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주: 엄마! 죄송해요 !! 용서해 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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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선주게시대행 댓글 9건 조회 58,629회 작성일 20-06-12 22:09본문
다시 한번 그 얼굴이
"다시 한번 그 얼굴이 보고싶구나 ~ ~"
언제 어떤 계기로 내 의식 속에 자라잡게 되었는지 기억은 없어도
나는 가끔, 어떤 때는 종일토록 이 노래를 입에 올린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내가 아는 구절이 딱 이 한 소절이다.
어쩌면 그 이상 아무것도 필요 없기 때문에 더 알려고 하지 않는 지도 모르겠고,
이 노랫말 한 마디에 내 모든 감정을 실을 수 있고, 그리운 분을 사모하는 애틋함을 충분히 삭힐 수 있어서이기도 하다.
오늘 서울 기온이 섭씨 30도를 기록하고 있다.
드디어 3층 골방에서 선풍기를 내려다가 먼지를 닦고
내가 작업하는 책상 방향으로 자리 잡아놓고 스위치를 누른다.
내 집은 지은 지 43년이나 된 오랜 집이지만 창문들이 사통팔달로 열려있고
게다가 마당 남쪽 담 안에 잘 자란 나무들이 뜰에 그늘을 만들어주워서
마당에서 들어오는 바람이 서늘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런데 오늘은 점심 먹으면서 땀을 많이 흘리고 보니 선풍기 생각이 나게되었다.
제작년, 그러니까 2018년 여름은 유난히 더웠다.
그 해도 선풍기 하나로 지낼 요량이었는데
나의 건강을 염려해주시는 고마우신 분께서 내가 더위에 시달리는 사정을 아신 그날
즉석에서 에어콘 한 대를 구입, 배달 설치까지 회사와 계약해서 보내주셨다.
한 여름 더위가 절정인데, 에어콘 구입 신청하면 한 달 가까이 기다려야 차례가 오는 품귀 유통 구조 속에서
그 분은 당일에 배달 설치하도록 조치해 주셨다. 평소 덕을 많이 쌓으신 분이기에 이 일이 가능했다고 믿고 있다.
덕택으로 더위 먹지 않고 무난히 여름을 넘길 수 있었다.
올해는 코로나19 의 한 현상으로 운행차랑 수가 줄고 , 공장에서 뿜어내던 매연이 줄어서일까
하늘이 맑은 날이 많고 공기도 시원하다. 게다가 마당의 나무들 잎새가 잘 자라서
치톤피드 생산량도 많아진 듯 나는 방안에서 맑은 공기를 즐긴다.
정 더워지면 에어콘 틀면 될것이기에 마음은 항상 느긋하다.
에어콘 사 주신 분을 생각할 때 감사의 념과 함께 그 분 "얼굴을 떠올리게되는 것"은 인지상정일 것이다.
가까이 사시는 분이시지만 어쩌다 뵙게 되니 천리 밖에 계시는 것이나 다름 없다.
"다시 한 번 그 얼굴이 보고 싶구나 ~ ~ "
벌써 40여년 전의 일이지만 그 때 만났던 사람을 잊을 수 없다.
76년도에 일본 여학사협회의 국제장학금으로 동경에 갔을 때의 일이다.
나는 여성노동문제 특히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에 관한 연구를 하겠다고 연구 계획서를 냈더니
장학위원회 만장일치로 채택되어서 어린 아이 남매를 집에 둔채 현해탄을 건넜었다.
2명 초청 계획에서 초청된 또 한 사람은 부에노스 아이레스 출신 미쓰 Nelida Secreto 였다.
그녀는 흰 피부에 금발, 파란 눈을 지닌 전형적인 백인으로 키는 훤칠하고 항상 살짝 웃는 듯한
미모까지 갖추고 있었다. 부유한 집안에서 자라면서 일찌기 프랑스로 건너가서 솔본느 대학 (파리제5대학)법학과에서 형사법 박사학위까지 받은 유복한 숙녀였다.
