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봉스님 { 안면암 일기 } : < 125 불교와 자유의지 2 > 2022년 2월 24 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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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탈심게시봉사 댓글 3건 조회 653회 작성일 22-02-24 06:50본문
{ 법구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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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는 헌 누더기를 입었어도
법에 따라 몸소 행하고
혼자 있어 고요히 생각하면,
나는 그를 일러 '바라문'이라 한다.
평화와 안정과 생활에서만 나의 존재는 바로 서고,
그 속에 있어서만 내 생명은 그것을 얻어 본유(本有)의 성능을 발휘한다.
적어도 나는 이 사실을 잘 알매,
모든 의욕의 다툼과 권세의 싸움은 그들에게 맡겨 두련다.

< 125 불교와 자유의지 2 >
앞에서 우리는 미망에 빠진 의지에는 자유가 인정되지 않고, 자기가 지워진 우주아를 터득하고 실천할 때에만 자유의지가 인정된다고 살핀 바 있다. 이에 대해서 독자가 날카로운 질문을 보내 왔다.
첫째, 만약 미혹한 중생의 의지는 부정되고 깨달은 부처의 의지만 인정된다면, 자유의지를 논하는 그 자체가 무의미한 것이 아닌가? 지금 중생으로서의 우리에게 자유의지가 있느냐를 묻고 있는 마당에, 중생에게 자유의지가 없다고 한다면 결국 우리에게는 자유의지가 없다는 말이 되는 것이 아닌가?
둘째, 중생에게 자유의지가 없다면 지옥과 극락, 윤회와 해탈의 길을 선택할 자유도 없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악업을 짓고 지옥에 떨어지더라도 본인의 책임이 아니지 않는가? 자업자득의 인연과 법칙이 무시되는 것이 아닌가?
이 질문을 계기로 우리는 자유의지와 연관해서 다른 각도에서 의문을 만들어 본다. 중생으로서의 나와 부처로서의 나는 하나인가 둘인가 하는 것, 그리고 중생의 의지가 부처의 의지가 될 수 있고 반대로 부처의 의지가 중생의 의지로 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간단하게 결론부터 말한다면 불교에서 부처와 중생은 둘이 아니다. 화엄경에서 마음과 부처와 중생이 차별이 없다는 것, 법화경에서 중생은 무량겁 전에 이미 성불한 부처의 상속자라는 것, 법화경에서 중생은 무량겁 전에 이미 성불한 부처의 상속자라는 것, 열반경에서 모든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는 것, 여래장사상에서 중생은 부처의 태아라는 것등이 , 한결같이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님을 가르치고 있다.
중생은 미숙한 부처이고 부처는 원숙한 중생일 뿐이다.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라면, 중생의 의지와 부처의 의지를 따로 나눌 필요도 없다. 중생 속에 이미 부처의 의지가 들어 있으니, 중생에게 부처가 누리는 자유의지가 있는 셈이다.
중생인 우리에게는 지옥의 길을 갈 것이냐 극락의 길을 갈 것이냐, 또는 윤회의 길을 갈 것이냐 해탈의 길을 갈 것이냐 대해서 선택할 권한이 주어져 있다. 어느 쪽을 향하느냐는 점에 있어서는 자유의지가 인정된다. 그러나 일단 윤회의 길 에 들어서게 되면, 그 순간부터 끝없는 장애를 만나게 된다. 생사병사로부터 시작해서 모든 것이 자유의지를 구속한다. 이런 점에서 윤회의 길에는 자유의지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지, 중생에게는 무조건 자유의지가 없다는 말이 아니다.
자기 부모를 죽이고 토막을 내서 쓰레기통에 버린 한 청년을 예로 들어서 생각해 보자. 그 청년에게도 불성은 있다. 자유의지가 있다. 그러나 미혹에 빠져서 원망하는 마음의 포로가 되고 나면 그는 이미 본래의 자기가 아니다. 그는 미쳐 있다. 정신병자라고 단정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잃어버렸다는 말이다.
부처는 그만두고라도 중생으로서의 자기마저 잃어버린 사람에게 자기의지를 말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 아닌가. 마찬가지로 우리 중생에게 불성이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리고 본래의 부처요 미래의 부처인 것은 분명하지만, 우리가 미혹에 빠져서 죄업의 길을 간다면,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것이 되어서 자기의지를 논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말이다. 자기 자신이 정립되어 있을 때 자기의 자유의지를 말할 수가 있는데, 그 자기 자체가 상실되어 있다면, 그곳에 의지의 자유를 붙일 수가 없다는 말이다.
중생이 미혹에 빠져 있는 것은 당연하다. 탐욕에 빠져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 욕망의 세계에서 하는 일마다 잘못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 중생이 해탈을 향한 좋은 의지를 낸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그 의지를 성취할 수 있느냐는 물음이 제기된다. 미혹의 꿈속에서 아무리 좋은 생각을 낸들 어떻게 꿈에서 깨어날 수 있느냐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꿈속의 호랑이가 가짜이기는 하지만, 우리를 잠에서 깨어나게 할 수 있다고 말이다. 중생도 발심하면 깨달음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해탈로 가는 길에서 중생의 의지와 부처의 의지가 하나로 이어지는 것이다.







댓글목록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 오늘의 부처님 말씀 >
눈이 흐려지면
아름다운 빛깔도
곧장 흐려진다.
그대의 마음이 깨끗하지 않으면
아무리 바르고
훌륭한 가르침이라도
마음에 결코 담을 수 없다.
ㅡ 화엄경
< 생이 끝났을 때 > / 메리 올리버
죽음이 찾아올 때
가을의 배고픈 곰처럼
죽음이 찾아와 지갑에서 반짝이는 동전들을 꺼내
나를 사고, 그 지갑은 닫을 때
나는 호기심과 경이로움에 차서
그 문으로 들어가리라.
그곳은 어떤 곳일까, 그 어둠의 오두막은.
그리고 주위 모든 것을 형제자매처럼 바라보리라.
각각의 생명을 하나의 꽃처럼
들에 핀 야생화처럼 모두 같으면서 서로 다른.
생이 끝났을 때 나는 말하고 싶다.
내 생애 동안 나는 경이로움과 결혼한 신부였다고.
세상을 두 팔에 안은 신랑이었다고.
단지 이 세상을 방문한 것으로
생을 마치지는 않으리라.
나무대원본존 지장보살마하살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
원만행님의 댓글
원만행 작성일단단한 마음공부 마음편한것도 구함도아니고 따뜻한몸 먹는것도아니고 부처님의지혜로 이르는 수행자로출가의좋은점ㅇ라 서산대사님의 청허당집 에서 읽은 구절이 떠오릅니다 . 수행자의 삶 동기이자 성향 사성제의 인지가필요 스님들과 친해져야 승단의 확고함 고통의 인자와 갈림길에 서 있는 누구도 일상에서 나누는 생활의증가 남에게베풀줄 아는 6바라밀 10행을 순야다소망 허공계가다할지언저 나의 마음은 변치않으리 나무아미 타불 관세음보살 감사합니다
정광월 합장님의 댓글
정광월 합장 작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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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광월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