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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양자: 병실에 누운 부처신랑 부러워 하다 나도 병원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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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게시대행 댓글 9건 조회 88,782회 작성일 19-12-03 0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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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씨가 된다더니, 정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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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창한 천고마비 가을에, 전립선 적출수술을 한 (우연히 건강 진단을 받다가 발견된, 조그만 악성이 아닌, 귀여운 암 덩어리 ..)부처 신랑을 병원에 방문했다. 같은 나이의 칫과 의사, 독일인과 나란히 누어 있다가 무척 반가워했다. 나는 농담으로, '아이구, 부러워라! 나도 한 일주일만 병원에 누어서, 이 5성 호텔의 서비스를 받으며 한번만 푹 쉬고 싶다'라고 했다. 독일의 병원 시설은 대개 최신식이고, 보험만 들어있으면 (거지에서 대기업 회장까지 소득에 비례한 보험 제도라서, 돈 없어서 치료 못 받고 죽는 이가 없을 정도로 잘 되어있다.)다 공짜이고, 간병인도 필요 없으며, 병실은 공기청정기까지 창문에 달려있어 창문을 안 열고도 공기와 실내 온도가 늘 쾌적하다. 병실에 놓여있는 마시는 물은 물론 공짜이고, 입원 시에는 잠옷과 나이트 가운, 실내화, 수건, 비누는 환자 편인 우리가 가지고 가야한다. ( 이 아이디어는 예전에는 없었고, 단순하고 우습지만, 실용적이고 절약이 많이 된다.)음식도 환자가 메뉼 골라서 신청하고, 의사 간호사들은 컴퓨터를 회진 때 밀고 다니며 손으로 쓰는 서류가 없이 하이테크로 의술을 다 처리하며, 가장 아름답고 돈으로 살 수 없는, 웃음과 친절이 가득하다. 이번에 다시 깨달은 점들은 의료 봉사도 절대로 돈만 벌기 위한 아르바이트가 아니고 천직으로 알고 봉사하며 즐겨서 해야 하는, 아주 중요한 직업임을 알게 해 주었다.

내 경우를 생각해보면 54년 전에, 독일어도 전혀 못하며 독일에 간호사로 취업하여, 무조건 눈치를 보며 일했던 그때와는 정말 많이 변했고, 이젠 정말 천지 차이다. 예전의 간호사 소양자가 너무나 모르고 무식했기에 부끄러워서 전직 간호사라고, 말도 못하는데, 우리 부처 신랑은 어디 서나, 아무한테나 내가 '친절하고, 상냥스럽게 웃던, 한국 간호사' 였다고 , 자랑을 마구 한다. 착했었는지는 잘 모르겠고, 독일 말을 못하고 못 알아들으니, 웃을 수밖에 없었고, 사실 어떻게 내가 그 삶을 어떻게 살며 이겨냈는지, 한편으론 아찔하기도 하고, 감사하기만 하다.

다시 지금으로 다시 돌아 와, 부처 신랑이 수술하고 (에피소드 하나: 특진한 셰프가 집도를 하기로 했는데, 어느 사무직원이 잘 못해서, 아직 귀가 파란 (?)젊은 의사가 수술을 했으니 황당했지만, 다행히 결과는 아주 좋았다! ) 입원해 있고, 사무실, 집안일, 병문안 등등을 하며 열심히 살고 있는데, 설상가상으로 스팀 까지 고장 나 온 집안이 냉장고가 되었고, 또 전기가 이틀간이나 4시간 씩 정전이 되어, 전기 제품, 컴퓨터 등이 엉망이 되었다. 그래도 경과가 좋아 일주일 만에 퇴원한 부처 신랑은 집에 오자마자 갑자기 왼쪽 허벅지의 임파선이 부어서 다시 호스를 달고 재입원 했다. 나는 그동안 배운, 천천히, 깊게 숨쉬기를 실천해 보았으나 수행 부족이라 시도할 때마다 장애물이 나타나고, 산만해지며 숨만 더 가파지고, 입맛까지 떨어지고,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일에 능률도 안 오르고, 아무튼 엉망진창 이었다. 한마디로 생지옥이었다.