넬리다와 나는 자연스레 자주 어울리고 서로를 알게 되어가던 어는 날, 그녀는 속에 묻어두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파리 유학 중 알게 된 남자 친구가 사귄지가 10년이 넘었는데도 프로포즈를 해 주지 않았다며 슬퍼했다.
모든 걸 다 갖춘 것처럼 보이는 사람에게도 아픔이 있다는 사실에 나는 인생을 배우는 듯한 기분으로 그녀의 이야기에 몰입해서 듣고 있었다. 사진에 보니 남자는 핸섬하고 온화해 보였다. 프랑스 귀족의 후손으로 재력도 상당한데, 무엇보다도 두 사람이 서로 깊이 사랑하고 있으면서 청혼하지 않는 이유가 궁금했다. 남자는 지병이 있다고 했다. 결혼했다가 자기가 얼마못가서 죽을지도 모르는데 그 불행을 넬리다에게 남겨주고 싶지 않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두 달쯤이 지난 어느 날 넬리다가 시부야 역 근처에 있는 나의 숙소로 찾아왔다. 저녁을 함께 먹고 밤 늦게까지 도란 거리다가 집을 나섰다. 나는 전철역까지 배웅하려 따라나갔는데, 그녀는 큰길에 이르러 이제 혼자 가겠다고 했다. 나는 손을 흔들어 인사하려는데, 그녀는 그의 늘씬한 허리를 굽혀 내 볼에 키스를 하고는 코트 자락을 휘날리며 바람처럼 달려가버렸다. 그 자리에 멍하게 서버린 나는 전신에 힘이 쏙 빠져서 고가도로를 받치고 있는 기둥에 기대 섰다. 강렬한 충격으로 다가온 그녀의 키스가 나의 영혼조차 앗아가버렸다. 난생처음 경험이었고, 짙은 그리움을 남겨주었다. 넬리다는 귀국 후 UN난민구호기관에서 일하다가 과로로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떴다. 너무도 애석하다.
"다시 한번 그 얼굴이 보고 싶구나."
아버지는 남자로 태어나셔서 가정과 사회에서 일정 권위를 누리셨다.
그러나 어머니는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자유는 커녕
그 아까운 재능을 한 번 펼쳐보지도 못하시고 온갓 궂은 일을 다 도맡아 고생만 하셨다.
나의 할머니는 내가 학교에 갈 수 있도록 한글을 깨우쳐 주신 고마운 분이셨다.
막내 아드님을 병으로 잃어버린 후 무작정 금강산으로 가셔서 첫발길이 닿은 절에 머물며 기도하고
불경 공부를 하시고 불경 사경도 많이해서 돌아오신 수준 높은 학식을 갖추신 분이셨다.
그런 분이 시어머니 노릇은 끔찍히 지독하게 하셨다.
어린 내 가슴에 눈물이 되어 잊혀지지않는 사건이 있다.
하루는 할머니가 모시적삼에 파리똥이 앉았다며 멀쩡한 적삼을 물에 풍덩 담그시고는
웃마을 친구네 점심 먹으러 갈 때 입게 하라 하셨다.
요즘 같으면 세제에 흔들어 빨아서 풀 먹여 전기 대림으로 다림질하기가 쉽지만
그 시절에는 매우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나락을 털어 낸 집 한 단 태워서 잿물 받아서 그 물로 빨고, 디딜방아칸에서 빠은 밀가루에는 밀기울이 썪여 있어서 않되고
흰죽 끓여 주머니에 담아 치대서 풀물을 만들어 풀해서 숯불을 피워서 대림질 해야 했다. 모시는 빨랫줄에 널었다가는 올이 굳어져서 발이 서지 않는다. 살살 달래듯 손으로 어루만지듯 올을 펴가며 쉴새 없이 폈다가 접었다가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두둘기기를 반복하다가 적당한 습기가 있을 때 다림질 해야 한다. 가운데가 깊은 접씨처럼 둥글게 생긴 손대림에 숯불을 피워 담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집 나설 시간을 한 시간도 채 못되게 남겨놓고 모시적삼을 빨아 대령하라시는 것은
어린 내 눈에 마치 정신적 폭력과 같다는 생각을 하게 하였다.
