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봉스님 { 안면암 일기 } : < 124 불교와 자유의지 1 > 2022년 2월 23 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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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탈심게시봉사 댓글 3건 조회 625회 작성일 22-02-23 07:12본문
{ 법구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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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묶은들 무엇 하리.
풀옷을 입은들 무엇 하리.
마음에 집착을 버리지 않으면
겉으로만 버려서 무엇 하리
사람들은 흔히 재지(才智)와 기민만은 가상(嘉賞)할 줄 알면서,
그에 따르는 사위(詐僞)와 교묘와 미친 듯한 자홀(自惚)과 희희(嬉嬉)하는
경박에는 장님인 듯 못 보는 양한다.
될 수 있으면 죄 짓지 않게, 될 수 있으면 굳센 생활로
얼마 아닌 일생을 보내고 싶다.

< 124 불교와 자유의지 1 >
앞에서 우리는, 세상사가 창조신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조정된다거나, 숙명적으로 정해져 있다거나, 우연히 이루어진다고 하는 주장들이, 인간의 자유의지를 인정하지 않게 된다는 점을 살폈었다. 물론 저 창조신론, 숙명론, 우연론도 부분적으로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창조신이 허용하거나 묵인하는 범위 내에서 인간의 의지를 인정하는 것, 결과는 숙명적으로 정해져 있다고 하더라도 그 결과에 이르는 과정을 인간의 의지고 바꾸는 것, 그리고 우연론 가운데에서도 인간의 의지가 작용할 수 있는 확률을 높이는 것 등이다. 그러나 아무리 이리저리 말을 굴리더라도, 궁극적으로 인간의 자유의지는 부정된다.
불교에서는 '자업자득自業自得 인과응보因果應報'라는 말부터 인간의 의지를 인정하고 있다. 사람이 스스로 업을 짓고 그 업에 대한 결과를 받는다. 그것이 인연과因緣果의 법이다. 또 일체유심조一切有心造 즉 모든 것이 마음의 규정에 의해서 생겨난 것이라는 입장이나 공사상에서 볼 때도 , 인간의 의지가 중요시된다.
먼저 불교에서 흔히 사용하는 여섯 가지 감각 기관의 용어를 보자. 눈, 귀, 코, 혀 , 몸, 뜻, 즉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이다. 앞의 다섯 가지는 감각기관이지만, 여섯째는 인간의 의지를 말한다. 이 여섯 감각 기관은 여섯의 상대 경계 즉 색성향미촉법에 대응해서 여섯 가지 인식을 만든다.
그런데 불교의 유식唯識 사상, 유심有心 사상에 의하면 세상의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들어 낸다. 감각 기관이나 마음이 대상을 인식할 때, 그 마음은 밖의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식이 주관과 객관으로 갈라진다. 그러나 아무리 주관이 객관을 보더라도, 그 객관은 자신의 식에서 갈라져 나간 것에 불과하다. 결국 인간은 자기의 마음속에서 대상을 인식하는 것이다. 주관 객관이 모두 마음속에 있다면, 그리고 그 마음이 자유롭게 객관을 인식한다면, 불교에서는 의지의 자유가 완전히 보장된다고 할 수 있다.
유식사상과 유심사상의 바닥에는 불교의 공사상이 깔려 있다. 세상은 특별히 어떤 모양으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공한 상태에 있다. 세상에 펼쳐지는 것은 백지에 사람의 마음이 멋대로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다. 그런데 인간의 자유의지가 인정되기는 하지만, 그것의 진로는 크게 둘로 갈라진다. 윤회의 길과 열반의 길이다. 생멸문生滅門과 진여문眞如門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윤회의 길은 무명과 갈애에 의해서 사람이 갖가지 번뇌를 일으키고 , 현실에서 고통을 받으며 윤회하게 된다. 고통 가운데는 자기가 원하는 대로 성취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
아프고 싶지 않아도 아파야 하고, 늙고 싶지 않아도 늙어야 하고, 죽고 싶지 않아도 죽어야 한다는 것은 결국 인간의 의지가 제대로 인정되거나 성취되지 못함을 뜻한다. 인간의 의지가 제대로 인정되려면 열반의 길로 가야 한다. 열반의 길은 헛된 욕망을 쉬고, 무상, 무아, 공의 현실을 여실히 보아야 한다. 그러면 물질이나 육신으로는 영원을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영원한 목숨은 , 지금의 이 육신을 천 년 만 년 유지하는 데서가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지우고 변하는 전부를 자기 자신으로 삼는데서 얻어진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유의지의 방향을 바로 잡음으로써, 그것이 제대로 인정되고 성취되게 하는 것이다.



댓글목록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 오늘의 부처님 말씀 >
"확고한 믿음을 세워 의심하지 말라."
ㅡ 대지도론
< 침묵의 소리 > / 클라크 무스타카스
존재의 언어로 만나자.
부딪침과 느낌과 직감으로.
나는 그대를 정의하거나 분류할 필요가 없다.
그대를 겉으로만 알고 싶지 않기에.
침묵 속에서 나의 마음은
그대의 아름다움을 비춘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소유의 욕망을 넘어
그대를 만나고 싶은 그 마음
그 마음은
있는 그대로의 우리를 허용해 준다.
함께 흘러가거나 홀로 머물거나 자유다.
나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그대를 느낄 수 있으므로.
나무대원본존 지장보살마하살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
원만행님의 댓글
원만행 작성일서산대사 님의 환 향곡 박연방장 천마주 고로 분명 각불차 나무아미타불 지팡이내던지는소리 하늘마구니 씻은듯 오네 천상천하유아독존으로 걸음걸이 어긋남이 없다 나무아미타불 생사거래 위일관 라 라 리라로다 . 나무아미타불 .태어나 주고한줄기 피는것만 꽃이고 죽는것이 꽃이아닌가? 좋고나쁨 없는것을아는 법락을알자 .라리나 라라 멋진노래부르자. 서산대사님은 이렇게밑고닦으면 !.. .자기인생자기가 닦으면 성불한다 .건강하세요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마하 반야 바라밀 ...감사합니다.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생기발랄하신 큰보살, 원만행 보살님!~
보살님께서는 새월과 더불어
법락(法樂ㅡ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받드는 마음의 기쁨)
이 멋진 노래로 승화되는 것 같으시니 부럽고 부럽습니다,
서산대사님의 <청허가淸虛歌>를 그대로 옮겨 보네요.
군포금혜의장송君抱琴兮倚長松
장송혜불개심장長松兮不改心
아장가혜좌녹수我長歌兮坐綠水
녹수혜청허심綠水兮淸虛心
심혜심혜心兮心兮
아여군혜我與君兮
그대 거문고 안고 큰 나무에기대나
큰 소나무는 마음을 바꾸지 않는다.
긴 노래 부르며 푸른 물가에 앉으니
푸른 물 맑아 마음이 텅 비었네
마음이여, 마음이여!
나 그대와 함께하리.
보살님의 수행정진력 덕분에 저의 무명이 조금씩 벗겨지고 있습니다.
소중한 댓글 감사 감사드립니다.
나무대원본존 지장보살마하살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