양자의 대형사고; 사고 난 그날도, “나중에 우리 부부가 거동이 불편해도 이 층계 있는 집에서 계속 살 수 있을까? 예전에 한국에서 고려장을 했을 때 서로 어떤 기분들이었을까?“ 하며, 오지도 않은 엉뚱한 생각과 당장 하는 일에 총 집중을 못하며, 현관에 있는 복도의 커튼을 달고 있는데, 갑자기 순식간에 내 몸이 부-웅 뜨며 딱딱한 시멘트로 만든 12 계단을 쏜살 같이 곤두박질하고 있었다. 발을 잘 못 디딘 게 화근이었다. 떨어지면서도 순간적으로 그냥 떨어지면 머리가 크게 다칠 것 같아 (만약에 뇌출혈 이었다면, 나는 즉시 그 자리에서 죽었거나 불구자가 되어 이 글도 못 썼겠지...? )무의식적으로 왼손으로 버티며 브레이크를 잡았다. (상식적으 , 덜 다칠려면 엉덩이로 미끄러져야 하는데, 그 때의 내 엉덩이는 하늘을 오르고 있었으니 !!) 순간, 오른쪽 뒤통수가 시멘트 땅에 쿵 하고 부딪히고, 순식간에 팔목에선 새빨간 피가 나오며 뚱뚱하게 부어오르고 있었다. 말할 수 없는 심한 통증과 함께. 한참 그 자리에 혼자 누워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올라 가 응급차를 불렀더니, 그래도 운이 좋아 금방 왔다. 이 도시에서 제일 크고, 신식인, 사고 난 환자 치료만 전문으로 하는 병원에 옮겨졌다. 토요일 오후인데도 갖은 다친 환자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담당 의사가 '테타누스 주사를 맞았나요?' 라고, 묻는데도 정신이 혼미하고 팔목이 너무 아파서 입이 안 열렸다. 안 맞았다고 했더니, 테타누스 (Tetanus)주사를 맞아 우선 파상풍을 예방했다. 아픔이 너무 강해지니 아픔이 거의 느껴지지도 않았고, 그냥 피곤하고, 으시시 춥고 잠만 자고 싶었다.

조금 있다가 그 의사는 내 보호자를 찾았다. “보호자도 지금 환자로 다른 병원에 입원하고 있아요.” 라고 하니, '손님, 농담 그만 하고, 좀 협조해 주어요' 하며, 나를 이상하게 보는 것 같았다. 그 와중에, 그들이 내미는 중요한 서류에 (수술에 동의하며, 만약에 실수가 있어서 생명을 잃더라도, 본인 책임이라는 .. 등등)혼자서 사인을 다 했다. 몇 장 찍은 X-RAY사진을 보고, 의사들이 진단을 내렸다. '많이 붓고 뼈가 어긋나 있으니, 오늘은 당장 손을 잡아 메고 , 부기를 빼고, 뼈를 맞추어 놓고, 수술은 내일 할 겁니다' 라고 했다. 나는 다시 어느 차가운 방으로 옮겨졌다. 예전에 동독으로부터 와서 간호사가 되었다는 어느 남자 간호사가 '이 방법은 아주 오래 된 것이고 효과가 좋으니, 아프고 힘들지만 잘 참아야 해요' 라고, 하더니, 중세기 때 죄인들에게 체벌 했던, 박물관에서나 보던, 그런 비슷한 기계를 보여주었다. 손가락마다 대나무로 얽은 덮개를 끼우고, 콜크를 그 안에 넣고 둥그런 걸개를 만들어 기계에 달린 구멍들에 손가락들을 고정 시키고, 팔꿈치 밑에는 대장간에서 저울 밑에 다는 동그란 납 쇳덩어리 무게를 걸어서, 마취도 없이 서로 잡아당기게 했다. 젊었을 때, 나도 딸을 둘이나 분만 했으나, 그 때의 진통보다 훨씬 더 심한 것 같았다. ( 웃음) 거의 실신이 되다시피 그렇게 약 30분을 참고 기다리니, 의사들이 또 왔다. 그들은 X- RAY를 보며 비틀어 진 내 손목뼈를 반듯이 맞춘다고 했다.


