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선주: 내가 겪은 죽음의 문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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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게시대행 댓글 11건 조회 41,115회 작성일 20-07-18 06:11본문
삶과 죽음 사이
한 동안 <시체 놀이>라는 이야기를 사람들이 재미삼아 이야기하고 있었다.
혼자 사는 시아버지는 갓 시집온 며느리가 온다는 전화를 받고 기뻐하며 기다리는 중에 갑자기 짓궂은 생각이 떠올랐다. 며느리가 와서 문 여는 소리가 들리기가 무섭게 소파에 엉덩이를 얹어 놓은 채 머리를 거꾸로 바닥에 떨구고 눈을 반쯤 감고 죽은 척하고 있었다. 며느리가 들어오다 말고 이 꼴을 보고 선체로 까무러쳐버렸다.
다급해진 시아버지가 며느리를 둘러업고 병원으로 달려 갔다.
웃기는 이야기지만 죽는다는 것은 건강한 젊은이도 기절하게 만들만큼 무서운 일이다.
나는 저승 문턱까지 갔다 온 것 같은 경험이 있다.
경북여고 재학 시절, 고 3 여름 방학 때 고향 영양(英陽)으로 귀가하였다.
첩첩산중 오지 마을 정기 교통편은 하루 두번 안동으로 나가는 버스가 전부였다. 외가를 가려는데, 차 없이는 40리 길을 뙤약볕을 받으며 걸어야 했다. 때마침, 경찰서 차 "쓰리 쿼터"가 오고 있었다. 나는 친구와 함께 손을 번쩍 들었더니 운전기사가 인심 좋게 뒤켠 짐칸에 태워주었다. 구름재를 올라 외가 방향 내리막길에 운전자가 속도 조절을 못해서 가로수를 들이받았고 나와 친구는 튕겨져서 언덕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내가 일어서려는데 차가 굴러 내려오면서 나를 덮쳤다. 내 입에서 억 소리가 났다. 일어서려는데 일어서지지 않았다.
의식이 가물가물한데 누군가가 내 손을 꼭 잡고 우는데 보니 어머니였다. 안동 도립병원에 도착할 무렵에는 밖이 컴컴해져 있었다. 의료진들이 들락날락거리는 것을 보면서 나는 의식을 잃었던 것 같다.
그렇게 아흐레가 지나도록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는 딸을 보고 어머니는 눈물을 걷우지 못하셨고 아버지는 남의 자식 부상당한 것 때문에 그 책임감으로 해서 직장에 사표를 내시고 병원 바라지와 간호에 전념하셨다.
내가 9일 만에 깨어난 것은 배가 너무 아파서 절로 소리치게 되었기 때문이다. 오장육부에 내출혈이 있다고 하는데 창자가 여기저기 유착이 되어서 가스가 나가지 못하고 배가 만삭 임부보다 더 커져가며 통증을 느낀 자연 발작이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친구는 좌골이 두 조각으로 깨진 부상이었는데, 나의 상처는 심각했었다.
내장 출혈이 심하고 왼쪽 골반 뼈에 한 뼘이 넘는 금이 가 있었고, 오른 쪽 대퇴골이 빠져서 엉덩이에 붙어있었다.
이 대퇴골을 제 자리에 끼우기 위해 마취시키면 깨어나지 못할 우려가 있어서 일주일 넘게 내 몸 상태를 살피느라 뼈가 어긋난 채로 그대로 두었었다.
심장 등이 안정되어 마취를 하고 대퇴골을 제 자리에 놓는 작업?이 시작되었는데, 그 사이 대퇴골과 골반 뼈 주변에 연골이 돋아서 뼈가 떨어지지 않는다며 외과 내과 마취과 의사가 총출동해서 내 다리를 비틀며 잡아당기고 있었다 한다.
나는 그런 과정을 의식 못하는 혼수상태에서 묘한 꿈속을 헤매고 있었다.
밤하늘에 뜬 반달 아래쪽 끝에 서서 다리 하나를 번쩍 쳐들고 반달 저 위쪽 끝에 에 닿으면 내가 살아나고 실패하면 끝 모르는 우주로 빨려들어 가버릴 것이라 했다. 나는 전력을 다하여 시도한 끝에 내 다리 한 쪽이 달 위편에 닿았다.
아마도 죽지는 않을 암시였던 것 같다.
