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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봉스님 { 안면암 일기 } : < 122 불교는 우상숭배인가? > 2022년 2월 21 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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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탈심게시봉사 댓글 3건 조회 653회 작성일 22-02-21 0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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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구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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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게 깨달은 이의 말한 바 법을,

마음으로 한 번 깨달아 알았거든,

그것을 공경해 돌아가 의지하라,

화천(火天)을 예배하는 바라문처럼.


종교는 둔한 양심의 숫돌, 마비된 자성력(自省力)의 식염 주사.

심경(心鏡)이 맑아짐으로 말미암아 은폐되었던 자기의 번민이 발견되고

촌분(寸分)의 악업이 척장(尺丈)으로 보이는 것이다.

큰 신앙, 출생의 진통이요, 큰 위안, 큰 환희의 전주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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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2   불교는  우상숭배인가? >

일부 종교인 가운데는 불상을 가리키면서 우상타파를 역설하는 이들이 많다. 산에 있는 마애석불에게 페인트칠을 하는가 하면 불상의 목을 자르는 경우도 있다. 그들은 자기 종교의 경전에서 가르친 것을 맹신해서 타종교를 공격한다. 또 불상이나 조상 앞에 공양물을 올리고 절하는 것을 미신 행위로 몰아붙이기도 한다.

    그런데 저와 같이 우상타파를 주장하는 이들에게도 예배의 대상이 있다. 말하자면 십자가가 그런 것이다. 저 타종교인들은 불교 신자처럼 절을 하지는 않지만 양손의 손가락을 교차시켜 주먹을 쥐면서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인다. 저들과 불교인들의 예배 형태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큰 차이가 없다. 불교인들의 불상이라는 구상체具象體에 대해서 절을 하는데 비해서, 저들은 십자가라는 비구상체非具象體 즉 추상체抽象體에 대해서 머리만을 숙일 뿐이다. 예배 대상의 형상과 예배 방법은 문화의 차이일 뿐, 내용면에서는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불상이 우상이라면 십자가도 우상이요, 절하는 것이 미신 행위라면 머리만을 숙이는 것도 역시 미신 행위인 것이다. 구상화具象畵와 추상화의 두 개 그림이 있을 경우, 구상화를 좋아하면 정당하고 추상화를 좋아하면 부당하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타종교의 교리에 대해서 왈가왈부하고 싶지 않지만, 전지전능한 유일무이의 최고신이 있어서 인간처럼 변덕과 심술을 가지고 특정한 사람만을 보살피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화를 줄 것이라고 믿는 이들이 있다면, 그들이야 말로 미신의 우상숭배자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인간사에 있어서도 훌륭한 스승은 제자들을 가르칠 때, 자기 자식이라고 하더라도 잘못을 저지르면 벌을 주고, 남의 자식이라고 하더라도 선행을 하면 칭찬을 해 준다. 하물며 성인이라면 얼마나 공평하겠는가. 그런데도 저들은 옳고 그름에 상관없이 자기들만을 보호하는 우상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물론 모든 서양 종교인들이 불상을 가리키면서 우상타파를 주장하지 않는다. 일부 서양 종교인들이 그렇다는 말이다.


     부처님이야말로 진정한 우상타파주의자이다. 무엇이 우상인가? 돈, 명예, 권력 등이 우상이다. 나만을 변함없이 사랑해 달라는 기대가 우상이요, 영원히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희망이 우상이다. 근본적으로 '나'라고 하는 그 자체가 우상이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한 가지도 없다. 끊임없이 변한다. 인연의 관계 속에서 나라고 하는 구조와 무대는 임시적으로 존재하지만 그 속에 고정적인 실체는 없다. 영원불변의 나가 없는 마당에 무슨 영원한 사랑이나 행복이 있겠는가. 그것들은 미혹한 중생이 지어 낸 우상일 뿐이다. 저 우상에 매달이는 이가 중생이요, 저 우상을 쳐부순 이가 부처이다. 부처님이 무상, 무아, 공을 가르치는데, 그 가르침들은 우상타파라는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는 것이다. 해탈은 바로 저 우상의 감옥으로부터 탈출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우리 중생은 형상과 이름에 의해서 보고 듣고 말한다. 세상사가 모두 가짜인 것은 분명하다, 실체가 없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손에 잡히는 형상과 호칭할 수 있는 이름과 생각을 떠올릴 수 있는 개념을 임시로나마 의지해서 해탈을 향해 수행한다. 꿈속의 호랑이가 가짜인 것만은 분명하지만, 그 가짜 호랑이에 의해서 꿈에서 깨어날 수가 있듯이, 법당의 부처님이 불보살의 육신이 아닌 것은 분명하지만 그 형상에 의지해서 신심을 표현하고 원을 세울 수가 있는 것이다.