나 같으면 두 다리 뻗고 울어버릴 것 같은데, 어머니는 조용히 그러나 동동 걸음을 치며 그 시간 안에 산뜻한 모시적삼을 할머니 앞에 갖다드렸다.
이 일은 하나의 예에 불과하다. 음식 범절이며 할머니 손님 접대며 제사 받들기까지 어머니는 잘도 해 내셨다.
6.25 전쟁 이후 대구로 이사를 왔는데, 할머니는 노환으로 침대에 누은채로 9년을 더 사셨다. 하루에 스무번도 넘게 기져귀를 갈아드리려니 빨래가 마르지 않아 어머니는 고생하셨다. 피골이 상접하고 오장육부가 다 녹아내린 것처럼 보일 때 할머니는 숨을 걷우셨다. 낯 선 이웃 사이에서도 소문이 나서 어머니는 경북도지사의 효부상을 받으셨다.
어머니의 희생 위에 가정 평화가 있었고 내 집이 나의 안식처일 수 있었다.
아무리 가정이 중요하다해도 평화가 간절해도 나는 그런 시집살이를 그렇게는 못할 것 같다.
철이 들면서 어머니의 일생이 불쌍하게 여겨지고, 철이 없어 위로의 말씀 한번 올리지도 못했던 나의 불민함이 가슴이 아려지도록 후회되고 또 후회한다.
엄마! 죄송해요 !! 용서해 줘요!!!
목이 메인다. 내세에 엄마의 딸로 태어나서 효도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오늘은 아침부터 "다시 한번 그 얼굴이 보고싶구나"를 되풀이 되풀이 읊는다.
2020. 06. 12. 오선주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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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존경하는 오선주 보살님!~
왠만한 단편소설보다 더 감동적인 가슴절절한
< 다시 한번 그 얼굴이 보고 싶구나>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에어컨 선물해 주신 지인에 대한 고마움,
애절한 사랑의 화신이었으나
덧없이 사라져간 외국인 엘리트 친구 넬리다에 대한 그리움,
인욕보살님이셨던
사랑하는 친정엄마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과 후회를 배웠습니다.
보살님의 지난 글들 속에서
친정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불효를 대충 짐작했지만
오늘 아침에서야 비로소 그 실체를 알 수 있었습니다.
전형적인 못된? 시어머니상이셨던 할머님 덕택에,
친정엄마는 인고의 효부상이 되셨으며,
그 엄마의 눈물겨운 희생과 헌신 덕분에
보살님께서는
학문과 문학 등에서 빛나는 업적을 이뤄내신 것이라 믿게 되었습니다.
얼마전
TV 불교방송 시간에 어느 큰스님께서
인간의 간절한 마지막 생각이 다음 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고 법문하셨습니다.
보살님께서는
내세에 엄마의 딸로 태어나서 효도를 할 것임에 틀림없겠습니다.
사려깊으신
우리 안면암 홈페이지 독자님들께서도 절대 공감할 것입니다.
오늘 아침엔
"다시 한번 그 얼굴이 보고 싶구나"
구태여 더이상의 다른 말이 불필요한
애절한 이 노래 가사를 읊조리는 분들이 무척 많으실 것같습니다.
나무대원본존 지장보살마하살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
오선주님의 댓글
오선주 작성일
해탈심 보살님!
보살님의 문장력이 좋으신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마치 내 감정을 속으로 흡입하였다가 내 품듯 이리도 절절한 글을 남기셨을까요!
내가 어릴 적 어머니는 유행가 부르는 것을 엄히 금하셨습니다.
정신이 나태해지고 통속적인 감성에 물든다는 이유에서 였습니다.
