ȸ

소양자: 날씬한 몸매의 서커스 곡예사 친구 "토리"

페이지 정보

작성자 게시대행 댓글 7건 조회 41,019회 작성일 20-05-05 03:09

본문

073997b88f26f0d57cb0011669add6ec_1588615444_6071.jpg
073997b88f26f0d57cb0011669add6ec_1588615444_6952.jpg
073997b88f26f0d57cb0011669add6ec_1588615444_7764.jpg
073997b88f26f0d57cb0011669add6ec_1588615444_8572.jpg
 

“일체유심조”를 절감케 해 준 청설모 '토리' 


독일의 우리 집 발코니에는 오래 전부터 헤이즐넛을 먹으러 오는 청설모 (영어론 Squirrel, 독일어론 Eichhoernchen= 아이시호른쉔) 한 마리가 있다. 잘은 모르지만 아마도 그 녀석은 150년 된 우리 집의 마로니에 위에 집을 짓고 사는 듯하다. 내 생각으론 그 녀석은 약간 못 생겼고 미남은 아니지만 날씬한 몸매에 서커스의 곡예사 같이 날카로운 발톱으로 나무 가지 에서 나무 가지로 나는 듯 재빨리 타고 다니며 재롱을 부린다. 


처음에는 우린 그놈을 다람쥐라고 했다. 그리고 이름도 '토리'라고 지어주었다. 발코니에서 겨울에 새들과 함께 먹이를 먹다가 봄이 되면 혼자서 견과류를 먹곤 한다. 청설모와 다람쥐는 여름과 가을에 견과류를 열심히 땅에 묻어 놓지만 10개 중 3개도 못 찾아 먹는 단다. 특히 청설모는 봄이 되면 씨앗들이 발아가 되니 먹을 게 없어서 가끔 애벌레나 새 둥지의 알들을 훔쳐 먹어서 미움을 받고 있으나, 다 살기 위한 자연현상인 것 같다.

 

작년 어느 추운 겨울날에 부엌에서 창문을 바라보니 토리 그 녀석이 빚쟁이처럼 나를 말끔히 쳐다보고 있었다. 추워서 일까? 아님 배가 고파서 일까? 하며 견과류를 들고 나가니 도망을 갔다. 그래서 그냥 먹이 집에 넣고 잊었었다. 그런데 어느 사이에 먹이를 다 먹었고 그 다음날에도 와서 먹고 가곤 했다. 


1980년도에는 한국에서 어느 누가 청설모 고기가 만성 신경통과 피부병에 좋다고 해서 많은 살생을 했다고 들었다. 그 청설모 고기에선 호두와 잣 냄새가 나고 맛이 있었다고 하니, 참 가관들이다. 또 어느 누가 청설모가 자기보다 몸집이 작고 겨울잠을 자는 다람쥐를 잡아먹어서 멸종을 시킨다고 했다지만 오해란다. 그건 청설모와 다람쥐가 자기 사는 장소를 지키기 위해 싸우다가 사고가 났던지 아님, 잣과 호두를 많이 훔쳐 먹어서 꾸며낸 오해와 누명인 것 같다. 또 청설모의 꼬리는 붓을 만드는데 쓰기도 한다고 한다. 서양에는 다람쥐보다 청설모가 더 많고 많이 사랑 받고 있다.

 

청설모(청서라고도 한다) 의 학명은 Sciurus Vulgaris 이고 다람쥐 과에 속하며 다람쥐는 땅속에서 살지만 청설모는 나무 위에서 살고 겨울잠을 자지 않는다. 이곳에서는 다람쥐보다 거의 다 청설모이고 산이나 도시에서 인연 따라 산다. 둘 다 과일 열매를 잘 먹고, 견과류, 즉 소나무 씨, 잣과 밤을 제일 좋아한다고. 견과류에 대한 재미있는 단어 -이야기가 있다. 견과류를 영어로 너트(Nut)라고 하는데 영어에선 너트는 미친 사람이라는 뜻도 같이 있다. 이젠 우리 집 식구인 토리는 어디서 우릴 어떻게 관찰하는지 먹을 것만 자기 집에 넣어주면 귀신같이 나타나서 먹고 가곤 한다. 특히 우리가 아침을 먹는 커피 타임, 7시에 어쩌다 먹이를 깜빡하고 안 넣어두면 감쪽같이 나타나서 우릴 원망하는 눈빛으로 쳐다보곤 한다. 이젠 완전 습관이 되어 우리가 집에 없을 때는 누굴 시켜서 라도 대신 꼭 토리의 밥을 주고 있다. 그런데 일주일 전에 대형 사고가 났다.


