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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봉스님 { 안면암 일기 } : <인간의 완성> 8 죽음의 극복 (2) 2022년 3월 12일 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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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탈심게시봉사 댓글 3건 조회 540회 작성일 22-03-12 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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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구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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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의 행(行)이 깨끗하므로

저승도 물들지 않나니,

저승의 걱정도, 소원도 없는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한다.


모두 주어진 존재, 주어진 생활이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은 자기에게 주어진 인생을 살고, 자기가 살지 않을 수 없는 인생을 살고 있다.

자기의 생활을 건설하기 위한 장소가 여기 외애 없다는 확고한 자각을 가지는 곳에,

비로소 그 사람의 생활의 참 '뿌리'가 박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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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극복 (2)

(숫타니파타 4)

    《숫타니파타》에서 부처님은 젊은이나 늙은이나 어리석은 이나 지혜로운 이나 다 같이 죽을 날짜를 받아놓고 있다고 말한다.

     두려움 중에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가장 크다고 한다. 그 두려움은 인간이면 누구나가 필연적으로 만나야 하는 것이다. 불법의 모든 교리는 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여의는 공부이다.

     사성제는 죽음의 현실과 죽음의 원인과 죽음을 여읜 열반과 죽음에 여의는 길을 설명하려고 한다. 무상과 무아의 가르침은 죽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한다. 십이인연은 죽음이 오는 도리와 죽음을 여의는 도리를 동시에 설명하고 있다.

     공사상(空思想)은 목숨을 지움으로써 죽음을 지우고 성구사상()은 목숨과 죽음을 한꺼번에 삶의 전체 모습으로 취급하려고 한다. 선종으로써 대사() 즉 큰 죽음을 가르친다.

     이 목숨을 크게 죽여 버림으로써 크게 살리려고 하는 시도이다. 큰 죽음 뒤에만 큰 의심이 나오고 큰 의심이 나온 뒤에야 큰 깨달음이 있을 수 있다.

부처님은 계속해서 말씀하신다.


가령 사람이 백 년을 살거나 그 이상을 산다 할지라도 친족들을 떠나 

이 세상의 생명을 버리게 되리라.

 

     불법은 100년 미만을 살 수 이TSms 우리의 목숨을 200년이나 300년으로 늘리려는 것이 아니다. 받아들여야 할 죽음을 연장하려고 하지 않는다. 짜내야 할 고름이 살이 되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타 종교에서는 육신의 부활을 이야기한다. 불교에서도 부활과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선종의 삼처전심() 가운데, 가섭존자가 열반에 든 부처님의 관 앞에 나타나자 관 속의 부처님이 관 밖으로 두 발을 내보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이것도 이심전심을 말하기 위해서이지 부처님이 육신을 죽이지 않고 살려둠으로써 죽지 않았다는 것을 알리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불교에서는 이 육신의 목숨을 길게 만들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이 목숨을 지움으로써 영원한 목숨을 길게 만들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이 목숨을 지움으로써 영원한 목숨을 보려고 하는 것이다. 목숨이 있는 것과 없는 것, 감각기관으로 느끼는 것과 느끼지 않는 것을 같이 만듦으로써 세상의 전체 모숨과 나의 목숨을 같은 것으로 만들려고 한다.

     한국 사람과 외국 사람이 방송을 듣는다고 할 때, 한국 사람은 한국말을 알아들을 수 있지만 외국 사람은 알아들을 수가 없다. 외국인이 한국말을 모른다고 해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그는 분명히 사람이다. 외국인은 한국인의 통역에 의해서 알아들을 수가 있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이식을 가지고 인간의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과 인간의 의식이다 인간의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 경우, 인간의 말을 쓰는 사람만 목숨으로써 가치가 있다. 인간의 말을 쓰지는 않지만 뜻으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목숨으로써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사고와 언어를 쓰지 않는 사람은 인간이 통역새 주는 말을 듣기만 해도 되거니와 인간의 통역이 없이도 그대로 존재의 가치가 있다.

     우리가 죽음을 극복하는 길은 제한된 인간의 사고와 언어를 초월하는 것이다. 인간의 t고는 있음과 없음, 죽음과 죽지 않음 같은 식으로 양자택일을 강요한다. 그러나 부처님의 사고는 죽음과 죽지 않음, 있음과 없음의 제한된 사고를 벗어나는 것이다.