나는 이제 이렇게 죽는구나! 생각하며, 돌아가신 친정 엄마께서 물려주신 분홍 속 면내의를 (팔이 부어서 가위로 여기 저기 다 잘라낸....)다시 한번 쳐다보며, 아기같이 가신 엄마를 속으로 불러보며, 뜨거운 닭 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 그러자 그 친절한 남자 간호사가, 마치 깡패들이 뭘 훔칠 때 덮어씌우는 (내 탐정 환타지 .. 웃음)클로로 포름 (Chloroform; 독일에선 - 웃음을 주는 가스 -라고, 한다)마취 마스크를 씌우며 “환자님, 깊게 숨을 들여마시tu요. 그래야 안 아파요. 어서 계속해서 더 깊게 .. “하며, 통 사정(?)을 하고 있었다. 하라는 대로 했더니 정말 하나도 안 아팠다. 그 사이에 의사 팀에서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왼쪽으로.. 하더니, 오케이 다 잘 되었어요. 간호사, 기브스 해 드리고, 집에 다시 갔다가 내일 8시에 수술실로 오라고 해요.“ 했다. 나에겐, 오늘 밤 12시부턴 먹지도 마시지도 말라고 했다. 이렇게 해서 남색 멋있는 기브스를 하고 (병원에서도 가능한 한 색 갈 있는 물건들을 쓸려고 하지만, 공해나 가격이 문제란다!) 응급차를 타고, 추운 집에 와서, 혼자 자고, 다음날 다시 응급차로 가서, 혼자서 수술실로 걸어 들어갔다. 하루 전에 미리 피 검사, 심전도, X-RAY를 다 체크하고 , 마취 의사와도 국소 마취로 결정이 되어 있기에 다 수월했다.


드디어 수술대에 오르다; 입었던 옷을 다 벗고 병원에서 주는 가운과 팬티를 입고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캐리어에 누워, (고맙게도 미리 따스하게 덥힌 이불을 덮고 ) 마취실로 들어갔다. 이번에도 나이가 지긋한 셰프교수께서 젊은 의사들과 학생들에게 모니터를 보여주며, 낮으면서도 친절한 음성으로, 마취에 대한 갖은 설명을 하시는데, 꼭 내가 잘 아는 우리 한국 스님의 염불처럼 들렸다. (웃음) 제자들에게 하나라도 더 가르쳐 주고, 실습을 시키려는 스승의 모습과 환자를 빨리 정상으로 돌려주려는 숭고한 정신들이, 흡사 우리 교조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하시던 식 같았다. 그 다음에는 요란스럽게 문신을 하고 코에 코걸이를 많이 한 체격이 남자같이 큰 어느 간호사가, 아주 조심스럽고 부드럽게 국소 마취 방법을 자세히 설명 해 주었다; 겨드랑이에 몇 가지 주사를 놓아 팔의 신경을 완전히 마비시키며 그때부턴 전혀 아프지 않다며, 그래도 내가 만약에 불안하고 수술하는 소리를 듣기 힘들면, 수면제를 주사 해 줄 수 있다며, 또 하나의 굵은 나비같이 생긴 주사 바늘을 오른 손등 위에 꼽고, 링거와 다른 약을 투입했다. 겨드랑이에 주사를 놓을 때마다(아팠다!) 손끝이 전기가 통하듯 찌릿찌릿 했다. 살짝 만지기만 해도 펄쩍 펄쩍 뛰던 아팠던 내 팔에 대고, 마취 팀은 킥 복싱을 하고, 꼬집고, 두드리고 야단 들 이었다. 그런데도 거짓말같이 하나도 안 아프고 팔을 움직일 수도 없었고, 꼭 남의 물건 같이 무겁고 차갑게 느껴졌다. 그 다음에 양자가 수술실로 밀려들어갔다.