    위에서 우리는 타종교인들의 불상을 향한 우상타파를 부당한 것처럼 반박했었다. 그러나 사실은 불교 내부에서 오래 전에 이미 이 문제가 대두되었다. 법당의 불상을 진짜 불보살로 생각하는 것을 경계하기 위해서, 어느 조사 스님은 목불을 장작으로 삼아서 방을 따뜻하게 했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조사 스님이 화현해서 가르침을 전하려고 한다는 의미에서 타종교인들의 우상타파 주장을 공부 경책으로 삼을 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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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 오늘의  부처님 말씀 >


남에게 의지해서는 안 된다.


그대 자신을

스스로 등불로 삼고

오직 그대 자신에게

의지해야 한다.


진리를 스스로 등불로 삼고

언제나 진리에 의지해야 한다.


                                ㅡ  아함경


<      사는 이유      >              /          최영미


투명한 것은 날 취하게 한다

시가 그렇고

술이 그렇고

아가의 뒤뚱한 걸음마가

어제 만난 그의 지친 얼굴이

지하철을 접수한 여중생들의 깔깔웃음이

생각너면 구길 수 있는 흰 종이가

창밖의 비가 그렇고

빗소리를 죽이는 강아지의 컹컹거림이

매일 되풀이되는 어머니의 넋두리가 그렇다


누군가와 싸울 때마다 난 투명해진다

치열하게

비어가며

투명해진다

아직 건재하다는 증명

아직 진통할 수 있다는 증명

아직 살아 있다는 증명

투명한 것끼리 투명하게 싸운 날은

아무리 마셔도 술이

오르지 않는다


나무대원본존 지장보살마하살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

원만행님의 댓글

원만행 작성일

부득부진이다  알아야한다  .  맹진하면안된다 .  이치를 알고나서  사교입선이라지만  설통?.  일치하여  태양과같이  밝고    그릇됨을버리자  .도닦는마음으로살면  일체가 방해로움이없다  .  사와정을 놓아버리고  본래참모습으로 산다  .귀에는  거슬리는말이  약이된다  .    진흙땅에서  연꽃이  핀다  .  염염 대법선    부처님의  가호가있기를빕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감사합니다.  약사에래불 께공손히  합장합니다  .  인격은돈갖이고안된다  보리지혜는안에있어    정성껏하면  천당이다  .곧성불한다    법불상정  하여라  .  고요이앉아깨달음  머물면    천하고귀하코  여기지않는다  .  대법은  백천가지  미묘법이있다 .  혜아릴수  없는삼매    내가즐길수 있는  열반적정이다  .!    살아가는데 늘  충분한  보배로살아갑시다    다이아몬드는  무색 투명하다  .성현말씀들어    심성가운데    청정한심성만이  볼수있다  .  미래를위하여 보현보살의  행원을쌓으면    일체법은  다툼없고    무량무변하여    금강과  아무리  시대가바뀌어도 적정이며  성취한다  .  이세상  부처님오시기를  발원합니다  원만행합장  올림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생기발랄하신 큰보살, 원만행 보살님!~

진흙땅에서 연꽃이 피니 사바세계의 묘미입니다.
인간의 온갖 굴레를
초극하고 벗어나
꽃 중의 가장 신성한
꽃인 #연꽃을 피우게 되면 그 얼마나 좋겠습니까?

열반적정 ( 모든 모순을 초월하여 고요하고 청정한 경지)에 오르는 것이
한결같은 인간들의 목표이며 소원이며 발원일 것입니다.

소중한 댓글 감사 감사드립니다.

 나무대원본존 지장보살마하살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



대지문수 사리보살
대비 관세음보살
대행 보현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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