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봉스님 { 안면암 일기 } : ★한 권으로 읽는 불교 교리 마지막 날, < 126 불교와 자유의지 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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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탈심게시봉사 댓글 3건 조회 682회 작성일 22-02-25 07:26본문
{ 법구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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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문을 부모로 해서 태어난 자를
나는 바라문이라 하지 않는다.
마음속의 많은 번뇌를 멸하면
이것이 진정한 바라문이다.
오욕(五慾)을 떠나 깨끗한 종교 생활을 영위한 과거의 선인들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새삼스레 느낀다.
자기의 범부성, 못내 비참하고 밉다.
모든 전통적 관념과 인습적 지식을 완전히 파괴하여 새로운 입장을 가져야 하고,
나중에는 그 입장마저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 126 불교와 자유의지 3 >
우리에게 자유의지가 있다고 하는 것은, 마음 내키는 대로 살아 갈 자유가 있다는 것뿐이다. 아누리 자유의지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쓰지 않을 수가 있다. 사람은 습관의 동물이다. 자기도 모르게 업의 굴레 속에서 살아가낟. 업의 삶에서는 의지가 무시된다. 겉으로 보기에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과거의 습관을 그대로 답습할 뿐이다. 그러니 엄습의 삶에서 자유의지는 이름만 있게 된다.
업은 끝없는 반복 즉, 윤회를 만든다. 불교는 저 윤회로부터 벗어나라고 가르친다. 해탈하고 열반에 들라고 가르친다. 자유의지를 죽여 버리는 업의 윤회에서 벗어나, 자유의지를 마음껏 활용하라고 가르치는 셈이 된다.
이 자유의지를 확대해 나가면 불교에서 중시하는 원願의 사상이 나온다. 업의 생활은 자유의지를 사장시키는 것이 되고, 원의 생활은 자유의지를 살리는 것이 된다. 업과 원이라는 말 그 자체에는 시간적으로 과거와 미래의 차이가 없다. 그러나 현실에서 사용될 경우에, 업은 이미 과거에 행해진 것을 지칭하고, 원은 미래에 행해질 것이라는 작심을 나타낸다.
불교는 원의 종교이다. 원에 모든 시간과 공간이 다 들어 있다.
불경에 이상세계가 화려하게 그려져 있지만, 우리가 아는 범위 내에서는 지구상에 저 이상세계의 원이 실현된 적이 없다. 이상세계는 항상 미래에 있다. 원은 끝이 없다. 무한하다.
원의 무한성을 가장 잘 나타내는 것으로 수기授記 사상이 있다. 법화경의 수기를 보자. 부처님은 제자에게 참으로 기나긴 세월의 수행 끝에 성불하리라는 예언을 내린다. “삼백만역 나유타 부처님을 공양, 공경, 찬탄하며 보살행을 닦은 끝에 성불한다.”는 것이다.
불교에서 겁劫은 그저 비유로 짐작할 수밖에 없는 긴 시간이다. 한 부처님의 수명만을 보아도 12소겁小劫이요, 정법正法의 기간이 20소겁, 상법像法의 기간이 20소겁이니, 한 부처님을 모시는 기간만 쳐도 52소겁이 된다. 삼백만억의 무한수 부처님을 차례로 공양하자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리겠는가.
우리가 이 수기를 역사적으로 쳐서 계산한다면, 석존이 「법화경」을 설하신 지 3천년도 넘지 못하였다. 아직 1겁의 무량 억천만분의 일조차도 채우지 못한 것이다. 그토록 긴 세월에 걸쳐서 부처님을 모시고 보살행을 닦은 후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고도, 제자들은 환희의 감격에 어쩔 줄 모른다. 100년의 기간도 제대로 보내기 힘든 세상에서, 무량 억천만생 뒤의 성불을 듣고도 기뻐하는 것은, 우리로는 측량하기가 불가능할 정도의 아주 깊은 신심과 원에 차 있음을 나타낸다. 원을 세운 마당에 세월의 간격은 아무리 길어도 문제되지 않는다. 원 속에서 이미 무한 미래의 성취를 만끽한다.
「무량수경」에는 또 다른 종류의 원이 있다. 법장 비구는 만약 중생들이 염불하고도 극락세계에 가지 못하는 이가 있다면 성불하지 않겠다는 서원을 세운다. 법장 비구는 마침내 아미타불이 된다. 그러니 누구든지 아미타불을 진실한 마음으로 생각하면 극락에 갈 수가 있게 된다. 여기에 수행 기간은 명시되어 있지 않다. 아니, 시간을 말할 필요가 없다. 불교에서 진실한 원은 그것의 도달과 다를 바 없다. 원을 세우는 그 찰나에 성취를 느낄 수 있다.
어떤 이는 불교의 원사상이 역사적 사실성을 결여한 유심주의가 아니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불교는 공사상을 기본으로 삼고 있다. 현실은 결정된 것이 아니다. 끝없는 과정의 상태에 있다. 고정된 사실이란 있을 수가 없다. 시간과 장소에 따라서 같은 사실도 얼마든지 달리 해석된다. 그렇기 때문에 미리 고정된 결과를 정하지 않고 진행되어 가는 먼 미래를 미리 느낄 수 있다. 왕생극락이나 성불의 원을 세운 그 자리에서 성취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자유의지를 원과 연결해서 생각하면, 불교의 공사상과 유심사상이 자유의지의 기초 위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댓글목록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 오늘의 부처님 말씀 >
남을 결코 헐뜯지 않고
노여워하거나
인색하지 않은 사람,
비록 마음에 들지 않아도
조금도 개의치 않는 사람,
그리고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아
모든 속박으로부터 벗어난 사람,
그는 세상에서 가장 올바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 수타니파타 -
< 석류 , 웃다 > / 최순향 전철 시민 공모 우수작
고독도 잘 익으면
너에겐 웃음일라
고운 치열 자랑하며
활짝 웃는 그 모습
부시게
눈이 부시게
사리(舍利)로 꽉 찬 속내
나무대원본존 지장보살마하살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
정광월 합장님의 댓글
정광월 합장 작성일
허허 지명 대종사님
금장 하시고 계시는 모습 사진으로라도
건강하셔요
모든분들 함께요
정광월 두 손 모음
ybr님의 댓글의 댓글
ybr 작성일
참 좋은 도반, 정광월보살님!~
허허 지명 대종사님의
금장하시고 계신 모습을
저도
아직 한 번도 뵙지 못했습니다.
곧 우리 모두가 뵈올 날이 다가 오겠지요.
소중한 댓글 감사 감사드립니다.
나무대원본존 지장보살마하살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