     죽음과 삶, 있음과 없음이 전혀 걸림 없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는 경지가 있다. 그 경지가 바로 열반이고 해탈이다. 그 경지의 터득이 깨달음이다. 우리는 그 경지를 얻고자 한다. 그 경지가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외국인, 외지인, 또는 산하대지일 수도 있다. 그러나 외국인이나 산하대지라고 해서 존재가치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 사용하는 가티 기준을 벗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사고로 측정할 수가 없다. 단지 죽음과 삶을 통합함으로써 죽음을 벗어나는 사람을 말이 다른 외국인이나 사고방식이 다른 별나라에서 온 외지인으로 비유해서 각기 나름대로 존재의 의미를 갖는다고 말할 뿐이다.

     100년이나 500년으로 목숨을 연장하는 사고방식이 아니라 생각을 크게 바꾸어서 내가 산이나 들이나 바람이나 바위 등으로 되고 다른 이가 인간의 목숨과 의식을 가지고 그것을 감상한다고 하더라도 주관 객관이 완전히 바뀐 그 상황을 나의 목숨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부처님은 죽음을 지운 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번뇌와 공포의 화살을 뽑아버리고 거리낌 없이 죽음을 받아들인다면 

죽음에 대한 모든 두려움을 초월하여 근심 없는 자, 평안에 돌아간 자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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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  오늘의 부처님 말씀  >


"사람에게는 다섯 가지 어려움이 있다.

가난하고 궁해서는  보시하기 어렵고

건장하고 귀해서는 도를 배우기 어렵고

목숨을 버려 죽기는 기약하기는 어렵다.

또 부처님의 경전을 얻어 보기 어렵고

살아서 부처님의 세상을 만나기 어렵다.

                                                        ㅡ  <사십이장경>


<    법주사 운韻    >
                  ㅡ  저녁 예불에    /    이상범


    해거름에 휘적휘적 오리 숲을 걸어 호서제일가람湖西第一伽藍 금강문 사천왕문을 들어섰다.


    별안간 귀가 멍멍 고요를 깨는 큰 북소리, 큰 북소리 천둥소리, 천둥소리 큰 북소리, 속리산이 둘레둘레 흔들리고,

소나무 굽은 가지에 바람이 일고, 대웅보전 원통보전 팔상전 능인전 할 것 없이 추녀 끝이 흔들리고, 추녀 끝이 흔들리는가 싶더니 집채가 저저마다 흔들리고, 법주사 전체가 학이 되어 깃을 치는가 싶더니 한 송이 연꽃이 되어 둥둥 떠오르기 시작한다, 법주사가 뜬다, 법주사가 뜬다, 법주사가 춤을 춘다, 법주사가 배가 되어 넘실거린다, 미륵불도 미소를 띤 채 덩실덩실 춤을 춘다, 속리산이 뜬다, 속리산이 뜬다, 속리산이 우즐우즐 춤을 춘다, 속리산이 허겁지겁 달려간다 큰 북소리 천둥소리, 천둥소리 큰 북소리, 귀먹은 바위도 눈멀은 성좌도 지금 막 깨어나고 . . . . .

      이윽고 산도 절도 깃을 접고 적막 속에 앉는다.


나무대원본존 지장보살마하살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

원만행님의 댓글

원만행 작성일

지금무엇을할것인가?  오지않는과거는청산하고  미래지향으로간다  보살행은육도만행 일체선근을닦는다  .  스스로자기마음살펴 자기 자신의  복짓는방법을  부처님과같은마음으로일체바라밀 로들어가끈내는 행복한생활로들어간다  .우리는 일체중생을위하여일체세계를  장엄하며    보살심으로산다  .  화엄경  이세간품  의  보현행  품에서 ......해탈은? 오늘어제  내일  금생  내생  전생믿는다  .삼세인과를 진정믿는다    몸과  마음에서  벗어나는것이다  .  인과법은  오차없고    다만시차는있다  .  무아  대아  시아  .생활명상    바라밀명상    행복명상  이익과 손해는  ㅇ    공 입니다  .자기관조 관찰하며  명상으로  연습함는습관이 필요한듯!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감사합니다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생기발랄하신 큰보살, 원만행 보살님!~

과거는 청산하고 미래지향으로 가야만 진정한 발전이 있겠습니다.

현실 세계에서 업을 짓고 죄를 짓는 것은 인과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선인선과 악인악과를 믿는다면 더욱 선행을 짓고 악행을 멀리할 것입니다.

행行 주住  좌坐 와臥 어語 묵默 동動 정靜 모두가 명상이지만

저 같은 무지한 범부중생에게는 생활명상이 매우 어렵기만 합니다.

소중한 댓글 감사 감사드립니다.

  나무대원본존 지장보살마하살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