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부군신위

그제 저녁에 한 통의 전화를 받고는 비통한 심정을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한동안 잊을만 했던 기억들이 되살아 났기 때문이다. 안면암에 행자생활을 했던 행자가 죽었다는 말이 믿기지 않았다. 속세 부친의 갑작스런 부음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생로병사는 부처님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새삼 생각해볼 일이 아니지만 어디 세상살이에는 그러하랴. 그 동안 홈피에 조문에 대한 감사의 글을 올려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지만 여러 가지 일로 계속 늦춰지고 말았다. 숨가쁘게 전개된 일들이 년초을 달궜다. 요즘 스님들이 장삼을 수하고 상주노릇하는게 다반사지만 어쩔 도리없이 또한 그럴 수밖에 사친부모했지만 불조에 죄송할 따름이다. 몇 분의 스님들께 알린 것이 다 알게 되어 민망할 따름이지만 조문을 오신분들과 물심 양면으로 조의금을 보내주신 은사스님과 더불어 안면암 임원등 많은 분들이 동참해서 삼가조의를 표명해 주셔서 늦게나마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사형사제 스님들,종회의원 현조스님,사리각 삼묵사숙스님과 사손회 회장과 스님들, 교육원 사무국장,조계사 교육국장,호법국장 스님,불교대학원 우리모임스님들, 불교대학원 소동림회 스님들,고딩친구,대학친구들이 조화와 조문과 조의금을 보내주신 것에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부친과의 대화도 나누지 못하고 산소마스크를 쓰시고 가파른 호흡에 수면주사를 놓아 바라만 볼 뿐 어쩔 도리가 없었던 것이 안타까운 일이라면 일이었지만. 예전에 서울에 있을 때 이런 생각을 했다. 이제 부친이 74세라 살아야 얼마를 살겠는가. 지난 업장을 녹이려면 불법을 믿는 것도 중요하지만 부처님의 말씀을 깨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한 번 뵈러가면 법화경 사경을 시켜야겠다는 생각을 내었었다. 그래서 모친과 천태종을 다니니까 대학원에 천태종스님네께 부탁을 해서 천태종에서 펴낸 법화경을 구했다. 그런 뒤로 곧장 내려가서 일생에 한 번이니 사경을 해보시라고 했다. 한번은 한글로 쓰시고 한번은 한자로 쓰세요 라고 말씀드리고 올라왔다. 한 번씩 모친에게 전화를 해서 사경을 하시고 있는지를 여쭈었다. 잘 하시고 계신다고. 그리곤 3달이 흘렀는데 한 번 다 쓰셨다고. 첫 번 것은 서울로 가져왔는데 그 뒤 어느 날 더는 못쓰시겠다고. 눈이 어두워 글이 뭉게지고 시그럽다고. 그래서 그만 하시라고 말씀 드렸다. 항상 오래 사시기를 바라셨는데 그렇게 가시다니! 상중에 마음대로 울지 못하고 흐느낄 뿐. 납골을 하고서야 집에서 통곡은 좀 했지만. 남자는 일생에 3번 운다고 들은 기억이 있다. 부모님 가셨을 때가 한번이라. 유품을 챙겨보느라 단서위에 서류가방을 내려보니 법화경 사경한 것을 넣어두셨다. 한글로 한 번,한자로 한 번. 글씨는 떨리는 손으로 쓴 글씨지만 정교하기 그지없었다. 항상 공부를 했더라면하는 말씀을 하셨는데,큰아버님이 자수성가해서 출세하셔서 동생들 뒷바라지하며 대학을 다 시키셨는데 고향에서 부모님 모시느라 장자역할을 하셨기에 공부할 기회도 놓쳐버리고 없는 살림살이에 찌든 생활에..뉴욕에서 총영사관을 지내신 큰아버지 이야기를 즐겨하시고 국회의원비서실장을 지내신 동생이야기를 즐겨하셨는데 학생으로 졸하셨으니 당신은 다음생에 좋은 인연을 만나 공부 많이 하시길 빕니다. 못난 아들이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출가한 것을 가슴아파하시지를 마시고 인연따라 가는 법이니 법화경 사경공덕으로 좋은 곳에 나시길 발원합니다. 생사는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것을 아시겠지요.

행자 그대는 참으로 아쉬운 사람입니다. 그래도 도량에 와서 아침 도량석을 치고 약사불 앞 공사를 같이 한 인연으로 좋은 국토에 나시길 발원합니다. 고통속에서 말없이 갔지만 그 애절함이야 누가 대신할 수 있으리요!

서울에서 수많은 주검을 보아왔고 염불도 많이 했지만 가까이 지내던 사림이 가버리니 그 애닲음이야 어찌 알랴! 아! 인생무상을 느끼게 하는구료. 금일 영가여. 왕생극락하소서.