무식한 내가 토리의 밥을 주는 먹이집 앞에 선물 받은 장미 화분을 아무 생각 없이 놓은 게 화근 이었다. 토리가 오지 않았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삼 일이 지나도 오질 않았다. 나는 그 놈이 혹시 고양이에게 잡혀 먹었을까? 아님 나무에서 잘 못해서 떨어져 죽었을까? 하며 갖은 불길한 생각을 하며 삼일 간 계속 집 주위를 돌며 그놈을 찾았다. 삼 일이 지난 후 이젠 가망이 없다고 생각하고 맘속으로 나마 그놈의 장례를 치러주고 극락왕생을 빌며 어린 아이처럼 크게 울었다. 


부인을 가엽게 생각한 부처 신랑이 발코니에 나가더니 먹이집 근처를 한번 살펴 본 후 “여보, 이렇게 먹이 집을 화분으로 어둡게 가려 놓았으니 덫인 줄 알고 토리가 안 왔나 봐요” 하더니, 장미 화분을 옆으로 조금 비켜 놓았다. 나는 속으로 “별 엉뚱한 이론이 다 있네. 이젠 동물 심리학까지 연구하시나?? 하며, 설마! 하고 벌써 잊고 있었다. 그런데 기적 이 일어났다. 다음날 7시에 토리가 와서 거짓말처럼 헤이즐넛을 열심히 먹고 있었다. 장미 화분이 토리의 먹이 집을 한쪽을 어둡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구 맙소사!!

 

이번 사고로 인해 나는 맘과 생각으로 지옥과 극락을 몇 번이나 갔다 왔다. 617년에 태어나신 원효대사의 '일체유심조' 일화가 생각났다. 즉 같은 해골바가지의 물이 밤에는 맛이 있었고 다음날에는 구토가 났던 '일체유심조' 체험으로 당나라의 유학을 그만 두고 돌아 와 해탈 열반 하셨던 이야기 말이다. 


원효 대사는 육조 스님 보다 20년 더 일찍 태어나셨다. 중국에서 화엄경을 가져다 주석까지 달았고, 평생을 자유 해탈 수행하셨던 원효 대사는 “모든 것은 다 마음에서 일어나고 사라질 뿐 실체가 없다” 라는 인연과 연기와 공, 자성을 깨닫게 하셨다. 그 외에도 우리 시대에 간절하게 필요한 화쟁론(평화와 공동선을 위한 6 화: 신, 구, 의, 계, 견, 이) 과 대승기신론 (불. 법. 승 . 육바라밀 수행, 실천) 등등 무수한 저서를 남기시고, 요석 공주와 이두 문자를 만든 설총도 남기셨다.

 

원효대사는 시끄러운 저자 거리에서 노래와 춤으로 중생을 교화 시켰으며 탐진치 없이 자유롭게 살다 가셨다. 그 시대에는 한국은 여러모로 자랑해도 좋을 만큼 중국보다 앞서갔었다; 중국은 인도에서 화엄경을 얻어다가 태종의 며느리인 (?) 측천무후가 중국어로 번역하게 했다. 그런데 그 여황제가 한국에 이미 여성으로써의 선덕 여왕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 힌트를 얻어서 여성인 자기도(중국에서 상상도 못했던...!) 6년 간 절에 가서 수행 하고 공부도 해서 드디어 여왕이 되었다. 생각해 보면 오늘날 한국 불교, 특히 선불교에선 중국의 선사들도 수승하지만, 우리 원효대사는 한국 불교계의 최고 스님이시고 자랑스러운 분임을 다시 기억하고, 덕분에 감사드린다. 더욱이 오늘 '일체유심조'를 새삼 깨닫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토리야, 미안해, 고마워, 감사해, 사랑해