수술실은 마치 대형 공장 같았다: 아주 큰 홀인데 수술대가 약 20개 정도였고, 중간 중간 마다 커튼을 치고, 별별 소음을 다 내며 (망치 소리, 새소리, 톱질 소리...등등 ) 조용한 음악과 함께 수술을 하고 있었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자 '당신의 이름은? 생년월일은? 어디를 수술하죠?' 하며, 몇 사람이 몇 번이나 확인을 했다. “성한 쪽의 다리를 수술 방 팀의 착오로 잘렸다” 는, 수술 방을 비방하는 '블랙 유머' 는 이젠 옛말이 되었다. 다시 수술방 셰프의 제자들에게 하는 설명과, 질문 대답이 있은 후, 수술이 시작되었다. 나는 국소 마취 이기에 그들의 대화가 다 들리고, 인공 뼈(플라스틱)를 자르는 요란한 전기 톱 질 하는 소리, 간호사가 집도의에게 스크랩 하는 소리 등등이 다 들리고, 약간 우습기도 하고, 징그럽기도 했다. 가끔 하는 농담까지 들리고, 분위기가 부드러운데도 나는 약간 피곤하고 발이 시렸다. 마취 의사가 때 맞게 진정제를 놓아 주어, 금방 편하게 잠이 들었다. 잘 자고 깨어 보니 어느덧 쇼크실에 와 있는 나를 발견했다. 집도한 의사가 와서 “수술이 다 잘 되었어요. 3주 이상 절대 무리를 하지 마시고, 물병을 들어도 안돼요. 그리고 물리 치료를 잘 받아 잘 재활해야합니다” 하며, 진통제 처방을 써 주었다. 한 간호사가 “마취가 풀릴 때까지 팔뚝이 말을 잘 안 듣고, 잘 못하면 뺨을 때릴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 고 했다. 노발긴 (Novalgin)이라는 진통제를 4시간마다 두알 씩 먹고, 독일의 최고 금융 도시, 푸랑크 후르트의 스카이 라인이 다 보이는, BGU 병원의 5층, 509호실로 옮겨졌다. 그 방에는 이미 골반 수술을 한 어느 여인이, 간호사의 보호 아래 수술 3일 만에, 벌써 걷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모든 게 무상이다. 병실, 간호 방법, 기구들이 많이 달라졌다. 체온을 재는 것만해도 예전처럼 체온계를 항문이나 겨드랑이나 입에 물리지 않고, 귀에 잠깐 데면 그만 이다. 매번 마다 다른 포장을 쓴다. 이 얼마나 간단하고 위생적인가. 침대도 여러 가지 기능이 리모컨만 누르면 다 해결이 되었고, 컴퓨터, TV, 이어폰도 기본이다. 링거도 끝나면 자동으로 스톱이 되어, 예전같이 끝나고 바로 뽑지 않으면, 공기가 혈관에 들어가 죽을 일도 없었다. ..( 웃음)


인간의 몸과 정신은 참 고마운 존재다; 하루만 많이 아프고 그 다음부턴 거짓말 같이 덜 아프고 계속 좋아졌다. 물론 많이 자고 4시간마다 진통제를 계속 열심히 먹었다. 3일 만에 기브스를 떼고, 마사지, 물리 치료를 받고, 즐겁게 퇴원 했다. 이젠 12일 후에 7 개의 실밥을 빼고, 손을 계속 움직이고, 6주 동안 물리 치료를 받으면 된다. 생각해 보면, 정말 불행 중 다행이었다. 머리는 아직까지 성하고, 왼쪽 팔목이라서 오른 손으로 밥도 혼자 해 먹을 수 있고, 서툴지만, 일상생활에 여러 가지로 편리하다. (물론 한 손으로 해야 하니, 느리고, 실수가 많다.) 그래도 아주 안 다친 것 보단 못하다. (웃음) 그리고 그렇게 간절한 소원이었던, 병원에서 몇 밤을 푹 쉬었으니, 이젠 한이 없다. 우리 부처 신랑은 항상 농담으로 “변호사와 의사에게는 자주 안 가는 게 좋다” 고 하더니, 정말 맞았다. 석지명 큰 스님께서도 늘 말씀하셨다. “말은 씨가 되니 늘 조심하라” 고... 다시 한 번 함부로 한 말, 참회하고, 이젠 병원에 가서 쉬고 싶다고 절대 안 할 테다. 그래도 금년의 액땜으로, 우리 부부가 한꺼번에 수술에 성공했고, 지금 잘 쾌유 되고 있으니, 행복하고 감사하다. 지금도 오른쪽 한 손으로 이 글을 쓰면서, 염불처럼 외우고 있다. “양자야! 제발 말조심 하자. 사고 치지 말자. 말이 정말 씨가 되니..…” 하하하


2019년 12월 3일, 독일의 소양자

 

댓글목록

ybr님의 댓글

ybr 작성일

소양자 대보살님!~

그야말로 액땜 참 잘하셨습니다.
왼쪽이었으니 얼마나 다행이신가요?
오른쪽이었다면
이렇게 재밌고 수려한 글을
우리들이 감상할 기회를 한동안 박탈당할  뻔 했습니다. ^^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은 저도 사실이라고 생각하지요.