한세상 살고 보니 유행가 가사에는
그런 부정적인 면보다
인생살이를 그대로 읊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고장난 벽시계는 멈추었는데 저 세월은 고장도 없네"
이 가사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담고 있지 않습니까!
"인간의 마지막 간절한 생각이 다음 생에 영향을 미친다"는 말씀에 큰 위로를 받습니다.
고맙습니다 . 늘 건강하세요. 오선주
원만행님의 댓글
원만행 작성일한량없는 깨달음과 복을짓는삶이. 모든생명에게자유의 좋은 씨앗 되소서 .인연공덕두루감응해서 누구할것없이 무량광무량수 이루어지이다. 무진성보살님 나도 보고싶어요..인자하시고 .....해문국하시고 부유 만덕 하셨을 만덕 장엄하셨겠지요. 우리조상님도 모두 진 법계에일심으로 만덕장엄하시길고통을버리고 화엄사상통 분ㄷ교회통불교 온통모든것이 선지식으로 ....도솔천 내원궁장엄 미륵신앙 수기밭아서행복하엿ㅈㅅ으면 합니다. 여시대원능성취 구경원성 살반야 마하반야바라밀. ..나무서카모니불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시아본 사 석 가모니불 .원만행 합장.
소양자님의 댓글
소양자 작성일간절한 기도는 시공을 초월해서 이루어진다고 하지요?? 오선주 대보살님께선 지금 그리운 분들을 만나고 계십니다. 시집살이를 보거나 당한이가 시집살이를 시킨다는데 예외도 있네요. ( 웃음) 독일도 오늘 30도 이상 입니다. 더우면 더운대로 추우면 추운대로 그져 감사할뿐, 모를뿐, 입니다. 더위에 건강 잘 지키세요. 독일의 소양자합장
오선주님의 댓글
오선주 작성일
원만행 보살님!
언제나 불경에 해박한 지식을 지니고 활용하고 신행하시는 보살님이 존경스럽스니다.
"여시대원능성취"
알 것 같기도하고 그리되기를 기도합니다.
코로나19로 힘든 시기에
큰스님 지근에서 모시는 행운을 스스로 잡으신 보살님!
부럽고도 고맙습니다. 오선주 합장
오선주님의 댓글
오선주 작성일
독일 큰보살님!
간절한 기도는 시공을 초월하여 이루어진다
이 말씀은 진리일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인류 역사가 있어온 이래 사람들이 왜 기도를 해 왔겠습니까.
다만 기도가 어슬플 때, 응답이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보살님께서 철학을 하셨으면 인류에게 행복을 안겨주셨을 것이라 믿어집니다. .
필우님의 댓글
필우 작성일여러 보살님들의 최근 글들을 읽고 글을 하나 올리려고 했으나, 본문 글을 올리는 방법을 모르겠습니다. 댓글 등록은 가능하나 글이 좀 길어서 본문 글로 올리고자 합니다. 본문 글을 올리는 방법을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오선주님의 댓글
오선주 작성일
필우님 !
오랫만입니다 반갑습니다.
본문 올리는방법은 자유계시판 목록 위 부분에
설봉주지스님께서 설명해주신 글이 있으니
숙독하시고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스펨성 글을 방지할 방법이 없어 고안해 내신 방법이라서 상당히 복잡합니다.
실은 저도 너무 어려워서 가까운 분의 도움을 받아 글을 올리고 있습니다.
필우님의 귀환을 환영하며
앞으로 좋은 글 많이 기대하겠습니다.
또 한 분의 귀환이 기다려집니다. 一語成識 !
필우님의 댓글의 댓글
필우 작성일
친절하게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알려주신 대로 블로그에 저장했습니다.
블로그에 올려진 글을 보니 글자 크기가 너무 작은 거 같습니다.
그래서 글자 크기를 조절해보려고 했는데 설명이 어디에 있는지 찾지 못했습니다.
아시는 분이 계시면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