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봉스님 {안면암 일기 } : < 088 본각과 현실의 고통 > 2022년 1월 19일 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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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탈심게시봉사 댓글 4건 조회 1,077회 작성일 22-01-19 06:53본문
< 법구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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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발을 억제해 함부로 하지 않고
말을 삼가고, 행동을 조심하며,
정을 닦아 즐기고 정에 머물러
혼자 있어 만족하는 비구가 되라.
무엇을 할까? 아니, 어떻게 할까가 문제다.
사물에 무슨 귀천과 대소가 있으랴.
그것을 대하는 내 마음의 태도에 진위와 염정(染淨)이 있을 뿐이다.
비록 마당의 풀 한 포기를 뽑고,
방 한 번 닦는 것도 그것을 대하는 태도 진성(眞誠)일 때는
그 공덕 시방(十方) 중생에 회향(廻向)되어 위대할 것이요,
국가를 책략하고 천하를 평정한다 하더라도
그 마음에 때가 끼일 때는 하나의 미미한 사사(私事)에 불과할 것이다.

088 본각과 현실의 고통
앞에서 우리는 선의 본각 입장을 지원하는 교리적 맥을 살펴보았다. 불성, 여래장, 성구, 성기사상 등이다. 이를 읽은 한 독자가 전화를 걸어서 힐난성 질문을 해 왔다. 이 세계, 즉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실이 바로 무량겁 전에 이미 깨달음을 이룬 부처님의 몸, 몸짓, 또는 그 본각의 부처님들이 사는 이상세계라고 한다면, 어째서 현실세계는 욕망과 번뇌와 고통으로 가득 차 있느냐는 것이다. 이 고통의 세계를 눈으로 직접 보면서 현실과 동떨어진 공리공론이 아니냐는 것이다.
이 질문은 저 독자만의 것이 아니다. 유마경에서 이미 제기되었던 것이다. 부처님은 "보살이 정토를 얻고자 하면 먼저 그 마음을 깨끗이 하라. 마음이 청정하면 불국토도 따라서 청정해진다."고 설한다. 이 법문을 들은 사리불에게는 의심이 생겼다. "부처님이 보살로 수행할 때나, 현재 불도를 이루어 부처님으로서 교화할 때에 , 그 마음은 분명히 청정할 터인데, 세상이 이처럼 깨끗하지 못한 것은 어인 까닭인가?" 부처님은 사리불의 의심을 알아차리고 사리불에게 묻는다.
"여기 깨끗한 해와 달이 있다고 치자. 그러나 장님은 그것을 보지 못한다. 이 경우에 깨끗한 해와 달을 보지 못하는 것은 해와 달의 허물이냐?" 물론 사리불은 "해와 달의 깨끗함을 보지 못하는 것이 장님이 허물이지 해와 달의 허물은 아닙니다."라고 대답한다.
원각경에서는 약간 다른 방식으로 같은 질문이 제기된다. 부처님은 이 세계의 근본을 "원각"이라고 규정하고, 이 원각으로부터 모든 청정, 진여, 보리, 열반이 흘러나온다고 말한다. 원각의 바탕은 항상 변하지 않지만, 중생이 미혹해서 저 바탕 자리를 보지 못하고 병든 눈이 허공꽃이나 환과 같다고 한다면, 몸과 마음과 수행도 모두 환과 같을 터인데, 누가 무엇을 닦으며 무엇을 이룬다고 하겠느냐는 것이다. 원각의 바탕자리가 청정하고 진여의 상태라면 현실고 또한 그러할 터인데, 어째서 현실은 허깨비와 같으며, 헌실이 환이라면 무슨 재주로 저 원각의 자리로 되돌아 갈 수 있느냐는 물음이다.
원각경에서의 부처님은 현실의 환이 본각에서 나온 것으로 설명한다. 눈병이 치료되면 허공꽃은 없어지고, 귓병이 치료되면, 헛소리가 스스로 없어지듯이 미혹의 세계는 지워진다. 그러나 허공꽃이 없어진다고 하더라도 청정한 허공은 그대로 있듯이 원각의 세계는 항상 그대로 있다. 원각의 세계가 없어서 중생이 못보는 것이 아니라, 중생의 눈과 귀가 병들어서 공연히 더러운 세계를 지어서 볼 뿐이라는 것이다.
유마경은 장님이 청정한 해를 못 본다는 비유로, 원각경은 눈병난 사람이 청정한 원각의 허공을 못 본다는 비유로, 본래 부처인 중생이 미혹과 업에 가려서 본각의 세계를 보지 못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미혹의 세계에서 바로 본각의 경지를 알아보는 일은 결코 공리공론의 말장난이 아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겪고 있는 고통을 제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최고의 처방이다. 사람은 누구나 남보다 높이 오르고 싶어한다. 일등이 되고 싶어 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똑같은 방향을 향해서 뛰면 어떻게 그들 전원이 남보다 앞서거나 일등을 할 수 있겠는가. 일등이 못 되는 사람이 생긴다. 그들은 모두 좌절해야 하는가?