또 다른 꿈이 이어졌다. 선로 위를 달리는 기차가 기관차와 분리된 채 달리는데, 저만치에 있는 터널 안으로 기관차가 사라지기 전에 따라잡아야 한다. 안간힘을 쓰고 따라가는데 기차가 기관차 뒤쪽의 연결 고리에 꽝 소리 내며 부딪치더니 연결되었다.
그 꽝 소리 나고 기차가 접속되는 꿈을 꾸고 있는 순간에 내 다리가 정상 위치에 꽉 들어맞았던 것 같다.
이 꿈들을 돌아보니, 내가 저승 문턱에까지 갔다가 염라대왕의 시험을 통과하여 죽음을 면하고 지금까지 삶을 향유(享有)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1980년 대 초에 시어머님께서 돌아가시고, 1년 후에 어머니를, 4년 후에 아버지를 차례로 여의었다.
노환으로 천수를 다하셨다고 여기면서도 연이은 애사(哀事)를 겪으며 죽음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실제로 한 생명이 떠나가는 긴긴 과정을 지켜보게 되었다.
남편은 결혼 당시 겉보기에는 멀쩡해 보였었는데 알고 보니 심한 당뇨를 앓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커피를 자주 마셨다.
집에 쉬는 날 가만히 보니 하루에 스무 잔도 더 마시는 것 같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또, 그의 흡연은 가히 골초 9단이었다. 담배 개비를 잡는 손가락 끝이 누렇게 착색이 되어 있고, 중독이 되었는지 나의 간청에도 그는 담배를 끊지 못하고 마침내 기침을 하게 되고 점점 심해져갔다.
결핵인가 염려되어 서울대 병원에가서 진찰을 받았다. X-Ray 사진에 보이는 그의 폐는 좁쌀 뿌린 것 같이 보였다.
민헌기(閔憲基)교수는 "결핵이 아니라니 다행입니다"고 한 시름 놓는 나에게 어이없어하며
"결핵은 6개월 정도면 완치되지만, 이렇게 폐 꽈리에 니코친이 눌어붙은 데는 약도 없고, 여기 보이는 것들이 다 나가고 건강을 회복하려면 10 몇 년이나 걸릴 겁니다."라며 당장 담배를 끊으라 처방하였다.
그래도 남편은 담배를 끊지 못하고 장미나무 뿌리로 만든 서양식 최고급 파이프를 사고, 아주 순하다는 영국제 <Mild 79>과 <Cherry> 담배를 피우기 시작하였다.
오랜 당뇨병으로 식욕은 왕성하고, 운동은 아니 하고, 담배는 피우고... 그런 악조건의 연속으로 남편은 드디어 관상동맥이 막혀 스턴트를 넣게 되었다. 두 번째 스턴트 삽입 시술도 성공적이었지만 세 번째에 이겨내지 못하고 세상을 떴다. 세 번째 때에 남편은 수술실에 들어갔다가 바로 중환자실로 옮겨졌고 그 곳에서 107일간 투병하였다.
담당 의사들이 간병인이 환자랑 같이 입원하는 수가 있으니 좀 쉬라고 조언해서 나는 그의 입원실로 올라갔다. 그 때 옷장에 걸어둔 남편의 양복을 보는 순간 강한 귀기(鬼氣)가 느껴지고 등골이 오싹해져서 황급히 그 방을 나왔다.
죽음의 암시는 또 있었다.
남편이 입원한지 두 달이 넘어갈 즈음의 수혈을 앞 둔 어느 날 잠시 낮잠에 빠졌는데 그 순간에 꿈을 꾸었다.
고향 강에 맑은 물이 흐르는 것을 보며 감상에 젖었다. 하늘을 올려다보고 나서 다시 강물을 보니 녹조가 끼어서 물이 시퍼렇고 범벅처럼 걸쭉해 보이고 악취마져 풍기고 있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수혈 후 남편은 기력이 쇠진하였고, 턱 밑 목에 구멍을 내고 호스를 삽입하게 되었다.
나는 그 수혈이 의료사고라고 따지고 싶었으나 의료진이 최선을 다하고 있었고, 남편은 이미 회복 불능 상태에 들었다고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만 두었다.
남편은 보기에도 안스런 큰 고통을 안고 그렇게 길고 긴 죽음에의 길을 걸어갔다.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허망했다. 다만, 예상을 훨씬 넘는 많은 분들이 조문해 주셔서 죽은 영혼에게는 영광이었을 것이다.
