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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봉스님 { 안면암 일기 } : < 094 무 5> 2022년 1월 24일 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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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탈심게시봉사 댓글 3건 조회 822회 작성일 22-01-24 0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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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구경]

366


자기의 얻음에서 불만을 품지 않고

적게나마 쌓아 둠이 없으면,

정명(淨命: 깨끗한 생활)의 게으름이 없는 비구를

하늘도 오히려 칭찬하나니.


새것을 욕망하는 욕망과 그 욕망의 운행은,

사람을 향상시키는 동시에 불행하게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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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4    노자와 선의 무無

노자의 「도덕경」을 읽다 보면, 많은 부분에서 선사들의 법어와 흡사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노자의 무위의 도는 선의 무와 다를 바 없다. 장자의 말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노자와 장자의 사상을 제대로 전한 적자가 바로 선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표면적인 유사점도 많지만, 깊이 들어가 보면 근본에서 차이점이 있다. 노자와 선에서 가르치는 무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구별해 보는 것은, 선의 무사상을 더욱 뜨렷이 밝히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먼저 유사점을 보자. 도덕경의 이런 말들을 들으면 선사의 설법이 아닌가 하고 착각할 것이다."도는 하나를 낳고, 하나는 둘을 낳고, 둘은 셋을 낳고, 셋은 만물을 낳으니. . ."  선의 '만법귀일萬法歸一' 즉 "만법은 하나로 돌아간다."를 뒤집어 놓은 것이다. "도라고 말하면 이미 그것은 참다운 도가 아니고, 이름이 붙여지면 이미 그것은 영원한 것이 아니다."는 말로  도덕경은 시작된다.

      또 "도는 볼 수도, 이름할 수도 없고, 잡을 수도 없다."는 취지의 말도 나온다. "사량분별로 배우는 학문은 배울수록 늘어남에 비해서, 도는 닦을 수록 줄어들게 되니. 줄이고 줄이면 무위에 이르게 되고, 이에 이르러 하지 못함이 없게 된다." 일체의 명칭, 개념, 사량분별을 끊고 사물을 보아야 존재의 실상이 드러난다는 선의 가르침과 다를 바 없다.

     무사량無思量 ,무심無心, 무위가 여기에 다 들어 있다. "형상이 없는 형상을 보고, 소리 없는 소리를 듣는다." 는 「도덕경」의 입장은 선의 것 그대로이다. "한 물건이 있어, 하늘보다 먼저 생겨나서, 고적하여 소리와 형체도 없건만, 영원히 변함이 없으며, 모든 것에 두루하니. . . "라는 말은 선사들이 자주 사용하는 어법이 아닌가. 무어라고 꼬집어서 이름을 붙이면 그것이 고착화되어서 존재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데 그르치므로, 선사들은 그것을 우주 법신체, 진여, 무, 또는 한 물건으로 말하곤 하지 않던가. 노자는 무이면서도 동시에 만물이 되는, 저 한 물건의 아이디어와 표현을 선사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도덕경」의 것을 조금만 더 보자. "무위로 행하고 , 무사無事로 일을 하고 무미無味로 맛을 보고. . .  " 「도덕경」은 무자의 잔치판으로 이루어졌다. 도는 무이고, 하나인 동시에 모든 것이요, 처음인 동시에 끝이다.

     선이 중국화된 인도의 요가 명상 수행법이라고 한다면, 선사들이 도덕경의 저 무자를 빌려 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노자와 선이 다 같이 무에 입각해서 사물의 실상을 보려고 하지만, 근본 목표점에서 천지간의 차이가 있다.

     노자의 무는 세상을 살아가는데 장애를 없애는 처세 철학인 면이 강하다. 자신을 지우고 인위를 없이 한 것의 대표적인 예가 물이다. 물을 그릇에 가두면 그릇의 모양대로 바뀌어지고, 낮은 곳으로만 흘러내리고 부드러워서 일체의 다툼이 없지만, 큰 바위를 부수어서 자갈이나 모래로 만드는 힘을 발휘한다.


    사람도 무위 정신에 입각한 물과 같은 부드러움으로 크게 성취할 수 있다고 한다. 또 곧고 큰 나무는 재목으로 잘려 나가서 일찍 죽지만, 굽고 작은 나무는 그 무용無用 덕분에 오히려 오래 살 수 있다고 한다. 선의 목표는 세속적으로 성취하거나 오래 사는 것이 아니다. 단순히 물질 만능주의를 떠난 새로운 각도에서 사물을 보고, 자신의 평화만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생사로부터 해탈하고 중생을 구하려는 것이다. 물론 무위의 이익이나 무위의 정치돠 같은 도덕경의 실용적인 가르침도 선이 수용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무착생심無着生心' 즉 "집착함이 없이 세상을 꾸밀 마음을 낸다."는 입장에서의 한 방편으로 받아들일 뿐이다. 그것이 선의 전부가 될 수는 없다.

     선은 궁극적으로 노자가 말하는 부드러움과 난폭함, 이익과 손해, 성취와 실패 등과 같은 모든 상대적이고 차별적인 분별마저 초월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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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 오늘의 부처님 말씀 ] 


자비심을 가지고 남을 위해 베푼 공덕은
드넓은 대지처럼 몹시 광활하다.

그러나
자신을 위해
베푼 공덕은
아무리 크다고 해도
겨자씨 정도에 그친다.

재난에 빠진 중생을 구제했을 때는
다른 어떤
보시보다 그 공덕이 크다.

마치 하늘에 수많은 별이 빛나도
밝은 달만 못한 것과 같다.

                                                  ㅡ 대장부론


<  행복幸福  >    /  청마 유치환
 

사랑하는 것은

사랑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 더 의지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방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진정 행복하였네라


나무대원본존 지장보살마하살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

원만행님의 댓글

원만행 작성일

무애인은  일체구함이없다    원효선사    일체유심조 .!    무의자성  진실락이  그중  갖춰더라  석호는  무영  하고  송풍  은화답할제  무착  령  올 라서서  불지촌을  바라보니  각수에 담화는  난만개더라  나옹선사님아미 의  토굴가  끝자락  입니다 ..나 무아미타불 약사여래불  감사합니다 건강하십시요

ybr님의 댓글의 댓글

ybr 작성일

생기발랄하신 큰보살 원만행보살님!~

무애도인이셨던
원효성사님은 우리 대한불교에서 가장 추앙받고 계신 큰스님이십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 가장 불교의 핵심을 가르쳐 주는 덕목이니
                                  이 가르침만 이해할 수 있으면 참 불자라 할 수 있겠지요.

  소중한 댓글 감사 감사드립니다.

나무대원본존 지장보살마하살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