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봉스님 { 안면암 일기 } : < 096 장자와 선의 유사점 > 2022년 1월 26일 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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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탈심게시봉사 댓글 7건 조회 1,626회 작성일 22-01-26 06:51본문
[ 법구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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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가르치심 사랑하고 공경하여
언제나 자비에 사는 비구는,
고요한 마음으로 진리를 관찰하여
욕심이 쉬어 언제나 안락해라.
부모의 애정으로 자라나면서 어린애는 그것을 모른다.
부처의 자비의 본원에 구원을 받으면서 중생은 그것을 모른다.
너무 크기 때문이다.

< 096 장자와 선의 차이점 >
앞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장자와 선 사이애는 유사점이 많다. 그렇지만 조금만 깊이 들어가면 차이점이 크게 드러난다. 우선 자연, 천성, 천리, 또는 천명을 어떻게 수용하느냐부터 장자와 선은 완전히 방향을 달리한다.
장자는 「 대종사 」편에서 이런 말을 한다. "자기가 태어난 까닭을 분별하지 않고 죽어야 하는 이유를 따지지 않는다. 삶과 죽음을 특별히 선택해서 쫒지 않는다. 자연의 변화에 따라서 무엇이 되든지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장자가 안심입명을 얻는 방법은 천명에 대한 무조건적인 순응이다. 자연이라는 간판을 걸고 죽음, 고독, 고통이 찾아온다고 하더라도 천명에 아무런 의심을 품지 않고 따라야 한다. 최고의 덕은 자연의 천성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장자는 천성 지키기의 중요성을 백년 묵은 나무의 비유로 설명한다. 백년 자란 나무를 잘라서 용도에 적합한 부분은 술그릇을 만들어 좋은 색을 칠해서 장식하고, 쓸모없는 부분은 땔감으로 버렸다고 할 때, 화려하게 꾸며진 나무나 버림받은 나무가 천성을 잃은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사람이 인의예지仁義禮智를 잘 지키든지 아니면 인륜도덕과 법을 어기면서 못되게 살든지, 양쪽이 천명을 어긴다면 그 점에서는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장자는 천성과의 조화를 이루어 편히 오래 살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한다. 이것이 양생술이다. 종교적인 도교가 장자의 이 양생술을 확대 해석해서 불로장생의 신선도로 발전시킨 것이다.그러나 선은 어떤가? 우선 고정적인 천명으로서의 자연은 인정하지 않는다. 우주와 삼라만물이 존재하는데 일정한 질서나 법칙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것이 본래적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멋대로 규정한 것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동서남북이 자기가 서 있는 자리를 중심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을 더 이상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존재한다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끊임없는 변화의 과정에 있다. 그 과정의 한 단계만을 꼬집어서 그것의 존재를 말하면, 그 순간 그것은 이미 다른 변화의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물론 그 변화의 속도가 느릴 경우, 우리가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변화하는 것은 확실하다.
선은 장자와 달리, 생사의 천명을 받아들이기는커녕, 생사 그 자체마저도 본래 있는 것이 아닌 인간의 분별심이 만들어 낸 개념으로 생각한다. 삶을 규정하지 않으면 죽음이 있을 수 없고, 더욱이 모든 존재 그 자체를 규정하지 않는 마당에 , 존재의 천명을 들먹일 필요가 없다. 선에서 보면 자연, 천명, 존재, 생사가 모두 인간이 만들어 낸 개념이고 말일 뿐이다. 존재, 만물, 생사를 실체적인 사실로 전제하고 말하는 장자와 그것들을 사람의 미망심이 만들어 낸 분별일 뿐이라고 말하는 선이 같을 수가 없다.
둘째, 중생구제라는 종교성에서 장자와 선은 크게 갈라진다. 노장사상은 두 방향으로 전수되었다. 철학적인 도교와 종교적인 도교이다. 철학적인 도교는 말 그대로 노장철학에 머물러 있고, 종교적인 도교는 불로장생의 신선술을 가르친다. 장자의 사상에서 있지도 않는 종교성을 찾으려고 하다 보니, 장자의 생각과는 거리가 먼 신선도로 발전해 나간 것이다. 「 장자 」 라는 책이 전하는 철학적인 도교에서 본다면, 중생구제의 종교적인 사상은 강하지 않다. 스승이 제자를 가르쳐 불조佛祖의 혜명慧命을 전하고 중생을 구하려는 선과는 크게 다르다.