아버지 발치에 묻히고 싶다는 그의 유언에 따라 강원도 선산에 그를 안장하고, 서울 보문동에 있는 고찰에서 49제를 올리고, 내 직장에서 가장 가까이에 있는 천년대찰 속리산 법주사에 그의 영가를 안치하였다.
법주사에서 처음 뵌 석지명 대선사의 은덕으로 생사불이(生死不二)를 이해하고 믿게 되었다.
삶과 죽음이 서로 다르지 아니하다는 진리를 깨닫고 나니 무섭다는 죽음 앞에 초연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
2020. 07. 18. 오 선 주
댓글목록
오선주님의 댓글
오선주 작성일
나이 들어가면서 자주 옛날 일들을 회상하게 됩니다.
사람이 태어나면 모두 기뻐하고 축하해 주고
사람이 죽으면 모두 슬퍼하고 위로해 줍니다.
사람이 오고 가는 것은 누구에게나 같으니 이 이상 공평한 일이 또 있겠습니까.
그러나 태어나는 환경은 제각기 다르고
생을 마감하는 길도 천차만별입니다.
30여년을 함께 한 사람의 가는 길을 지켜 보았습니다.
여기 쓴 것은 아주 간략한 병원에서의 투병기록이지만
그가 떠나기 전 10여년의 병 뒤바라지는 나의 영혼마져 지치게 했습니다.
그러나 남편의 마지막 입원 107일 동안
하루도 집에 돌아와 쉰 적이 없이 최선을 다하다가 보내서인지
후회 같은 것은 없습니다.
다만 인간적인 연민의 정은 남아서
가끔 그가 얼마나 괴로웠을까를 생각합니다.
부처님께서 자비를 베푸시어 안면하고 있기를 바랄뿐입니다.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존경하는 오선주 보살님!~
고3때 그야말로 저승 문턱에까지 갔다가
염라대왕님의 시험을 무사히 통과하여 구사일생하신 얘기
가슴 졸이며 잘 읽었습니다
.
분명 여생을 남들보다
몇 배 더 열심히 멋지게 살다 오라는
염라대왕님의 분부셨을 거라 믿게 되었습니다.
15년 전쯤 12월 30일 밤 11시
직장에서 송년회 모임 날 저의 아들이 당했던 교통사고가 떠올랐습니다.
음주운전하지 않으려고 대리기사를 불렀는데
너무나 어이없게도
상사와 선배 때문에 자기 차에 대퇴부와 경골이 부서진 큰 사건입니다.
연말이었기 때문에
운이 없어서 그만 가장 나이 어린 일반의가 수술을 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
수술이 잘못되어 한 번 더 하게 되었지만,
저희도 이왕 벌어진 일이었으니
그저 아들의 조속한 건강회복을 위해서 큰소리 없이 조용히 넘기고 말았지요.
지금은 세월이 흘러 그 의사선생님이 과장 직함을 달고 계십니다.
.
3년 가까이 아들은 3,4번의 수술과 재활 치료를 해야 했는데
무능한 이 엄마는
그저 아들 곁을 지키는 일밖에 아무 것도 하지 못했었습니다.
보살님께서는
남편의 기나긴 투병기간 동안 인욕보살로서 최선을 다하셨으니
당연히 후회는 없으실 것입니다.
수십년을 함께 한 고인에게
아직도
인간적인 연민의 정이 남아
자비심을 품고 계시니 역시 보살도 수행자이십니다.
제가 38년 동안, 전 남편에게
전생에 지었던 큰 빚을 모조리 다 갚고 빈 손으로 혼자가 되었듯,
아마 보살님께서도
숙생의 빚 때문에 그리 힘든 긴 세월을 견디셔야 하셨던 것은 아니셨을까요?
하여튼
고인 덕분에
저의 형편으로서는
도저히 현실에서 만나기 힘든 최고의 엘리트 보살님을
안면암에서 만나는 행운이 있었습니다.
삶과 죽음은 둘이 아니라고 배웠습니다
여직 무명 속을 헤매는 저에게도 실감나는 날들이 점점 가까워질 것입니다.
고인께서는 보살님의 지극한 기도 덕택에 분명히 안면하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나무대원본존 지장보살마하살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
오선주님의 댓글
오선주 작성일
해탈심 보살님!
