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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봉스님 { 안면암 일기 } : < 104 마음 소 달래는 길 > 2022년 2월 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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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탈심게시봉사 댓글 3건 조회 817회 작성일 22-02-03 0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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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구경 375 }

이른바 총명하고 지혜로운 비구는

감관을 단속해 족함을 알고

도덕을 지켜 생활이 바르며,

착한 친구를 구해 사귀고,


인간은 어떠한 때, 어떠한 곳에서나, 각각 그 때 그곳의 신에 의해서 생활한다.

그러나 모든 신은 언제나 어디서나 일신(一神)의 환상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그 일신이란, '자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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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4   마음 소 달래는 길  >


앞에서 살펴본 곽암 화상의 십우도十牛圖와 마찬가지로, 보명 화상의 목우도 도 소를 마음의 본래 부처에 비유해서 참선 공부의 길을 알기 쉽게 소개하려고 한다. 그런데 두 선사가 똑같이 소를 소재로 삼았으면서도, 수행과 깨달음의 관계를 보는 시각이 크게 다르다. 십우도는 임제종 간화선의 입장에서, 깨달음이라는 소득을 기대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 목우도는 조동종 지관타좌止觀打坐의 입장에서 수행 그 자체가 바로 부처의 동작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듯하다. 

    심우도는 잃어버린 소를 찾으려고 하는 데서부터 시작하고, 목우도는 바로 목전에 있는 소를 길들이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십우도가 깨달음의 이상을 보다 중히 여긴다면, 목우도는 바로 미혹 속에 있는 목전의 현실을 보다 중히 여기는 입장이다.

     목우도는 첫째, 소가 길들여지기 전의 상태를 나타내는 미목未牧, 둘째. 일 단계 길들이기의 초조初調, 셋째, 소가 목동의 인도를 받아들이는 수제受制, 넷째, 소가 본마음으로 돌아와서 목동을 따르는 회수廻首, 다섯째, 소가 완전히 객기를 버리고 목동에게 머리를 조아려 굴복하는 순복順伏, 여섯째, 이제는 소를 내버려두어도 아무런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무애無碍, 일곱째, 목동이 소를 완전히 믿고 소가 스스로 알아서 행하도록 일임하는 임운任運, 여덟째, 소와 목동이 서로 상대를 잊어버릴 정도가 된 무애, 아홉째, 소는 소대로 사람은 사람대로 각기 혼자서 자기 스스로를 반조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른 독조獨조照, 열째, 목동과 소가 다 같이 자취를 감추는 쌍민雙泯으로 이루어져 있다.

     목우도는 또한 소를 길들이는 과정의 진척도를 소의 털색으로 나타내려 한다. 처음에는 검은 소가 등장하고 차츰 머리로부터 검은 털이 벗겨진다. 검은 털이 꽁지로부터가 아니라 머리로부터 벗겨지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먼저 머리로 깨달음이 있어야 행동이 뒤따를 수 있음을 나타낸다.

     목우도의 대부분은 소를 달래고 길들이는 것으로 되어 있다. 목동은 처음에 한 손에는 회초리를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소의 먹이를 들고 있다. 다음 단계에서 소는 반항하고 목동은 회초리를 내려치는 시늉을 한다. 이어서 소가 목동에 손응해서 마침내는 고삐를 잡지 않고도 소가 스스로 알아서 행동하는 경지에 이른다.

     그런데 소를 찾은 '심우'와 소를 길들이고 달래는 '목우' 사이에는 수행과 깨달음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큰 시각 차이를 암시한다. 심우도에서도 목우의 순서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심우도는 기본적으로 잃어버린 소 또는 무명에 의해 묻혀 버린 본래 부처로서의 참마음을 찾는 과정을 그리려고 한다. 반면에 목우도는 소를 잃어버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소는 바로 우리 눈앞에 있다고 생각한다. 깨달음은 눈앞의 미혹 무명을 달래고 길들이는 데서 회복되는 것이지, 무명을 걷어 버리고 도망쳤던 본래 부처로서의 소를 찾아오는 식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가 앞 장에서 누차 살펴 본 바 있는 화엄사상의 '성기性起'와 천태 사상의 '성구性具'는 기본적으로 부처와 중생, 열반과 생사, 보리와 번뇌, 깨달음과 미혹을 둘로 보지 않는다. 부처가 중생심에 담겨 있고, 중생이 그대로 부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우도는 성기를 설명하는 것처럼 보이고, 목우자는 성구를 풀이하는 것처럼 보인다. 심우도는 이상을 중심으로 그것을 찾고, 목우도는 현실을 중심으로 그것을 전환한다.

     심우도와 목우도는 맨 마지막 그림에서도 대조를 이룬다. 심우도에서는 목동 즉 수행자가 깨달음을 얻은 후에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서 시장으로 나온다. 반면에 목우도에서는 둥근 원을 그린다. 심우도는 이상을 중시하기 때문에 현실로 나오는 그림을 그릴 필요가 있지만, 목우도는 처음부터 현실을 중시해 새삼스럽게 현실로 나오고 들어가고 할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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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 오늘의 부처님 말씀 }

"나보다 나은 사람을 보고

질투하지 말며,

내가 남보다 낫다고

교만하지 마라."

                              < 우바새계경 >


<  서해  >  /  이성복


아직 서해엔 가보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당신이 거기 계실지 모르겠기에


그곳 바다인들 여느 바다와 다를까요

검은 개펄에 작은 게들이 구멍 속을 들락거리고

언제나 바다는 멀리서 진펄에 몸을 뒤척이겠지요


당신이 계실 자리를 위해

가보지 않은 곳을 남겨두어야 할까 봅니다

내 다 가보면 당신 계실 곳이 남지 않을 것이기에


내 가보지 않은 한쪽 바다는

늘 마음 속에서나 파도치고 있습니다


나무대원본존 지장보살마하살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

원만행님의 댓글

원만행 작성일

숨과빛이하나가되는물질    마음에서만든물질이 빛을만든다  .  명상  지속적고찰  희열  집중  의문체크  관찰    확신  단일  삼매희열  선정 행복느낌    거친희열과 행복 이들떠있는것을  평온한  진중으로  평온하며분명하게  다놓은상태  .일체동관법에  아공 법공  혜공 3공을말한다  .견성! 자기성품을본다 .  이치를  모르는  사람이  이치를알때까지  경전공부는 기본적으로하여  수행실천  행동하여  모르는사람이 이치를알때까지 경전공부를 토대로 닦아간다  .  설법은 땟목으로본다    육안 법안 혜안 법안으로  소위 도덕  예술이  아름 다운사유하여야  불안의능력  대자연이  능력으로    맞서있는  나?  는 뭔가!    종교적 측관능력  .  마하부사의  하다  .  언어 문자로는  측관 할수  없다 .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감사합니다 신중기도잘 성취하세요  .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생기발랄하신 큰보살, 원만행보살님!~

이치를  모르는  사람이  이치를알때까지  경전공부는 기본적으로하여  수행실천  행동하여  모르는사람이 이치를알때까지 경전공부를 토대로 닦아간다  .  설법은 땟목으로본다 


불교에서는 강江을 건너면 뗏목을 버려야 한다고 가르치십니다.

저의 좁은 소견으로는 집착을 여의라는 말로 여겨지네요.

정초 신중 기도 잘들 하시어
임인년은 작년보다 원만한 해가 되기를 기원드립니다.

소중한 댓글 감사 감사드립니다.

  나무대원본존 지장보살마하살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