것을 큰 복으로 생각하고 있다.
일본 사람을 상대해 보신 분들은 그들이 얼마나 남의 말 나쁘게 하는 것에 대해서 조심하는가를 잘 알 것이다.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전부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많은 일본 사람들은 드러내 놓고 남에 대한 비평을 하지 않는다. 기껏해야 아쉬움을 표현할 정도이다. 물론 거기에도 문제는 있다. 일본 사람들이 인격적으로 훌륭하기만 해서 남의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문화 자체에 자기의 속을 남에게 드러내 보이지 않는 특성이 있다. 철저히 자신의 마음을 숨긴다. 자신을 내보이지 않기 때문에 상대의 진정한 마음을 파악하기기 쉽지 않다. 그래서 마음과 마음으로 접근하기가 어렵다.
솔직담백하게 자신을 보이는 면에 있어서는 우리 한국인들이 훨씬 좋다. 한국인들은 오랫동안 위장하면서 살지 못하는 성미를 가졌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솔직함을 장점으로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남의 말을 나쁘게 하는 것은 고쳐야 한다.
부처님은 소 같은 가축도 나쁜 말을 직접 들으면 기분이 상한다고 한다. 그 짐승들이 누군가가 자신들을 뒤에서 흉보는 것을 알면 더욱 불쾌하게 생각할 것이다. 소로 태어난 석가보살도 함부로 말하는 주인에게 천금의 손해를 보게 만들었다. 뒤에서 흉보는 일이 있었다면 더 많은 손해를 보게 했을 것이다.
우리가 부처님의 전생수행담을 듣고 직접적으로 남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나쁜 말을 하지 않을 수만 있다면, 본인이 없는데서 남을 흉보지 않을 수만 있다면, 더 나아가 앞에서나 뒤에서 남의 장점만을 드러내서 이야기할 수 있다면 우리의 불도수행은 더욱 성숙해질 것이다. 백화점에 가서 비싼 옷을 사 입지 않고도 우리는 고상하고 멋있는 인격자가 될 것이다. 이것을 실천한다면 자신의 마음이 편안하고 남도 편하케 해줄 것이다. 불법을 입으로 선전하지 않고도 자신의 인격으로 불법의 위해함을 알리게 될 것이다.
< 동백 > / 양광모
한 봄날이어도
지는 놈은 어느새 지고
피는 놈은 이제사 피는데
질 때는 한결같이 모가지째
뚝 떨어져
이래 봬도 내가 한때는
꽃이었노라
땅 위에 반듯이 누워 큰소리치며
사나흘쯤 더 뜨거운 숨을 몰아쉬다
붉은 글씨로 마지막 유언을 남긴다
징하게 살다가네







댓글목록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 오늘의 부처님 말씀 >
진리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배움이 깊은 사람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진리에 통달한 사람은
자신을 잘 다듬고 배움이 깊어
결코 동요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진리의 길을
찾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다.
ㅡ 숫타니파타
< 나는 살아 있지 않았다 > / 유안진
발자국마다 무덤이었다, 말마다 유언이었다, 그런 줄
을 정말 몰랐다.
부음을 듣고서야 나는 살아 있었다, 빈소 영정마다
그는 죽었고 나는 살아 있다고 말했다
어처구니없는 이 아이러니의 뒤켠에서, 내가 나인 줄도,
살아 있는 줄도 잊은 채 허둥거려왔다, 누가 나를 이름
부를 때는 대답한 입이 나였을 뿐, 내 이름자를 쓴 손이
나였을 뿐
잊힌 것은 없는 것과 다름아니라, 내가 나에게서 잊혀
살고 있는 줄도 모르고 사는 것은, 살아 있음도 살고 있
음도 아니다
부음마다 살아 있는 나를 거듭 확인시켜주지만
나는 내가 살아 있는 줄도
살고 있는 줄도 모르고 사는 것이 더 좋다
살아 있지 않았던 평소가 더 좋았다.
나무대원본존 지장보살마하살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
원만행님의 댓글
원만행 작성일현실이 머물지않듯 이것은연기현상이다 . 불교다 . 마음은흐르는물과같아 한순간도 머물지않는다 .고정된물이없듯이 마음은항상경계따라흐른다 . 모두를 나와똑 같은지혜를 지나간경계를 순간은부처니까 자각하고포교한다 .이마음천지 밭들고 하늘 허공을 볼수없듯이 눈이 눈동자볼수없듯이 그렇지만 아름답게하는 무상이다 . 법성원융무이상 자성 법성 이다 . 무상 으로 종을삼고 무주로 체를삼고 묘용으로 용을삼는다 . 육조스님께서는 아주자상하게 어묵동정이순간 알아차림은 보고아려고해서 알아차림은 알고볼수있는겅이아니다 .무상은 모양이없다 . 천길나떠러지에서 손을놓으니 ....의강의중 ? !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감사합니다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생기발랄하신 큰보살, 원만행보살님!~
고정된 물이 없듯이 마음은 항상 경계따라 흐르는데
한 군데 오래 머물러서 흔들리면 걷잡을 수 없는 게 중생의 현실입니다.
아마도 죽어야 끝나는 것이 아닐까 두렵습니다.
법성원융무이상(法性圓融無二相) ㅡ 법의 성품 원융하여 두 모양을 떠나 있다.
무상으로 종宗을 삼고 무주로 체體를 삼고 묘용으로 用을 삼는다. 덕분에 잘 배웠습니다.
소중한 댓글 감사 감사드립니다.
나무대원본존 지장보살마하살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
정광월 합장님의 댓글
정광월 합장 작성일
여수 오동도.선운사 동백
붉은색
조금 있으면 개심사의 청벗꽃도
피겠죠
안면암의 일출.노을
지장대원탑의 아름다운 풍경
뒷 언덕의 대 보살님들의 공덕비
건강하셔요
감사드립니다
정광월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