☆불교에서는 

<일체유심조>를 가르치고 있는데
과학적으로도 대단히 합리적인 사고입니다.

모든 행과 불행은 자기 스스로 자초하고 있다니
앞으로는 저도 말조심 생각조심하면서 열심히 살아 가겠습니다.

<엎어진 김에 쉬어가라>는 속담처럼

두 분 빨리 회복 잘 하시고
안면암 독자님들에게
예전처럼  멋있고 보람있고 행복한  생활 모습 보여 주시길
기원드립니다.

고통 중에서도 유익하고 실감나는  글 쓰시느라
무척 고생하셨습니다.

감사
감사드립니다.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

ybr님의 댓글

ybr 작성일

친정엄마께서 물려 주신
속내의를 입으셨으니
더 빠른 쾌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보살님의 고우신 얼굴과
예쁜 장미꽃이 아주 잘 어울리십니다.

저도
엄마의 속내의 등을 몇 년 동안 내리 잘 입었었지요. ^

나무대자대비구고구난관세음보살마하살           
       
                                                                해탈심  합장

소양자님의 댓글

소양자 작성일

감사합니다. 둘 다 매일 좋아지고 있어요ㅁ ㅁ하하하

ybr님의 댓글의 댓글

ybr 작성일

부처신랑님과
보살님께서는

불보살님과
하나님의
가호와 가피로
매일매일
더욱더 좋아지실 것입니다.


제가 멀리서 일하느라
부처신랑님을  뵙지 못해  매우 섭섭했습니다.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

一語成讖님의 댓글

一語成讖 작성일

어떤 고통도 유머러스하게 받아들이시는 소양자님의 세계는 연화장 세계!

새 책은 언제 출판되나요?

ybr님의 댓글의 댓글

ybr 작성일

일어성참님의 일성을 들으니
제가 쓸데없이 말이  많은 것 같아  부끄럽습니다.

연화장 세계!
그 세상이 몹시 궁금합니다.

관심과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        해탈심 합장

소양자님의 댓글

소양자 작성일

과만한 칭찬들 감사합니다. 책은 곧 나온다고 합니다. 불사에 도움이 되게 금년 안으로 나왔으면 합니다. 매일같이 좋아지는 수술자리를 보며 감사와 경의로움으로 삽니다. 오늘 독일의 아주 큰 신문에  K- Pap 멤버들이 몆주 안에 3명이나 자살을 했다고 나왔네요. 정말이라면, 살아있다는  행복을 못 알려 준 우리들의 책임 입니다. 이유를 알아서 예방을 해야될텐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될지 저부터  연구 해 보려고 합니다. 바쁘신 12월 부디 잘 보내시고 제발 저처럼 덜렁거리다가 (?)다치지들 마세요. 하하하 독일의 소양자드림

ybr님의 댓글

ybr 작성일

3명이나 자살을 했다니 ㅡ
본인들의 고통이  얼마나 컸으면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했겠습니다만 너무나  슬픈 일입니다.

한창 자라나는
어린애들에게 악영향를 크게 미칠 텐데. . .

언제나 늘
보살도를 정진 수행 중이시니
탑불사에 많은 도움이 되시리라 믿습니다.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

소양자님의 댓글

소양자 작성일

해탈심대보살님, 맞아요. 요즈음은 정치가들까지 자살로 마감하는 분들이 많아 안타까워요. 모두 주위에 있는 우리들의 불찰이고 무능입니다. 불교를 알려주지 못하는 신도들의 불찰이라고 봅니다. 이곳은 크리스마스 준비로 아주 소란스럽고 행사가 많아요. 저는 이젠 실밥을 빼고 재활운동을 열심히 하지만 금년안에는 자동치 운전은 못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공해 안 한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걸어다닐께요. 좋은 년말이시길 빕니다. 독일의 소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