천명과 종교성에서의 입장 차이는, 자족自足의 상태나 그것을 누리는 면에서도 차이점을 발견하게 한다. 장자는 천명 내에서의 순응으로 평화를 얻는 반면에, 선은 천명과 생사로부터 초탈하려 한다. 장자의 도인은 일단 고통의 현실로부터 도망치고자 하지만, 선의 도인은 중생을 구하기 위해서 고통의 세계로 뛰어들 수도 있다.
{ 약사여래 부처님 }
둥근 형태의 연화대좌蓮花臺座에 앉아 계신
안면암 약사여래 부처님의 뒷모습과 옆모습을 오늘에서야 제대로 뵙게 되었습니다.
연꽃잎 끝이 위로 향한 앙련仰蓮과 아래로 향한 복련覆蓮을 합친
단판單瓣연화가 더할 나위없이 아름답습니다.
다음에 안면암 참배할 때는 예전과는 다른 새로운 마음 자세로 경배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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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 오늘의 부처님 말씀 ]
큰 악에는 열다섯가지가 있는데
1. 죽이길 좋아함
2. 겁탈과 훔침
3. 음란과 질투함
4. 사기를 침
5. 아첨
6. 겉치레를 좋아함
7. 망언
8. 착함을 업신여김
9. 탐착하여 혼탁함
10. 방자함
11. 술주정
12. 어진 사람을 질투함
13. 도를 훼방함
14. 성인을 해코지함
15. 재앙을 생각지 않음 등이다
- 불설패경
<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 / 알프레드 디 수지
춤추라, 아무도 바라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노래하라, 아무도 듣지 않은 것처럼.
일하라, 돈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살라,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 생이 끝났을 때 > / 메리 올리버
죽음이 찾아올 때
가을의 배고픈 곰처럼
죽음이 찾아와 지갑에서 반짝이는 동전들을 꺼내
나를 사고, 그 지갑을 닫을 때
나는 호기심과 경이로움에 차서
그 문으로 들어가리라.
그곳은 어떤 곳일까. 그 어둠의 오두막은.
그리고 주위 모든 것을 형제자매처럼 바라보리라.
각각의 생명을 하나의 꽃처럼
들에 핀 야생화처럼 모두 같으면서 서로 다른.
생이 끝났을 때 나는 말하고 싶다.
내 생애 동안 나는 경이로움과 결혼한 신부였다고.
세상을 두 팔에 안은 신랑이었다고.
단지 이 세상을 방문한 것으로
생을 마치지는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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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탈심 합장
ㅇㄷ님의 댓글
ㅇㄷ 작성일
부모의 애정으로 자라나면서 어린애는 그것을 모른다.
부처의 자비의 본원에 구원을 받으면서 중생은 그것을 모른다.
명심 하겠습니다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ㅇㄷ님!~
젊은이의 지혜로운 댓글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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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탈심 합장
원만행님의 댓글
원만행 작성일약사여래 부처님자태가아름답습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감사합니다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생기발랄하신 큰보살, 원만행보살님!~
약사여래 부처님을 조성하신 분을 안면암 사무실 앞에서 잠시 뵌 적이 있었는데
남방불교의 부처님 형상이라고 하시더군요.
아름답고 단아하신 약사여래부처님이십니다.
소중한 댓글 감사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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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탈심 합장
원만행님의 댓글
원만행 작성일큰스님 안목 이시겠지요? 안면암 규모는 정말 위대합니다 . 거룩하신 부처님 진리로 영원불멸의 거룩한 정법의 세상 의 세상이 평화와 평등의 인류사회가될수있도록 신도님 들의 수행에 감사드립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감사합니다 약사여래불 .
ybr님의 댓글의 댓글
ybr 작성일
원만행보살님!~
물론 큰스님 안목이시며 , 은사스님께서 이룩하신 것을
깊고 큰 불심으로 수호정진하시는 설봉스님의 공덕 또한 대단하십니다.
장차
천년 이천년 삼천년을 이어
헤아리기 어려운 수많은 불자님들의 귀의처가 될
빛나는 도량으로 우뚝 솟으리라 확신하고 있습니다.
소중한 댓글 감사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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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탈심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