우리는 본각의 부처다. 부처에게 있어서 세상에서의 경쟁은 이겨도 좋고 져도 좋다. 부처에게서 게임은 재미를 더할 뿐 상처를 주지는 않는다. 이 세계와 그 안의 모든 것에서 부처와 열반을 발견하는 이는, 도시의 높은 빌딩 속에서나 기은 산속의 움막에서나 똑같이 행복할 수가 있다. 거지의 옷을 입고도 삶의 환희와 평화를 누릴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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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 풍경소리 ]
< 하루를 살 듯이 > / 법현스닙
일을 시작함에
평생 동안 할 일이라 생각하면
어렵고 지겹게만 느껴지는 거도
하루만 하라면 쉽고 재미있게 느껴집니다.
슬프고 괴로워도
오늘 하루만이라고 생각하면
견딜 수 있습니다.
백년도 하루의 쌓임이요.
천년도 오늘의 다음 날이니
하루를 살 듯
천 년을 살아보면 어떨까요.
< 너무 작은 심장 > / 장 루슬로
작은 바람이 말했다.
내가 자라면
숲을 쓰러뜨려
나무들을 가져다주어야지.
추워하는 모든 이들에게.
작은 빵이 말했다.
내가 자라면
모든 이들의 양식이 되어야지.
배고픈 사람들의.
그러나 그 위로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작은 비가 내려
바람을 잠 재우고 빵을 녹여
모든 것들이 이전과 같이 되었다네.
가난한 사람들은 춥고
여전히 배가 고프지.
하지만 나는 그렇게 믿지 않아.
만일 빵이 부족하고 세상이 춥다면
그것은 비의 잘못이 아니라
사람들이 너무 작은 심장을 가졌기 때문이지.
나무대원본존 지장보살마하살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
원만행님의 댓글
원만행 작성일무상은겸손 ?? ! 본질과현상은 조화로와야한다 .원성실성 집착을 안하면된다 . 존재로부터 자유로운것 단정짓지말고 마침표찍지말고 내마음 밖에서찾지 마라 .불교의수행은 중도를향해 양극단을 본다 . 양극간을 갖이 보는것 건강한심리상태 중 도 를 가라 . 이고득락 자리이타 요익중생 상생 승 아의진정한 의미는 진여다 .건강한 심리상태 !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감사합니다.건강하세요 중도를 놓치면고가온다 . 금강경 사귀계로 ....걸림없는 무가애고 서원은 자기 자신을 위하여 무언과 중생무변서원도 원행 수행 오직 유원 중생에게 깨달음이 있을수있도록 일상새활에서 실습이 중 요하다 .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생기발랄하신 큰보살, 원만행보살님!~
#원성실성圓成實性을 인터넷에서
<청화 큰스님> 법어로 찾아 봤습니다.
"이것 역시 진여연기眞如緣起나 중도中道에서처럼
원만하게 이루어진 참다운 우주의 실상입니다.
인연 따라서 된 것은 허망하기 때문에 공空이지만
그러나 우주의 참다운 모습은
다만 공인 것이 아니라 결국 원성실성입니다.
자비, 지혜, 행복, 능력 할 것 없이
모든 것이 원만하게 갖춰진 그 자리를 말합니다.
지금 우리 생명生命은 그 자리를 다 갖추고 있습니다. "
#중도 中道 ㅡ 석가모니부처님께서 가르쳐 주신 팔정도를 통해
고苦와 낙樂의 양면을 떠나
심신의 조화를 얻는 길을 의미하는 불교교리
말은 간단하고 쉽지 않지만 가장 어려운 불교교리라고 생각됩니다.
소중한 댓글 감사 감사드립니다.
나무대원본존 지장보살마하살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
원만행님의 댓글
원만행 작성일증득하지못했었도 이해는한다 자리이타가 육바라밀 37조도품 자리이타 지혜 타자와 나 대승의 웍바라밀 타자는 ? 나 외부의인연을 마음 분리 통합한다 .사섭법 육바라밀 무량심 우리의 자아가 항상 많다 .널리 공경하고 사랑할수 있는 마음으로 행복 하세요 . 사실 나는어떤존재인가? 근심덩이다 ! 불신 몸을 즐깁시다 곧 법신을 말하는것이겠죠 . 우리가 수행중 힘들때는 악우 는 멀리하는것이 일단은 수행을 선우로 ,ㅎㅎ 감사해요 .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약사여래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