아드님 교통사고로 모자분이 크게 고생하셨네요.
한번 상처 입으면 평생의 부담이 됩니다.
계속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나의 고관절 수술도 고3때 교통사고이 후유증이라 볼 수 있습니다.
나는 이제 살만큼 살았으니 아무것도 미련이 없지만
아드님은 청청한 나이니 계속 조심하셔야 할 것입니다.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존경하는 오선주 보살님!~
진심어린 조언 감사드립니다.
큰 상처는 평생의 부담이 될테고 노년에는 그 영향이 꼭 나타난다고 들었습니다
.
어미로서 항상 아들이
운전대 잡는 걸 그리 원하지 않고 있지요.
말씀대로 계속 조심시키겠습니다.
뉴스에서 요즈음
운전면허없이 부모차 끌고 나와 대형사고 일으키는
초등학생들의 충동적인 철부지 행동을 자주 보게 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지는지 너무 개탄스럽습니다.
해탈심 합장
소양자님의 댓글
소양자 작성일액땜을 많이 하셨네요.. 그래서 아주 건강하시고 오래 사실겁니다. 무더위에 건강 조심하시고 좋은글 많이 올려주세요. 감사합니다. 독일의 소양자드림
석원영님의 댓글
석원영 작성일
오래 오래 건강하게 사세요. 존경해요 오교수님
정광월 합장
오선주님의 댓글
오선주 작성일
자연심대보살님!
왕성한 글쓰기로 우리를 즐겁게 해주시는데
한동안 뜸해서 걱정 했습니다.
코로나19는 세계적 재앙이라 국경도 인종도 가리지 않으니
부디 건강 잘 챙기식 바랍니다.
오선주님의 댓글
오선주 작성일
淨光月 석원영 보살님 !
눈도 불편하신데
보잘 것 없는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어쩌다 죽음을 생각하게 되었고
生死不二를 가르쳐 주신
석지명 큰스님의 자비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죽음-自然死를 두려워하지 않게 된 것은 가장 큰 佛恩입니다.
그러나 코로나19 같은 역병으로 비명횡사하는 것은 적극 피해야 합니다.
정광월 합장님의 댓글
정광월 합장 작성일
오교수님
지명 큰스님 인연
큰스님 칠순 증정하신
붕어빵 하나의 추억
제목이?
큰스님을 향한 절절한 존경심
큰스님께선
행복하십니다
건강하셔요
감사드립니다
정광월 두손 모음
원만행님의 댓글
원만행 작성일얼마전 서로의전화 거구장에서의 점심식사 의 담소 를 생각하니 참세월이 빠름을느꼈지만 보살님의 목소리는 아름 다운 자체로 들렸읍니다. 우리의 생노병사 지수 화풍 으로 돌아가는 과정이 불생 불멸로 진 리를 안고 도 .....여래 등정각 세존의 12 대원 ..약사여래불 ?,일체유정이 나와 다름이 없다. 모든바 빛으 세째는 가없는 사업성취 유정의 보리의등 독각성 문도 불경계의 3취경계 청정함을 온갖불이거나 어리석고 등등 약사이름을들으면 안정하여 의사약이없고 등등 나의 이름을 나아가 위없는 깨달음 쫒기고 괴롬을 격어도 여자의 몸을벗고 장부의 몸을 ...모든 유정의 몯외도를 이끄러...내세에보리를 얻었을때 슬품 근심 등등의 괴로음 을 여의어 진다 나의이름을 듣는자 그몸을 배부르게하고 일 으 킨다 훌 륭한 보배와 등등 마음의 뜻 하는 바를 모두 이룬다..나무 동방만월 약사여래불 범부중생 약사 여래 만납시다. 3년전 저의 남보내는 나의 마음을 이렇 축원 하나이다 ..나무 약사여래불 무진성 보살님 험한길도 좋은길도 불법승 삼보아래 행복 합시다. 건강하십시요. 순결 하얀 목 련이 스치네요. 너무 글이 예쁜 삶이에요. 원만행 올 림
오선주님의 댓글
오선주 작성일
원만행 이재찬 보살님!
박식하신데다가 기억력도 좋으셔서 이리 칭찬해 주시고
좋은 말씀으로 화답해주시니 고마울 따름입니다.
몇일동안 홈피를 보지 않아서 답글이 늦었습니다
코로나 조심하세요. 오선주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