2020년 5월 5일, 독일의 소양자

댓글목록

소양자님의 댓글

소양자 작성일

안녕하세요?? 덕분에 독일도 코로나가 점점 사그러지고 있습니다. 다른 유럽나라들도 점점 좋아지고 있습니다. 오늘이 어린이 날이네요. 사실은 매일이 우리날이지요. 5월의 신록속에서 기많이 받으세요. 우리 토리는 여전히 예쁘고 잘있습니다. 돌아오는 초파일행사에는 코로나라는 단어를 잊을정도로 건강하고 행복한 날이 될 줄 믿습니다. 독일의 소양자드림

ybr님의 댓글

ybr 작성일

소양자 대보살님!~

유려한 문장에 감탄하며 댓글쓰려다 이제야 올립니다.
눈에 알러지가 심해서 안과 약 5가지를 타왔더니 조금씩 나아지고 있네요.
청설모가 헤이즐럿 먹는 모습이 흡사 다람쥐와 비슷하니
토리란 이름이 잘 어울립니다.

두 분께서 인류애뿐만 아니라 지구상의 생명체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가늠할 수 있겠습니다.

저도 이런 자유롭고 사랑스런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정말이지요.

제가 여고생 때 가장 일찍 배우게 된
☆일체유심조라는 불교용어.

우리 사바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단어를 상기시켜 주셔
몹시 감사드립니다.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

소양자님의 댓글

소양자 작성일

해탈심대보살님, 눈이 빨리 좋아지시길 빕니다. 꽃비가 눈처럼  마구 내리는 지금이니 얼마나 불편하시겠어요?? 쾌차하셔서 고생이 코로나와 함께 끝나시길 빕니다. 독일도 담주부터 거의 정상적인 생활로 들어갑니다. 약간 답답했지만 한편으로는 반성하고 참회하는 기회였습니다. 일체유심조.....독일의 소양자 합장

오선주님의 댓글

오선주 작성일

동물도 살아남으려는 본능이 있음을 깨닫게 하는 토리 이야기는 재밌고
유명한 원효대사 이야기는 다시금 인간 본성을 생각케 합니다.

보살님은 문장가에다 철학자 같은 사고력을 지니셨습니다.
좋은 글 많이 기대하겠습니다.

소양자님의 댓글

소양자 작성일

오선주 대보살님, 감사합니다. 이젠 토리 뿐만 아니고 온  가족들이  와서 시시때때로 밥먹고 갑니다. 하변호사가 돈을 더 많이 벌어야하겟습니다. ㅎ ㅎ 독일도 많이 풀려서 이젠 미장원에도 갈 수 있고  백화점에도 갈 수 있습니다. 아직 학교와 음식점은 다 열리지 않았으나 많이 열리고 있습니다. 전염병이 생활패턴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고 , 또 많은 생각을 하게 하였고, 지금 살아있음을 고맙게 생각하게 합니다. 건강하십시오. 꽃비내리는 독일에서 안부드립니다. 소양자합장

청정심님의 댓글

청정심 작성일

한국에서는 청설모가 외래종이라서 천적이 적어 눈총을 받고 있습니다.  외국에서는 토종이 될 수도 있겠네요.
토리와 조용한 교류를 즐기시는 보살님에세서 평화로움을 봅니다.
환란이 빨리 물러가서 많은 분들과 건강한 교류가 계속되시길 바랍니다.

소양자님의 댓글

소양자 작성일

청정심 총무님, 반가워요. 토리뿐만 아니고 온가족이 와서 구걸을 해서 부처신랑이 돈을 더 벌어야 한답니다. (웃음) 부처님오신날 준비하시느라고 수고가 많으십니다. 독일은 이번주에는 춥고 우박이 내리고 있습니다. 곧 따스한 여름이 오겠지요? 독일에서 소양자가 안부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